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주당들에게 요즘 무슨 술을 마시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이리도 화려한 리스트가 왔다.
QUESTION
1 물처럼 음료처럼 데일리로 마시는 술이 있는가?
2 요즘은 어떤 것에 꽂혀 있나?
3 이제 슬슬 가을인데, 어떤 술을 마셔볼 생각인가?
4 누구나 쉽사리 시도할 수 있는 나만의 페어링법이 있다면?
주영준(바 틸트 바텐더)
1 위스키 하이볼. 위스키와 탄산수면 충분하고, 레몬이나 통후추가 있다면 더욱 좋다. 1만원에 4캔을 파는 편의점 맥주만큼이나 맛있고 싸고 편하며 통풍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2 10년 전 바를 열 때부터 지금까지 꽂혀 있는 술은 ‘진’이다. 고전적인 런던 드라이 진보다는 다양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새로운 진에 관심이 간다. 남아프리카에서 만든 포도 진이나 중국에서 만든 마라향 진 같은 것들. 진은 향신료와 독주의 조합으로 다양한 국적의 진이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가 재미있다.
3 역시 여름 동안 조금은 소홀했던 위스키를 마시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격이 훌쩍 뛰어버린 쉐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를 대체할 요량으로 보이는, 흥미로운 포트 캐스크 숙성 위스키가 많이 보인다. 병에 ‘Port Cask’라고 적혀 있는 것을 아무거나 산다.
4 근래 한입 거리로 소포장된 재미있는 것이 많이 나와 있다. 훈제 굴이나 게튀김, 마라곤약 같은 것들. 대개 향이 강한 친구들이니 향이 강하고 독한 버번 같은 걸 마셔주면 좋다.
박준우(더 라운지 셰프)
1 덴마크 맥주 칼스버그를 물처럼, 프랑스 뻔한 지역에서 나오는 3만원 선의 레드 와인을 음료처럼 마신다. 베리 브로스 앤 러드, 신세계 L&B 와인은 가성비도 좋다.
2 샤토 라 갸르드 블랑 같은 클래식한 올드 월드 와인을 맹목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지인들한테도 추천해보지만, 온통 내추럴 와인 일색이라 청개구리가 된다. 힙하지 못한 술꾼은 이렇게 무시나 받는다.
3 날씨가 쌀쌀해지면 약간 텁텁한 레드 와인도 수월하게 넘어간다. 와인 애호가는 시도 때도 없이 ‘올빈’ 예찬을 늘어놓지만 10월은 사실 싸구려 ‘영빈’도 먹을 만한 계절이다.
4 페어링의 이론적 규칙이 있다고는 하나,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그것이 최고의 페어링이다. 우메보시와 라거 맥주, 감자조림과 화이트 와인, 안초비와 로제 와인을 페어링하는 것을 좋아한다.
김아네스(비노스앤 대표)
1 취급하는 게 내추럴 와인이다 보니 일상적으로 마시고 있다. 생산자마다 다르기는 하나 주시한 매력이 있어 포도 주스 마시듯 홀짝거리게 된다. 르 헤장 에 랑쥬 같은 것을 즐겨 마신다.
2 스트로마이어 바이스 넘버 4 같은 오스트리아 내추럴 와인에 꽂혀 있다. 오스트리아는 생소하지만 고품질의 내추럴 와인이 많다. 개인적으로 화이트 와인에 마음이 가는데, 그뤼너 벨트리너 품종과 피노블랑 등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기분 좋은 아로마와 적당한 산도, 과하지 않은 바디감이 좋다.
3 여리여리하면서도 과일 향이 풍부한 가메, 피노누아 품종으로 만든 내추럴 레드 와인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10월과 잘 어울리지 않나 생각한다.
4 장칼국수에 무게감 있는 내추럴 레드 와인을 곁들이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티라미수와 내추럴 스파클링 와인인 피트나우어 피낫, 드라이한 로제 또는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을 함께 먹는다.
이승훈(백곰막걸리 대표)
1 나에겐 모든 술이 물이나 음료 같다. 특히 막걸리는 나의 생활 음료다. 요즘 즐겨 마시는 것은 나루생막걸리. 서울에서 농사 지은 경복궁 쌀로 빚은 것으로 편안하면서도 감미로운 맛이 매력적이다.
2 요즘 나날이 확대되고 있는 사과 발효주 중에서도 충주산 사과로 만든 스윗마마에 꽂혀 있다. 사과의 달콤한 향과 맛을 잘 살리면서도 청량감이 좋아, 좋은 경치를 보며 한잔하기에 딱 좋다.
3 날이 쌀쌀해지면 몸을 따듯하게 데워줄 독주 한잔이 간절하다. 전통 증류식 소주인 미르는 요즘 업계에서 한창 떠오르는 루키다. 누룩 향을 더한 풍부한 향미가 일반 소주와는 비교 불가다.
4 햄버거와 막걸리가 은근 잘 어울린다. 특히 적당히 탄산감 있고 살짝 산미가 받쳐주는 막걸리와 먹으면 금상첨화. 복순도가 손막걸리를 추천한다.
임병진(바 참 바텐더)
1 아메리카노 칵테일을 마신다. 엄청 화려하거나 깊은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만들기도 쉽고 좋은 캐릭터의 칵테일도 많지 않다.
2 추사와 려. 우리의 정서를 지닌 추사는 안정된 사과 브랜디라는 생각이 든다. 늦은 밤에 자주 마신다. 완성도 높은 소주인 려는 고구마 특유의 고소함과 쌀의 화사함이 어우러진 조화가 사랑스럽다.
3 아무래도 가을이니 한국의 사과 브랜디인 추사가 생각난다. 조금 더 쌀쌀해지면 네그로니도 자주 찾는다. 포근함과 풍성함, 에너지를 주는 칵테일이라고 생각한다.
4 얼음 잔에 코로나 카스 같은 가벼운 라거 맥주를 따르고 데킬라 원 샷을 넣어 타코와 즐긴다. 데킬라의 은은한 매운맛이 여운으로 남아 타코나 버거에 들어 있는 양념과의 조화가 좋다.
이지민(대동여주도 대표)
1 한국 와인. 맛도 좋고 2만~3만원대로 부담도 없다. 충북 영동의 도란원에서 만든 샤토 미소, 여포 농장에서 만든 ‘여포의 꿈’은 품질을 검증 받은 화이트 와인이다. 퇴근 후 집에서 한잔하며 릴랙스하기 좋다.
2 송해 선생님처럼 90세가 넘어도 건강하게 술을 마시는 게 나의 목표다. 그 일환으로 최근 ‘간 저축’에 돌입했다.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며 간의 피로도를 덜어내고 있는데, 가장 맥주스러운 맛을 지닌 하이트제로 무알코올 맥주를 박스로 사놓고 마신다.
3 날이 쌀쌀해지면 고도주 한잔으로 몸을 데우는 게 제격이다. 개인적으로 꼽는 증류주는 삼해소주가에서 생산하는 삼해귀주. ‘종결자’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삼해소주를 2차, 3차 증류해 극소량만 얻어낸 귀한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70도로 높은 편이나 한 모금만 마셔보면 안다. 오죽하면 사람이 귀신 되고, 귀신이 사람 되는 술이라고 할까.
4 최근 밀고 있는 것은 ‘피막’이다. 고소한 피자 도우는 곡물로 발효, 숙성시킨 막걸리와 찰떡궁합이다. 탄산감 있는 스파클링 막걸리를 추천한다. 경쾌하게 즐기기 좋다.
도정한(핸드앤몰트 대표)
1 피노누아 와인인 말로버러는 빛깔과 맛이 연하고 부드러워 자주 손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마셔도 숙취가 없어, 몸이 잘 받는 와인 품종 같다는 생각도 든다.
2 배럴 에이지드 맥주에 빠져 있다. 특히 사워 에일인 루즈드브아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소중한 사람들과 마시려고 아끼는 술이다. 배럴 에이지드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숙성시킨 배럴통에 맥주를 담아 2차로 양조시키는 기법을 말하는데, 루즈드브아는 프랑스산 샤도네이 배럴에서 7개월간 숙성했다.
3 고도수 술이 많이 생각난다. 한 모금만 마셔도 몸이 뜨끈해지는 느낌이 좋다. 싱글 몰트위스키 글렌 그랜트 10년산은 깔끔하면서도 매일 즐겨도 부담스럽지 않다.
4 시에라네바다 페일 에일에 피자나 버거를 먹는다. 미국 페일 에일의 원조, 정석이라 불릴 만큼 유명하다. 톡 쏘는 탄산감에 적당한 홉 향이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와인 같기도 하고 맥주 같기도 한 구스 아일랜드 소피와 고기를 먹어도 좋겠다.
박민욱(파크하얏트부산 소믈리에)
1 최근 비오디나믹, 내추럴, 오가닉 등의 유기농 와인이 많이 수입되고 있다. 그중 유기농 뉘앙스가 부담스럽지 않은 흐나르다 파슈와 부지 세르동은 알코올 도수도 낮고 입안에서 부딪히는 부분도 없어 술술 넘어간다.
2 프랑스 쥐라, 알자스 지역에서 만든 유기농 화이트 와인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미셸 가이에와 마르크 크레이덴 바이에 매료되었다. 산뜻하고 기분 좋은 산미와 싱그러운 과실맛이 매력적이다.
3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가벼운 레드 와인이 생각난다. 파니 사브르는 가벼우면서도 입안을 감싸는 질감 좋은 타닌과 풍부한 붉은 과일 향과 꽃 향기가 10월에 딱이다.
4 많은 분들의 ‘최애’ 패스트푸드 3종(버거와 감자튀김 세트, 치킨, 피자)을 모두 커버하면서 일상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와인이 있다. 바로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샴페인이다. 요즘은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샴페인이 많아졌다. 두 가지만 추천하자면, 3만원대의 그루에와 4만원대의 앙드레 끌루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