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흐르고 바람이 지나며 디자인이 머문다. 한류 스타가 일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곳, 남해 사우스케이프의 빌라동을 찾았다.
1 노을을 배경으로 한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2 ㅁ자형 천장이 독특한 오너스클럽 입구.
3 리네로제의 플룸 소파가 놓인 빌라동 침실.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명품 가구를 금세 찾아서 볼 수 있고 국제적인 페어에 방문해 내로라하는 브랜드의 가구들을 둘러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예술 작품 같은 가구를 실제 공간에 배치한 사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30년 이상 사랑받아온 타임을 비롯해 시스템, SJSJ 등 국내 유수의 여성 패션 브랜드와 랑방, 끌로에, 지미추 등 해외 명품 브랜드를 소개해온 한섬의 정재봉 회장과 문미숙 감사가 남해에 골프 리조트를 짓는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많은 이들의 마음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해온 두 사람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그만한 각오와 인생을 걸 만큼 열정이 있었을 터.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은 오픈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곳을 방문한 이들에게 건축적, 디자인적 충격을 안겨주었고 최근에는 한류 스타 배용준, 박수진 부부가 해외를 마다하고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곳이다. 건축가 조민석이 지은 클럽하우스와 건축가 조병수가 지은 호텔, 빌라동이 조화를 이루며 해안가의 품에 안겼고 건축을 위해 지형을 다듬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건축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옥스 체어와 럭스툴의 그래픽적인 러그를 매치한 거실.
B&B 이탈리아의 업 주니어 체어와 월 시스템 플랫 C, 포스카리니의 트위기 조명을 매치한 거실.
1 빨간색 드롭 체어가 포인트인 욕실. 2 분홍색 펠리칸 체어와 보라색 러그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3 국내에 처음 소개된 마티아치 체어.
사우스케이프의 오너스클럽을 찾은 지 1년이 지나 다시 남해를 찾았다. 구불구불한 지형이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가에 위치한 사우스케이프의 빌라동을 보기 위해서였다. 빌라동은 프라이빗하게 운영되는 단독 건물 형태의 빌라 단지로 이곳 호텔의 건축을 맡았던 건축가 조병수의 작품이다. 내부는 공간 디자인 업체인 스튜디오 트루베와 가구 업체 에이후스가 맡아서 진행했다. 빌라동이 특별한 이유는 조병수 소장의 건축과 남해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경관 외에도 세계적인 디자인 가구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구 뮤지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위용을 지닌 빌라동에서도 가장 넓고 수영장이 딸려 있는 A동은 배용준, 박수진 부부가 신혼여행 때 머문 공간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방문한 빌라동은 더욱 운치가 있었고 실내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완벽한 컬렉션으로 방문객을 맞이했다. 프라이빗하게 운영되는 빌라동은 스타일 면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눠져 있다. 스튜디오 트루베가 선보인 중후하고 묵직한 이탤리언 스타일과 북유럽 가구를 중심으로 한 에이후스의 모던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이다. 빌라동의 일부 스타일링을 담당했던 에이후스의 김래연 팀장은 보여주기 식의 쇼룸 같은 공간이 아니라 실제 머무는 이들을 위한 가구 컬렉션을 구성했다며 “빌라동은 구조에 따라 크게 4개의 군으로 나눠져 있어요. 외관은 같지만 내부 인테리어가 다른 점이 각 빌라동의 특징이에요. 에이후스에서 담당한 빌라는 프리츠 한센, 루이스 폴센, 아르텍, 원 컬렉션 등 북유럽 브랜드 제품을 위주로 따뜻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로 연출했어요. 여기에 모로코산과 럭스툴의 카펫 등을 적절하게 매치해 현대적인 북유럽 스타일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죠”라고 전했다. 가장 공들인 공간이기도 한 A동의 문을 열면 바버&제이 오스거비가 디자인한 B&B 이탈리아의 토비 이쉬 테이블을 마주한다. 또한 벽에는 자줏빛 반사 소재의 작품을 설치해 모던하면서도 파격적인 첫인상을 준다. 거실과 응접실, 침실, 욕실, 주방 등 일반적인 빌라의 공간 구성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바다를 벗 삼아 펼쳐진 실내 컬렉션은 세계적인 어느 빌라나 리조트와 겨루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핀 율의 베이커 소파가 놓인 공간은 어떠한가. 아르텍의 플로어 조명 A805와 어우러진 이 공간은 눈앞에 펼쳐진 남해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2층 욕실에서는 우거진 숲을 볼 수 있으며 레드 컬러의 드롭 체어가 화룡점정처럼 놓여 있어 산뜻함을 더했다. 빌라동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가죽 소재의 그랑프리 체어와 루이스 폴센의 아티초크 조명 그리고 김희원 작가의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가 걸려 있는 B동 다이닝 공간이다. 통유리 벽으로 테라스와 구분된 다이닝 공간은 천고가 높고 샹들리에처럼 화려한 아티초크 조명이 달려 있어 멋스러운 북유럽 가정집에 초대 받은 듯한 기분이다. 단차가 있는 구조로 나무 패널로 시공한 천장과 북유럽 거장들의 가구가 어우러진 로프트 스타일의 거실도 이국적이다. 럭스툴의 그래픽 무늬 러그를 깔고 옥스 라운지 체어를 둔 거실과 가에타노 페세의 둥글둥글한 스모 체어를 둔 각각의 B동 거실은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래연 팀장은 “A동과 B동 테라스에 놓인 마티아치 의자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거예요. 또 기존에 보아온 가구의 배색이나 소재도 이번에는 정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죠. 이 정도로 최고급 소재를 사용하고 컬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스타일링을 하면서도 재미있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던 현장이었어요”라며 빌라동 프로젝트를 진행한 소감을 전했다.
포잇 소파와 아이 테이블로 포근하게 연출한 침실.
알도 차파로의 자줏빛 오브제가 포인트인 빌라동 거실. B&B 이탈리아의 토비 이쉬 테이블과 어우러져 대담한 분위기를 풍긴다.
1 배용준, 박수진 부부가 머물렀던 빌라동에는 프라이빗한 수영장이 달려 있다. 2 바다를 그림 액자처럼 감상할 수 있는 미니 거실. 3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남해 해안가를 바라볼 수 있는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김희원 작가의 사진 작품과 가죽 소재의 그랑프리 체어를 둔 다이닝 공간.
사우스케이프의 빌라동은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가구 선택과 배치가 실현된 공간이 분명하다. 일례로 보랏빛이 감도는 카펫과 분홍색 패브릭으로 마감한 펠리칸 체어는 일반적인 공간에서는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코너마다 탁월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빌라동은 디자인이 건네는 감동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정재봉 회장은 원래부터 수변을 좋아했는데,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오너스클럽의 테라스에 앉아 이 해안가를 본 뒤 이곳에 리조트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사우스케이프 같은 리조트가 계속 생겨날지, 만일 그렇다면 지금의 선택이 선구적이었고 한섬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말했다. 덧붙여 모든 공간의 디자인이 너무 과하지 않느냐며 ‘오버 드레스업’에 대한 고민도 언급했다. 사우스케이프 같은 디자인 리조트가 또 생겨날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정도의 규모와 안목을 가지고 리조트에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빌라동을 비롯한 사우스케이프의 공간은 과시나 사치스러움이 아닌 세계적인 수준의 공간 디자인에 목말라 있던 이들을 위한 선물 같은 제안이다. 언젠가 사우스케이프를 오마주한 제2의, 제3의 리조트가 생겨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이곳, 사우스케이프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