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다양한 스툴이라니. 모양도 재료도 색상도 각양각색인 스툴로 가득 메운 공간에 눈길이 절로 갔다. 한눈에 봐도 하루이틀의 결과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장태훈, 김동훈 실장이 함께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제로랩의 작품이다. 2020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매일매일 SNS에 스툴을 공개하는 방식인 ‘스툴 365’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제로랩이 지난 시간을 콘텐츠로 풀어낸 장기 프로젝트다. “처음 제로랩을 만들 때 우선 10년만 버텨보자는 것이 목표였어요.10년 동안 제로랩을 운영하고 유지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어요. 대단히 감각적이거나 요즘 말로 힙해서라기보다는 보이는 듯 안 보이게 오랫동안 작업해왔고, 그런 꾸준함이 제로랩을 대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장태훈 실장이 프로젝트의 시작을 설명했다. 2010년 설립된 제로랩은 그간 전시 공간 디자인과 그래픽 작업, 다양한 그룹전에 참여하는 등 디자인과 제작을 함께 진행했다. “애초에 10년간 보여준 꾸준함과 성실함에 의미를 두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다 보니 각각의 스툴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어요. 사실 이번 상반기 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반년 치를 살펴봤는데, 역시 이렇게 묶여있을 때가 더 좋은 의미를 갖는 구나 싶었어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버리고 싶은 것도 있어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툴 하나 하나에 너무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지 않을까요. 또 하나에만 집중하다 보면 생각과 고민도 많아져 매 순간 순간 힘든 작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장기간 이어지다 보니 1차적으로 저희가 흥미를 잃으면 안 되거든요.”
칸마다 번호를 매겨 전시했다.
이들은 평소 작업하지 못했거나 머릿속으로만 구상했던 것을 만들어가며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다. 머리를 꽁꽁 싸매는 순간 되레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에 정말 즐기는 듯 보였다. “저는 사실 엉덩이를 댈 수 있겠다 싶으면 오늘부터 넌 스툴이야(!) 하는 편이에요.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대보면서 디자인을 구상하죠. 상황에 따라 3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을때는 그 시간 내에 만들어야하는 작은 도전이 되는 거죠.” 장태훈 실장이 설명했다. “저도 마찬가지겠지만 조금은 다른 것 같아요. 이 프로젝트는 형태의 다변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든 것 중에는 부실한 것도 많아요(웃음). 부서지더라도 어떻게 하면 동일하지 않은 형태를 만들 것인가에 포커스를 두고 있거든요. 그날에 따라 어떤 기능을 줄 것이며, 어떤 높이로 만들 것인지 그 두가지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하루에 7개를 만들 때도 있고요. 또 최대한 스타일링을 배제하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유롭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죠.” 김동훈 실장이 말했다. 이들은 현재 200여개의 작업물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아카이브가 된 것 같다며, 새로운 이미지를 찾기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스툴을 찬찬히 살펴볼 때도 있다고 한다. 무신사에서의 상반기 전시를 마친 제로랩은 다가오는 12월,365개의 스툴과 함께 완성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전했다. 후반기 전시 역시 딱딱한 미술관이 아닌 캐주얼한 공간에서 강연과 워크숍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연말에는 코로나19가 잠잠해져 보다 자유롭고 활동적인 전시로 찾아오길 기대해본다.
알록달록스툴,R스툴,포도스툴,해체 조립이 가능한 등받이 스툴 등 직관적이고 유쾌한 이름을 지닌 다양한 스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