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 도착해 배를 타고가다 보면 약 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무라노 Murano에 도달하게 된다. 도시의 중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큰 수로를 거닐다 보면 주변에 줄지은 크고 작은 가게들이 대부분 유리공예 공방이라는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베니니 Venini도 바로 유리의 섬이라 불리는 이곳, 무라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본래 무라노 섬은 유리공예가 한창 꽃피운 1200년대 후반, 고유의 유리공예 기술이 타국에 퍼질 것을 염려해 수많은 유리 공예사를 강제 이주시킨 곳이었다. 탈출을 시도하면 장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물론, 섬이라는 제한적인 지리적 환경에서도 장인들의 예술혼은 불타올랐다. 유리공예외에는 어느 것도 시도할 수 없을 만큼 제재가 강했지만, 그로 인해 많은 공예 장인들이 대를 이어가며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수행할 수 있었기에 새로운 기법과 독특한 질감을 자랑하는 유리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한 예로, 여러 색의 유리를 겹겹이 쌓아 길게 늘려 만드는 무라노 유리 또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서 개발되고 생산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무라노의 명성을 더욱 세계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었던 핵심 인물은 바로 지아코모 카펠린 Giacomo Cappelin과 파올로 베니니 Paolo Venini이지 않을까. 레온치니 광장에서 작은 앤티크 공방을 운영하던 지아코모 카펠린은 당시 변호사였지만 유리공예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파올로 베니니를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던 두 사람은 1921년 유리공예 브랜드 베니니를 창립한 후 이듬해 개최된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베니니의 상징과도 같은 화병 베로네세 Veronese 등의 제품을 선보이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유리라는 소재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정교하고 이색적인 실루엣과 표면에 일렁이는 독특한 색채의 향연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 두 가지 특징은 베니니의 정체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천년간 꾸준하게 발전해온 무라노의 유리 세공 기술을 마치 보존이라도 하듯 고스란히 계승하려는 의지와 함께 가감없이 발휘하는 독창적인 미학은 유리공예를 예술의 세계로 편승시킨다. 이는 생활적인 제품에 한정짓지 않고 모든 제품을 ‘아트 글라스’라 일컬을 만큼 예술의 한 장르임을 공고히 하려는 베니니의 굳건한 철학이기 때문. 그렇기에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을 끊임없이 등용하는 신인 발굴 프로젝트나 파비오 노벰브레, 에토레 소트사스, 지오 폰티, 카를로 스카르 파, 론아라드 등 시대적인 예술가와의 협업을 꾸준하게 이어온 행보는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 오일 램프로 유리를 가열하는 램프 워킹 등의 제작 기술과 과정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온 방식을 그대로 사용할 만큼 베니니는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이 요 구되는 유리공예 작업에 있어 정도를 걷는 것을 단호히 고수한다. 재료의 질은 기본이며 예민하다 느껴질 만큼 섬세한 세공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장인들간의 합과 전반적인 제작 과정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마에스트로의 지휘까지, 하나의 공예품이 나오기까지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허투루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제오디 Geodi, 고부람 Goburam, 무라나 Murana 등 베니니가 선보인 모든 제품이 아트피스로의 뛰어난 가치와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후에도 안도 타다오, 알레산드로 멘디니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작업을 선보이며 꾸준히 독자적인 아트 글라스의 세계를 구축하는 베니니는 흘러온 1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 듯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리아컬렉션을 통해 베니니의 다양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