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장 프루베와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그러나 이들만큼 기억되지 못했던 이름 샤를로트 페리앙. 퐁피두 센터와 지난해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녀는 당시 여성 디자이너로서의 한계점을 돌아보게 한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그녀의 이름보다도 모습으로 먼저 알려졌다. 르 꼬르뷔지에가 디자인한 B306 혹은 LC4라 불리는 긴 의자에 누워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는 여성이 바로 샤를로트 페리앙이다. 의자 전체를 받쳐주는 둥근 튜브 덕분에 자연스럽게 회전하면서 다리를 위로 올릴 수 있는 이 의자는 르 코르뷔지에의 창작물로 알려져 있지만 크레딧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조력자의 이름이 함께 들어가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뛰어난 조력자 피에르 잔느레와 샤를로트 페리앙이다. 이 셋은 ‘마치 한 손에 달린 세 손가락처럼’ 함께 움직였다. 르 코르뷔지에가 최초의 현대식 공동 주택 유니테 아비타시옹을 디자인했을 때 페리앙은 내부 주방을 디자인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현대 주택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주방인 점을 감안하면, 페리앙의 공로가 적지 않다. 파리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페리앙이 처음 르 코르뷔지에와 면접을 보았을 때, 그는 “우리는 쿠션에 자수를 놓지 않습니다” 하는 굴욕적인 인사를 건네며 그녀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리앙은 자신의 명함을 놓고 나왔고, 그해 말 그녀의 작품이 출품된 1927 살롱 도톤 전시회를 본 르 코르뷔지에가 뒤늦게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사무실로 불러 가구 디자인을 맡겼다.
건축이 우위에 있고 실내 인테리어나 가구는 부수적으로 여겨지던 시대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구에 의해 공간이 살아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4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여성도 참정권을 얻게 되었고, 1950년 <엘르> 매거진이 여성만으로 이뤄진 가상의 정부를 구성했을 때 페리앙은 당당히 15번째 인물로 등장했다. 그녀의 뛰어난 덕목은 첫째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구름 책장’이라는 제목처럼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책꽂이는 놀랍도록 유머러스하다. 구름에서 영감을 얻듯 그녀는 모든 것에서부터 영감을 얻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두 번째 덕목인 콜라보레이션의 원천이기도 했다. 특히 예술가들은 그녀의 친구이자 동료였다. 1937년 만국박람회의 벽화를 위해서는 페르낭 레제와 함께 프레스코를 제작했으며, 레제의 추상화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형태는 종종 페리앙의 가구나 심지어 목걸이로 재탄생했다. 1952년 파리의 국제학생기숙사 튀지니 관을 제작할 때에는 소니아 들로네 등 예술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다채로운 색감으로 책꽂이를 만들었다. 그 외에도 호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 파블로 피카소 등과 교류를 나누었으며, 1940년대부터 해외를 다닌 덕분에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타국의 문화도 그녀의 작품 속에 녹아 있다. 페리앙을 필두로 잊혀졌던 여성 디자이너가 좀 더 많이 재발견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거둘 수 있는 또 다른 소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