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 피에로 포르나세티의 방대한 작품이 밀라노, 파리에 이어 한국에 도착했다. 이번 포르나세티 특별전을 기획한 그의 아들 바르나바 포르나세티와 만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 바르나바 포르나세티의 지휘 아래 탄생된 아이템으로 채워진 전시장 마지막 방. 2 콜앤선 Cole&son과 협업해 만든 띠벽지 ‘물티플레테 multiplette’. 3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비정형적인 건물과 묘하게 어울리는 포르나세티의 일러스트. 4 정교한 핸드 드로잉으로 완성한 테이블과 의자들. 5 손을 반복해서 그려 넣은 페이퍼 바스켓 ‘마니 Mani’.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낸 이탈리아 예술가 피에로 포르나세티 Piero Fornasetti는 뛰어난 예술성과 다재다능한 실력으로 화가,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다 1만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기고 1988년에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흘러 2013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의 전시가 열렸다. 아들인 바르나바 포르나세티 Barnaba Fornasetti가 기획한 <포르나세티 프랙티컬 매드니스 Fornasetti Practical Madness>는 좋은 성과를 거두며 2015년 파리 장식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한번 선보이게 된다. 포르나세티의 예술성을 드높인 이 순회 전시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된다. 3월 19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대부분 밀라노에 있는 포르나세티 아카이브에서 선정한 1300여 점의 작품으로 마련되었다. 전시장은 주제에 따라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뉜다. 먼저 피에로 포르나세티가 미적으로 영감을 받았던 이미지와 문서, 직접 만든 책을 볼 수 있는 방에서 출발한다. 포르나세티의 재능을 꿰뚫어본 건축가 지오 폰티와 함께 제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방을 지나 포르나세티의 작업실에 도달하면 그의 드로잉 원본, 일러스트를 감상할 수 있다. 포르나세티의 그림에는 고전주의에서 영향 받은 흔적이 역력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역사적인 요소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웠다. 맥락에서 벗어난 이미지를 병치시키고 형이상학적인 페인팅으로 초현실주의에 가까운 작품으로 승화해냈다. 전시는 그가 숨을 거두기까지의 작품은 물론 바르나바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새롭게 만든 최근의 작업물까지 아우른다. 바르나바는 1980년대부터 아버지와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피에로 포르나세티의 감각을 물려받은 그는 작업의 비법을 전수 받고 포르나세티 아카이브를 만들어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현재 포르나세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포르나세티의 전통을 이어가는 그를 전시장에서 만나봤다.
6 1980년대부터 포르나세티를 이끌고 있는 바르나바 포르나세티. 7 작품 배치뿐만 아니라 전시장 공간 연출에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8,9,10 카발리에리를 모티프로 만든 ‘테마&베리에이션 Thema&variation’시리즈의 장식장과 접시, 의자. 고전적인 스타일에 현대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다.
밀라노, 파리에 이어 다음 전시 국가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한국은 미래지향적인 나라다. 동양 문화권에 있지만 다른 나라의 예술과 문화에도 관심이 많고 첨단 기술에도 열려 있다. 이런 한국에서 포르나세티의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회를 통해 영감을 받았으면 했다. 복제품이 아닌 다양하게 재해석된 디자인, 예술 작품이 나오기를 바란다.
전시가 열리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장소 특성상 고려할 것들이 있었을 듯한데, 전시를 연출하면서 어떤 점을 신경 썼나? 웅장하고 멋지고 이색적인 느낌이 드는 이 건축물에서 전시를 열게 된 게 뿌듯했다. 이 전시는 각각의 ‘방’을 잘 구성하는 게 관건인데, 건물 벽이 곡선이라 어려운 점이 있었다. 온통 새하얀 벽이라 프로젝터 영상으로 연출하기는 수월했다.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인 비르질리오 빌로레시 Virgilio Villoresi가 포르나세티 작품을 촬영한 초현실적인 영상은 한국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포르나세티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템을 꼽는다면 단연 포르나세티의 뮤즈인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의 얼굴이 그려진 접시다. 그녀를 뮤즈로 삼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아버지가 오래된 잡지를 보다가 리나 카발리에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때는 그냥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림을 그렸다가 나중에서야 그녀가 아주 유명한 오페라 가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인정신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아름답고 도전적이고 당시 매우 혁신적인 인물이었고 다양한 테마로 확장해 나가는 포르나세티의 뮤즈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포르나세티는 일일이 핸드 드로잉을 해서 가구나 소품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클래식하지만 고루하지 않고 오히려 패셔너블한 느낌도 든다. 제작에 관한 포르나세티만의 기준이 있나? 사람 손만큼 정밀하고 정확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다른 패션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1950년대에 미국의 니만 마커스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그래서 가끔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패션 브랜드로 오해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포르나세티는 패션에 호의적이지만 빠르게 변하는 패션과 달리 우리는 느리고 천천히 한다.
새로운 아이템을 디자인할 때 당신은 어디서 영감을 받는가? 나는 아버지가 했던 것에서 자극을 얻는다. 아버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작품은 사인이 없어도 어느 누가 봐도 본인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그런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낸 그가 존경스럽다.
아버지와 추억이 많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달라. 아버지는 펜 하나로도 모든 걸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에게 항상 화가가 되라고 계속 권유하셨다. 나중에는 그게 자신을 위해 일해달라는 뜻인 걸 알고 아버지 밑에서 일하면서 많이 배웠다.
포르나세티에서 당신의 임무는 무엇인가?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전통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포르나세티 스타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무대를 디자인하는 거다. 나는 다양한 통로로 사람들이 포르나세티를 감상하고 느끼길 바란다.
이 전시를 통해 가장 이야기하고픈 것은? 포르나세티의 조형물에는 이탈리아적인 영감과 문화가 녹아들어 있다. 창의적인 디자인,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물건을 통해 생활 그리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