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계절마다 동물의 뿔과 쓰디쓴 약초를 넣고 달인 한약을 콜라처럼 마셔대던 아이가 있었다. 그 병약한 꼬꼬마는 어느덧 자라나 유흥을 좋아하는 30대 중반이 되었다는 새드 엔딩 스토리.
르 메르디앙 호텔 ‘허우’의 불도장.
예상했겠지만 에디터의 과거다. 툭하면 허약했고 여전히 허약하다. 나이를 먹고는 더욱 골골대는 편인데, 특히 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에는 술도 줄이고, 몸에 좋다는 산해진미는 모조리 긁어먹으며 몸을 사려야만 그나마 버틸 힘이 생긴다. 철철마다 보양식은 필수! 2019년, S/S 보양의 시작은 불도장으로 끊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도장을 전파한 후덕죽 셰프의 것으로 말이다(얼마 전까지 신라호텔 팔선을 총괄하던 그는 최근 르 메르디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허우’를 열었으니 팬분들은 헛걸음하지 마시길). 불도장의 유래는 청나라로 거스른다. 승 불 , 넘을 도 , 담장 장 이라는 이름처럼 어느 학자가 여러 재료를 항아리에 넣고 오랜 시간 끊였는데, 그 향이 담을 넘어 절에 있는 승려에게까지 풍겼고 그 때문에 담을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다. 불도장은 중국에서도 무척 귀한 음식이기에 귀빈이나 국빈을 모실 때 접대하곤 한다. 후 셰프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탕을 좋아하고, 또 보양식도 좋아하니 불도장을 들여오게 됐죠. 중국이 워낙 넓다 보니 국물 또한 다양한데, 특정 지방에서는 걸쭉한 국물로 만들기도 해요.” 중국이 워낙 큰 땅이다 보니, 조리법도 각기 다른 편이다. 하지만 후덕죽 셰프의 불도장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청아하게 맑다. 6시간 동안 푹 고았다는 불도장을 받아들고, 국물을 한 입 떠먹어보았다. 재료가 아낌없이 내놓은 감칠맛이 혀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휘휘 젓다가 재료를 낚시하듯 건져 올려본다. 오골계, 자연송이, 관자, 해삼, 샥스핀까지 소위 진귀하다는 꾸밈이 붙는 재료는 여기에 다 모였다. “불도장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술보다 중국 차와의 페어링을 추천해요. 특히 입을 개운하게 하는 보이차와 가장 궁합이 좋습니다.” 후 셰프가 중국 영화에 나오는 도인처럼 은은한 미소를 띠며 권했다. 국물 한 입, 샥스핀 한 입, 보이차 한 잔. 국물 한 입, 자연송이 한 입, 보이차 한 잔. 땀이 쑥 빠지며 나른해진다. 이렇게 또 망망대해 같은 여름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