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침체된 시기를 겪고 있는 요즘, 희망과 자발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아트 트렌드는 우리를 단숨에 마술적인 감상에 빠지게한다.
거대한 식빵과 아보카도, 바나나 위에 누워 잠든 고양이로 장식된 우르스 피셔의 새로운 작품은 루이 비통 메종 4층을 마술적인 공간으로 바꿔버렸다. 코로나19로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바꿔줄 매직 스페이스다. 벽과 바닥, 천장 전체를 명화로 바꿔버리는 미디어아트 전시회는 또 어떤가? 유명한 반 고흐의 작품으로 여행하는 느낌이다. 우리의 현실을 마술처럼 바꿔주는 신기술 AR도 속속 핸드폰에 탑재되는 중이다. 이런 예술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점점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스트리트 아트가 있다. 지난 여름 서울 강남의 거리를 시원한 파도로 장식한 디스트릭트 d’strict의 공공미술도 그중 하나다.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등 이제는 고인이 된 전설적인 인물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고, 긴 시간 동안 잊혀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케니 샤프의 행보는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LA 라크마 미술관, SF 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을 돌며 전시중인 ‘코스믹캐번 Cosmic Cavern’은 무려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뉴욕 타임스퀘어의 아파트에서 키스 해링과 함께 살며 집 안의 옷장에 설치했던 코스믹 클로젯 Cosmic Closet이 출발점이다. 팝 아트와 스트리트 아트에 경도된 두 젊은 작가는 텔레비전, 붐박스 등 신기술에 밀려 금세 쓰레기가 되어버린 폐기물에 형광 페인트를 칠해 예술로 되살려냈다.
무려 40년 전의 작품이 여전히 소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애초부터 미술관의 소수 엘리트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 누구나를 위한 소통의 예술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자발적인 에너지가 보는 이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보는 것도 신나는 것 같다. 때때로 나는 그것을 마술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외부의 어떤 요소가 내게 흘러 들어와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설명은 왜 그의 작품이 마술적 공간을 제안하려는 최근의 아트 트렌드와 맞아 떨어지는지 설명한다. 이러한 작품은 필시 관객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이다.
지난 2019년 스페인 이비자 섬의 신비로운 미술 전시장과 나브 살리나 La Nave Salinas의 전시가 대표적이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독특한 이곳에서 처음으로 전시한 예술가는 바로 카우스 Kaws. 그 뒤로 키스 해링, 빌 비올라, 케니 샤프에 이르기까지 마술적 공간을 제시하는 예술가들이 초대받았다. 수백 점의 동그란 얼굴은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성격을 나타낸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우리 속에 존재하는 기쁨이와 투덜이, 까칠이, 슬픔이, 버럭이이다. 괴기한 얼굴은 멀티페르소나 시대에 우리의 상태를 표시하는 프로필이자 공격적인 에너지를 방출시킨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미술 기획자 제프리 다이치의 눈에 들어 LA 다이치 프로젝트를 통해 더 넓은 세계로 알려졌고, 마이애미 아트바젤 프로젝트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다. 전염병이 세계를 덮친 지난해, 케니 샤프는 예술가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은 반성하고 경고하고 희망을 제공하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건 오랫동안 예술이 해온 일이다. 희망과 색다른 제안이 더없이 필요한 지금, 그래서 미술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소개한 작가들 외에도 젊은 작가군이라 할 수 있는 니콜라스 파티, 오스틴 리를 비롯해 앞선 세대에서는 조지 콘도와 조나스우드 등이 우리를 마술의 공간으로 인도하며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