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김영훈 파티시에는 그 어려운 행보를 택한 흔치 않은 사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제과 명장인 김영모 파티시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2대째 제과의 대를 잇고 있는 그는 작년 말 30대라는 이른 나이에 프랑스 명장 자격인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를 획득했다. 본래 프랑스인의 전유물 같았지만, 김영훈 씨가 아이스크림 분야의 MOF를 취득함에 따라 외국인 최초로 명장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제과, 제빵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제과, 제빵은 어릴 적부터 유달리 친숙했지만, 배움의 과정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리옹에서는 학교에서 이틀, 현장에서 나흘 일하는 식으로 공부했어요. 일종의 도제 시스템처럼요. 매일 새벽 4시에 제과점에 나가 일을 하는데 진짜 힘들더라고요. 이 길이 맞는 건지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견습하던 제과점에서 도망쳐 한 달간 잠수를 타기도 했고요(웃음).” 어린 마음에 세계 대회만을 목표로 테크닉에만 집중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큰 스승이었던 가브리엘 파야송 Gabriel Paillasson은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 기술인이 되고 싶은 건지 물으며 꾸짖었다. 정말로 기술인이 되고 싶다면, 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노력하지 않느냐며 말이다. 그때부터 그는 제과 현장에서 기초를 닦고 테크닉보다는 ‘맛’이라는 기본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2013년 세계 대회에 나가 ‘작품’이 아닌 ‘제품’으로 상을 탔다. 프랑스 장인이 된 그는 다시 아버지 밑으로 돌아와 김영모 제과점으로 출근하고 있다.
명장도 됐으니, 좀 더 젊었을 때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 묻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아버지 밑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 “김영모 제과점은 아버지의 회사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제과 역사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잖아요. 제과 역사는 길어봤자 200년이 채 되지 않지만, 이만큼 성장했고 나름 우리의 스타일이란 것이 있어요. 그것은 하나의 전통이지 틀리고 잘못된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의 실정에 맞게 선배들이 만들어낸 변화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 기초를 무시하고 제가 봐온 것들로만 한다? 말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은 아버지 것을 제대로 배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우리의 전통을 탄탄히 배우고, 언젠가 먼 미래에는 자신의 것을 접목시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을 또 후배들한테 전수하고자 한다. 그 과정을 준비하는 게 앞으로 10년의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김영훈 파티시에는 먼 시간을 바라보며 천천히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펼쳐진 미래는 왜인지 선명한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