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표상적인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까지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새로운 시도에 한발 다가선 스튜디오페페와 이야기를 나눴다.
스튜디오페페의 듀오 디자이너 아리아나 렐리 마미와 치아라 디 핀토.
밀라노에 기반을 둔 듀오 디자이너 스튜디오페페 Studiopepe는 살아 숨 쉬는 듯한 선명한 색감부터 포근한 파스텔 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컬러의 범주를 넘나들며 무한한 디자인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출신의 아리아나 렐리 마미 Arianna Lelli Mami와 치아라 디 핀토 Chiara Di Pinto는 2006년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후 대담한 컬러 사용과 함께 볼드한 형태에서도 섬세함을 놓치지 않으며 밀라노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우뚝 섰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디자인 페스티벌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며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마저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지만,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뉴노멀 시대에 걸맞은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대거 공개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받은 특별전 에 참가한 스튜디오페페는 새로운 방식과 소통에 적응하는 시간도 물론 필요했지만, 이제는 과도기적인 시대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한다. 스튜디오페페가 추구하는 방향부터 향후 디자인 업계에 찾아올 변화에 대한 생각까지 들어봤다.
달과 산을 형상화한 핑크 문.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진행된 제작 과정.
둘의 만남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대학교 때부터 서로 알고 있었다. 졸업 후 우리 두 사람은 멕시코로 휴가를 떠났고, 태평양 연안의 한적한 해변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후 남은 여행을 함께 보내게 되었고, 밀라노로 돌아와 함께 작업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몇 번의 작업 끝에 스튜디오페페를 설립했다. 풍부한 컬러감과 독창적인 시각으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스튜디오페페가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우리의 작업 스타일을 간략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제작자’라고 생각한다. 결코 사물의 표상적인 아름다움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를 깊숙이 탐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스타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살아온 배경이나 특정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LDF에서 선보인 ‘커넥티드’ 프로젝트는 스튜디오페페에게 꽤나 특별한 시도였을 것 같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미국활엽수수출협회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인 목재를 활용해 재미난 작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직 온라인을 통해서만 소통한다는 아이디어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겨내고 있는 이 특별한 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고, 큰 흥미를 느꼈다. 그간 우리가 해온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향이었지만 훌륭한 장인들과 함께할 수 있어 뜻깊었다.
핑크 문의 아이디어 스케치
2019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프로젝트.
작품 ‘핑크 문’에 대해 설명해달라.
갱신 주기와 새로운 시작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닉 드레이크의 노래와 가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강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닉의 노래 ‘핑크 문’의 가사에 대해 깊이 조사해본 바, 핑크 문은 대개 4월에 나타나며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걸쳐 나타나는 야생 꽃 잔디로 불리는 핑크 꽃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는 새로운 성장 시기를 나타내기 때문에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 더없이 완벽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신호로 보았고 이는 변화의 시대에 걸맞는 아름다움이었다.
핑크 문을 형상화해 작품으로 표현한 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닉의 노래를 프로젝트에 녹여냈고 유기적인 형태로 바꿨다. 테이블은 추상적인 한 쌍의 산 모양이고, 의자는 떠오르는 달을 의미한다. 이른 봄날의 풍경을 표현하고 싶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소통은 원활히 이루어졌나? 새로운 방식과 소통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둘이라는 사실조차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우리 나름의 방식과 균형을 찾아나갔다. 적응만이 답이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아주 이례적이었다. 보통 공장을 방문해 샘플을 검사하곤 하는데, 그와 반대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은 것은 동시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대로 일을 하면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한 말과 내용을 즉시 이해했다.
분더카머는 스튜디오페페가 모은 대리석과 광물, 예술 작품 등으로 채운 가상의 공간이다.
이 같은 디지털 소통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일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의 영향을 직접 느끼고 있나?
밀라노는 코로나19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도시이며, 이탈리아는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은 최초의 유럽 국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맞서려 했지만 록다운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갇혀 소통과 창작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했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상황에 맞서 창작 활동을 더욱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진행 중이던 모든 프로젝트를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 디자인 업계에는 어떠한 변화가 찾아올 것 같나?
이러한 비접촉 시대는 특히 공공장소의 접근성 측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다. 우선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간의 소통을 해결하는 게 시급했고 가능한 한 우리 곁에 있는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도기적인 상황이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떠한 결과도 초래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비접촉 접근 방식으로 인해 집이 하나의 피난처로 간주될 것이며, 집과 같은 사적인 공간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