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처럼 당연해 보이는 일상을 그저 받아들이지 않고 해체하며 비튼다. 마탈리 크라세가 구현하는 세계는 늘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줄곧 변화라는 단어를 거대한 군상의 역동적인 움직임으로만 치부했다. 사실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이 두 글자가 탄생하는 것인데 말이다. 잠시 멈춰 항상 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야기되는 게 아닌가. 개인과 상업 공간을 구분 짓지 않고 새로운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 주방 용품과 가구, 조명까지 다양한 리빙 영역에서 뚜렷한 입지를 굳혀온 마탈리 크라세 Matali Crasset는 이렇듯 늘상 물음표를 던지는 디자이너다.
2003년 집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채도로 꾸민 호텔이 각광받던 당시의 파리에 불쑥 선보이며 9가지 컨셉트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를 펼쳐낸 하이 호텔 Hi Hotel처럼 그녀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제시하곤 했다. 파리 국립고등산업미술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마탈리 크라세는 졸업과 동시에 밀라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데니스 산타 치아라,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과 함께 일하기시작했다. 특히 필립 스탁은 그녀를 논할때면 반드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필립 스탁과 함께 5년 동안 일했던 그녀는 자신의 디자이너적 원동력 중 하나로 그를 꼽을만큼 자신감 넘치는 작품세계를 구현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기 때문.
이후 1997년 파리 디자인 대상을 수상한 마틸리 크라세는 다음해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설립했다. 추상적인 공간 디자인, 조형, 가구 등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으로 2006년 프랑스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되는 등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보이는 작업이 인간과 사물 혹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받아들이듯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숙제처럼 여기며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이다. 섹스 토이라는 단어 대신 ‘러브 토이’라 명명하며 아기자기한 곡선을 활용해 여성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욕망을 표출할 수 있도록 의도한 ‘8가지 천국’, 아이를 위한 공간이지만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를 기하하적인 도형으로 엮어 하나의 조형 작품처럼 만든 스트리 앤 컴패니지스 등은 이러한 숙제를 골똘히 고안한 흔적이 느껴지는 결과물이다. 지금도 여전히 궁금증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탈리 크라세는 변화를 주도하는 예술가로서의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