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돈이 있어도 사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초정밀 워치 와인더와 전자 습도 장치가 탑재된 되틀링 금고. 2 1728가지 부품으로 제작한 파텍 필립 ‘칼리버 89’.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회중시계로 손꼽힌다. 3 최상급 에메랄드를 감상할 수 있는 반클리프 아펠 ‘에메랄드 엉 마제스테’ 목걸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로 알려진 쇼파드의 손목시계는 한화로 약 2백70억원을 호가한다. 네 가지 빛의 다이아몬드가 총 201캐럿이나 세팅된 이 시계는 호화로운 디자인이 압권.
두 번째로 비싼 시계는 소더비 경매에서 약 2백40억원에 낙찰된 회중시계로, 시계 경매 역사상 최고가 시계로 꼽힌다. 한편,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장인의 아틀리에에는 특정한 제품도, 카탈로그도 없다. 모든 것은 제작을 의뢰하는 고객의 이야기로 시작되며, 그것을 경청하는 귀만 있을 뿐이다. 미술사에 심취한 고객은 시계 문자반에 걸작 미술품 중 하나를 그려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감성적인 고객은 1년에 단 한번 애인의 생일에만 차임이 울리는 시계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제작되는 시계는 제작 기간만 8년 이상 소요되고, 그것에 담긴 의미가 브랜드의 철학과도 맞닿아야 하기 때문에 비용을 지불한다고 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데마 피게의 ‘레이디 로열 오크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 역시 오로지 주문에 의해서만 제작된다. 8각형 베젤 위에 6각형 모양의 8개 스크루를 견고하게 맞물려 놓은 이 시계는 문자반, 베젤, 케이스와 스트랩을 잇는 모든 부분이 521개의 다이아몬드로 감싸여 있다. 이토록 숨막히게 화려한 시계의 가격은 상상에 맡기겠다.
부쉐론은 올해 7월에 주얼리와 옷의 경계를 허문 ‘케이프 드 뤼미에르 : 빛의 망토’를 발표했다. 세공을 거쳐 금을 망사처럼 연결하는 데에는 925시간의 작업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질 급한 사람은 애가 좀 탈 것이다. 반클리프 아펠이 선보인 ‘에메랄드 엉 마제스테’ 컬렉션 역시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보석 감정 전문가들이 세계 각지에서 수십 년 동안 수집해온 1500캐럿의 에메랄드가 목걸이와 반지, 브로치로 재탄생된 것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경이롭다는 감탄을 기꺼이 하게 된다. 이토록 값진 시계와 보석, 애장품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금고 역시 중요하다. 유럽의 왕실과 상류층으로부터 신뢰를 쌓아온 되틀링 금고는 디자인, 설계, 소재 선택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작한다. 드릴로도 뚫리지 않는 케이스, 암호 코드와 지문 인식 잠금 장치, GPS 탑재 등 첨단 기술은 수세기 동안 계승해온 장인정신과 고난이 테스트를 거쳐 차원이 다른 완성도를 보여준다. 덕분에 가격 역시 수억원대를 호가하지만, 19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빈티지 금고를 소유하려면 그 역사적 가치를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는 고객인지를 확인하는 까다로운 인증 절차도 거쳐야 한다. 명품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성이 필요하다. 최고의 재료, 최고의 기술, 최고의 디자인, 최고의 이야기를 담아낸 명품은 예술을 통해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4 고객이 직접 그린 여러 장의 스케치와 정보를 바탕으로 제작한 바쉐론 콘스탄틴 ‘댄서 워치’. 5 정교한 세공이 돋보이는 부쉐론 ‘케이프 드 뤼미에르’. 6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로 알려진 쇼파드의 하이 주얼리 워치. 7 주문에 의해서만 제작되는 오데마 피게 ‘레이디 로열 오크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