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CREATOR 금속에 녹인 일상

NOW CREATOR 금속에 녹인 일상

NOW CREATOR 금속에 녹인 일상

김현성은 묵직한 금속으로 일상의 물건을 만드는 금속공예가다.

 

금속공예가 김현성

 

그는 황동이나 구리처럼 전통적인 재료를 특유의 젊은 감각으로 해석해 커피 드리퍼나 찻잔, 그릇 같은 것들로 탈바꿈시킨다. 제4회 올해의 금속공예가상을 수상하는 등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비마이게스트의 김아린, 물건연구소 임정주 작가와 함께 <Obscure for Mulas>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커피 드리퍼처럼 작고 정형화된 물건을 다루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번엔 기존 것들과 달리 스툴이나 의자처럼 부피감 있는 것을 시도했어요. 작업물의 크기가 달라지다 보니 접합 방식도 그렇고, 프로세스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재밌더라고요.”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고민하던 많은 것을 해소하고 작업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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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행한 전시에시 선보인 스툴과 테이블 작업.

 

물론, 작업의 본질은 여전히 금속이다. 금속은 금은방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친숙한 것이었다. 특히 황동은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재료다. 제작 과정도 까다롭고, 만들고 난 뒤에 말도 많지만 이만큼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없다고 했다. “완벽하게 딱 떨어진 상태에 놓여 있지만, 스스로 계속 변하잖아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그 성질이 바뀌고요. 그게 참 흥미롭더라고요. 재료 자체가 무척 자연적이라 인간과 가깝다는 생각도 했어요.” 사람들의 선입견이 많지만, 동은 사실 굉장히 깨끗한 금속이다. 자체적으로 항균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황동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완벽하지 않고, 자꾸만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성질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건이라는 것은 결국 시간의 흐름을 담는다. 그가 황동에 매료된 것도 그처럼 자연스러운 특성 때문이다. “대량생산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 많이 가고 좀 더 고민의 흔적이 담긴 것. 그런 것일수록 물건에서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비효율적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좀 더 하나의 것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도 금속을 가지고 벤치나 테이블처럼 커다란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그가 사랑하는 소재처럼 자연스레 변화해가는 작업이 앞으로도 무척 기대되는 바이다.

 

황동, 공예, 제작 과정, 금속 오브제

황동으로 컵을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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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작업을 할 때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작가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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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그림쟁이, 황영자

자유로운 그림쟁이, 황영자

자유로운 그림쟁이, 황영자

70살이 됐을 때도 닫혀 있던 문은 80살이 다 되어서야 한 치 틈을 열었다. 어떤 양식과 전통에도 매인 적 없는 자유로운 그림쟁이
황영자의 천재적 작품 세계가 이제서야 세상과 접선을 시작했다.

 

황영자, 작가, 아티스트

 

황영자 선생과의 첫 인터뷰는 8년 전 겨울이 끝날 즈음이었다. 그의 파주 작업실은 외딴 농지 한복판에 허술하게 지어진 가건물이었다. 때 탄 채로 지겹게도 녹지 않는 눈이 빚어내는 풍경보다 더 삭막했던 건 그림한테만 친절하고 사람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길 없는 작업실이었다. 손이나 잠깐 녹여줄 난로 두어 개로 고희의 작가가 하루 9~10시간 신들린 사람처럼 끼니를 잊어가며 그림만 그리게 만드는 동력은 예술혼처럼 고아한 어휘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도 우선될 수 없었던, 나와 그림이 구분되지 않는 처절하고 맹렬한 그림쟁이의 고된 노동은 그보다 원초적이고 고통스러운 운명 같았다. 작품은 엄청났다. 강렬한 색감과 표현의 에너지가 무시무시했고, 작가의 설명 없이는 이해할 길이 없는 도상으로 가득했다. 대개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가 작가 자신이라는 것만큼은 자명했다. 세상과 불화하고, 자신과도 원만하지 못한 여자의 고독과 신경증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림 속의 여자는 주로 화면 속에 혼자였고, 다른 존재와 함께 있을 때조차 눈을 맞추는 법이 없었다. 선생의 첫인상은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자신의 그림 속 여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일상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 허용되는 패션 위크에서나 볼 법한 대담한 옷차림과 신경줄이 있는 대로 팽팽해진 것이 가감 없이 느껴지는 시선이 모두 그랬다.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상처와 욕망을 감추는 기술을 배워본 적 없는 선생의 아이 같은 천진함을 조금쯤 엿볼 수 있었다. 분홍신의 저주처럼 끝까지 볼모로 잡혀 그림만 그려야 하는 운명도 있나 보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 괴롭고 힘들었다.

 

왼쪽 사랑의 슬픔(비나리), 91×117cm, Acrylic on Canvas, 2016. 오른쪽 붉은 여왕의 법칙, 162×130cm, Acrylic on Canvas, 2012.

 

왼쪽 하늘 길, 112×162cm, Acrylic on Canvas, 2016. 전생, 117×80cm, Acrylic on Canvas, 2012. 우리는 닮았다, 73×61cm, Acrylic on Canvas, 2014. 포커 페이스, 91×73cm, Acrylic on Canvas, 2019.

 

세월을 돌고 돌아 며칠 전 선생을 다시 만났다. 가속도가 붙는 황혼의 시간이 8년이나 흘렀지만, 선생은 여전했다. 오히려 더 생기가 도는 모습이었는데, 얼마 전 치른 청주시립미술관 기획전 <놓아라>의 여운 탓인 듯했다. 그림과 인생을 평행선상에 두고 작업실에서 그림과 홀로 대결하며 살아온 그에게 파릇한 젊음의 관객들과 마주 보고 교감하는 경험은 생경하면서도 설레는 것이었다. 황영자라는 발견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새로 기획된 전시 <나는 그림쟁이다>가 지난 10월 4일부터 11월 29일까지 신사동 가로수길 UM 갤러리에서 열린다.

 

몽상가, 117×91cm, Acrylic on Canvas, 2015.

 

아프다, 45×38cm, Acrylic on Canvas, 2009.

 

늙어가는 노래, 162×112cm, Acrylic on Canvas, 2017.

 

“사람들이 내 그림에 거부감이 있고 무섭다고 생각해서 살아 있을 때 내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냥 이 다음 세대를 위해서 내 생각만 그리면 된다, 그랬거든. 30~40년을 고생만 하다가, 이상하게 그림 그리면서 가난해졌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 그리면 화실비도 내야 하고 재료비도 써야 해서 그런 거겠지. 그림만 그리니까 식구들도 나를 환영 안 하고. 그러다가 2년 전에 그림을 접었어요. 그림도 창고에 넣고.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연락이 와서 그림을 다시 꺼냈는데 그거 정리하는 데만 7~8개월이 걸리더라고.”

선생의 그림 중엔 대작이 많다. ‘그래야 화풀이가 되니까’. 연원을 찾자면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야 하지만, 시작의 이유를 따진들 무엇 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림에 대한 자신감과 살아갈 기운을 찾으려고 그렸던 대작이 지난 전시에서 빛을 발했다. 미술계의 몇몇을 제외하고 알아주는 사람 없이 평생을 그려왔던 그림에 대한 젊은 관객들의 새삼스러운 환호는 마땅히 표현할 말도 찾기 힘들 만큼 낯설었고, 쑥스럽게 기뻤다. “좋았지 뭐. 남들 앞에서 당당하지도 못하고, 작업실에만 있어 버릇하니까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법도 잘 모르고.”

 

단추 정원, 117×91cm, Acrylic on Canvas, 2013.

 

어떤 양식과 전통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그의 천재성이 너무 늦게 발견됐다. 안타까울 필요는 없다. 용서와 화해, 사죄가 구분 없이 버무려질 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제법 많은 것이 아물고 여물었다.

 

“그보다 이제는 너무 각박하게 나를 몰아치지 말자고, 이만큼 나이가 들었으니까 순응하며 살자, 사람들도 좀 만나고 그러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그렇다고 늙어가는데 뭐 갑자기 크게 달라지겠어? 마찬가지지. 그림이 내 친구예요, 옛날부터. 그림하고 있을 때가 제일 편해요. 그 나이면 붓을 놓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나는 더 좋아지더라고. 여든이면 애기가 된다고 그러던데 그렇게 되니까 더 보이는 게 있어. 예전에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어쩌나 주저주저했는데 이제 더 상상을 펼치게 되는 거죠.”

 

행복했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10시간의 노동 뒤에 손이 저린다고 했고, 누가 그림 산다고 하면 아깝다고 했다. 내 집 안방에서는 자꾸 잠을 깨는데, 작업실에서는 유독 깊은 잠을 자는 이 운명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그림쟁이 황영자. 당신은 평생 그림쟁이다.

 

황영자 개인전 <나는 그림쟁이다>

일시 10월 4일부터 11월 29일까지
장소 강남구 압구정로 12길 25 UM 갤러리
문의 02-515-3970

 

고딕, 120×105cm, Acrylic on Canvas, 2018.

 

윤회의 업, 162×130cm, Acrylic on Canvas Collage, 2015.

 

과거로의 여행, 130×194cm, Acrylic on Canvas and Modeling compound, 2009.

 

왼쪽부터 노을빛, 73×61cm, Acrylic on Canvas, 2016. 사랑은 세월 가도 무관하다, 105×120cm, Acrylic on Canvas, 1999~2007. 사랑의 슬픔(비나리), 91×117cm, Acrylic on Canvas, 2016. 전생, 117×80cm, Acrylic on Canva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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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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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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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VOICE 에디터의 마음을 뺏은 의자

EDITOR’S VOICE 에디터의 마음을 뺏은 의자

EDITOR’S VOICE 에디터의 마음을 뺏은 의자

11월호 화보 촬영을 준비하면서 그간 애정했던 혹은 가보지 못했던 매장을 원없이 다녔다.

 

아이코닉 가구, 마리오 보타, 교보 타워, 리움 미술관, 원오디너리맨션

 

그중 자곡동으로 이전하면서 서울과 좀 더 가까워진 원오디너리맨션은 역시나 취향을 저격하는 1930~80년대의 아이코닉한 가구로 가득했다. 그런데 수많은 제품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의자가 있었다. 첫눈에 보자마자 왠지 ‘개미’가 떠오른 이 의자는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 Mario Botta가 1980년대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알리아스를 위해 디자인한 것으로, 그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강남 교보 타워와 삼성 미술관 리움을 설계한 건축가로 우리에게도 꽤나 익숙한 인물이다. 마리오 보타의 건물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에 빛과 재료를 적극 활용해 빛의 천재 건축가로 불린다. 단순하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을 담아냈기 때문일까 내가 한눈에 반한 ‘세콘다 Sedonda 602’ 체어는 딱 떨어지는 샤프한 블랙 선과 안정적인 구조로 진한 개성이 묻어났다. 과연 저 동그란 기둥 모양의 등받이와 딱딱한 좌판이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편안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정면으로 보았을 때, 옆에서 볼 때 또 뒤에서 바라볼 때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시 모든 면을 신경 쓴 건축가의 시선으로 만든 의자가 분명했다. 아쉽게도 촬영 콘셉트에 적합하지 않아 화보 앵글에 담지는 못했지만 아쉬운 대로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하고 싶었다. 아, 가격이나 물어볼걸 그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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