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일인지라 힙스터처럼 흥미로운 장소에 가볼 일이 잦다. 이번 달에도 많은 곳을 바삐 돌아다녔다. 마음에 콕 박힌 곳을 하나 꼽자면 동부이촌동의 봄파스다.
“해외에 있는 봄파스에 우연찮게 갈 일이 있었는데,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가게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김기용 대표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나무통에서 바로’를 뜻하는 봄파스는 술과 오일, 식초를 다루는 식재료 편집숍으로, 오크통이나 로마식 항아리에 담아 유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방식으로 맛과 신선도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다양한 종류와 희귀성이다. 오일만 해도 프랑스 장인인 윌레리 보졸레의 월넛 · 헤이즐넛 오일뿐 아니라 아몬드, 블랙 커민, 살구 등 신기한 것이 즐비했다. “저희가 파는 발사믹 식초는 크게 전통적인 식초와 과일 식초로 나뉘어요. 과일 발사믹 식초는 모데나의 전통 방식에 포도 대신 과일을 사용해 만든 거예요. 저렴한 식초는 빙초산에 과일 농축액을 섞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과일을 넣어 발효시켜 만들죠.” 전반적으로 모두 훌륭했지만,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발사믹은 혀가 놀랐다. 하지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역시 술 코너. 힐끗거리는 에디터의 마음을 알아챈 김기용 대표가 웃으며 시음을 권했다.
코냑, 아르마냑, 위스키, 럼, 리큐르 등 종류가 많았는데, 모두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것들이었다. 위스키만 봐도 세계 최대 위스키 생산량을 자랑하는 인도의 ‘암리타’와 해외 이케아에서도 판매되는 스웨덴의 ‘발보’,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틸링 증류소의 위스키 등 캬(!) 하는 소리가 절로 나는 것들이 많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하나 꼽자면, 쿨일라 위스키와 인치고어 위스키를 블렌딩한 ‘투 캐스크’다. 스모키함과 상쾌한 시트러스, 바닐라 향이 순차적으로 인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식초, 오일처럼 원하는 분량대로 조금씩 사보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법규상 술은 본토에서 병입을 해서 들여와 용량이 제한적이라고. 고민하다 봄파스의 보틀링 시리즈인 ‘더 프라이빗 캐스크’ 한 병을 사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유 없이 허전한 밤, 조금씩 홀짝대며 마음을 달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