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또 야근을 했다. 잡지판에서 몇 년째인데도 도무지 익숙하지가 않다. 머릿속에 가득한 종이 쪼가리들을 훌훌 털어내고 싶어 텅 빈 강남대로를 정처 없이 쏘다녀본다. 언주역에서 학동역으로, 학동역에서 을지병원 사거리로, 그리고 디태치먼트로. 그렇다. 오늘의 목적지는 신사동의 내추럴 와인 바 ‘디태치먼트’다.
깔끔하게 한잔하고 싶을 땐 여기만 한 곳이 없다. 주방이 시원하게 들여다보이는 스탠딩 바에 서서 와인을 잔으로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참고로 테이블에 앉을 경우 와인은 병으로만 주문할 수 있다). 글라스로 즐길 수 있는 와인의 종류도 꽤 있어, 골라 마시는 재미도 있다. 근사한 음식을 스몰 플레이트로 즐길 수 있는 것도 좋다. 사람들로 붐비는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차가운 대리석 바에 몸을 기댄 채 체코산 와인 나흐 Nach를 주문했다. 벽면에 붙여놓은 트레싱지를 통해 번지는 빛이 묘한 분위기를 낸다. 와인으로 가득한 까브 Cave 같은 느낌도 들고, 어쩔 때는 차가운 빙하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와인을 마시다가 잠시 주인장이 여행을 하며 사모았다는 근사한 소품들도 구경해본다. 사갈 수도 있다는 말에 더욱 열심히 구경한다. 그러다 조금 심심해져 인상 좋아 보이는 주인장을 붙들고 신상을 캐보았다. 그의 직업은 가구 디자이너. 취미로 즐기던 내추럴 와인에 대한 사랑이 커져, 이렇게 가게마저 열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 4월에는 프랑스 아를에서 열리는 내추럴 와인 박람회까지 다녀왔다고. 하나에 빠지면 이렇게 열성적인 사람들이 아주 가끔 있다. 대체 내추럴 와인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몇 년 전 일본에 갔다가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마셔봤어요. 뭐 이렇게 신 와인이 있나 싶었죠.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그 뒤로 내추럴 와인을 파는 곳을 찾아다니며 마셨는데, 결국 이렇게….” 그것은 마치 평양냉면이나 고수, 두리안 같은 미식가의 음식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비슷했다. 자꾸 마시다 보면 새로운 미식의 세계가 열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알코올로 마음을 달래다 보니, 끈적하게 달라붙었던 일상이 조금씩 디태치 Detatch되는 것 같다. 잘 가라, 친구들. 내일 또 만나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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