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과 사제, 순례자들이 오랜 세월 시바 왕국의 영토를 지켜온 정교회 동굴 교회당에 모여 열정적으로 기도를 올린다. 그렇게 아프리카의 영혼은 다음 세대로 이어져 간다.
나일 강에서 아랍 반도까지 펼쳐진 악숨의 기독교 왕국. 그 지나간 번영을 뒤로 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고관들이 노트르 담 드 시온 Notre Dame de Sion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거행된 성지주일의 호산나 퍼레이드에 참관했다. 울타리 주변에는 수많은 신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성 금요일인 시클렛 Siklet이 시작되는 랄리벨라. 랄리벨라는 13세기, 이곳을 에티오피아의 예루살렘으로 만들기 위해 바위 속을 파내서 11개의 교회를 만든 왕의 이름이다. 흰색 면으로 된 ‘셰마 Chemma’로 몸을 감싼 순례자들이 그리스 십자가 모양의 교회, 비에타 기요르기스 Bieta Giyorgis 위에 무리 지어 서 있다. 30m 깊이에 자리한 이 교회는 바위를 깎아 하나의 블록으로 지어졌다.
거대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열리는 악숨의 토요 장터. 화려한 컬러의 바구니 ‘하베샤 Habesha’에는 염색한 양털과 독보리 섬유로 만든 생활용품과 먹거리가 놓여 있다. 채소와 파파야, 바르바리아 무화과 좌판이 서로 이웃한다.
오른쪽 페이지 수를 놓은 ‘셰마’로 몸을 두른 시장의 우아한 여성들이 은 장신구로 꾸민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이 머리 장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흰색천을 주름지게 두른 사람들이 에티오피아 티그레 주의 푸른 계곡을 통과한다. 긴 행렬을 이루며 언덕을 기어오른 그들은 악숨 Aksoum을 향해 나아간다. 신성한 도시, 악숨은 사하라 이남에 있는 전설적인 왕국의 옛 수도다. 에티오피아 북쪽 고원의 기슭을 갈지자로 걸으면 2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 성서의 땅을 여행하는 순례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 순례자들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역법에 따라 거행되는 10여 개의 기독교 행사 중 하나를 참관하기 위해 가는 중이다. 여기에서는 크리스마스를 1월 7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주현절인 ‘팀카트 Timkat’를 1월 19일부터 3일간 축하한다. 금과 실크로 요란하게 장식한 신자들이 모두 이 의식에 참여한다. 모든 것이 4세기, 악숨 제국의 첫 번째 황제 에자나 Ezana의 시대처럼 흐른다. 황제는 시리아 전도자와 노예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했고, 그 이후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에 자리한 이 땅은 하나의 굳건한 나라가 되었다. 이 나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무슬림 정복자와 포르투갈 예수회 등 온갖 침략자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지만 그 어떤 침략자도 이 땅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것이다. 민주적으로 온건한 체제를 갖춘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연합 본부가 자리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 Addis Ababa에서는 가능성과 희망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나라 북쪽에 살고 있는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지닌 절대적인 믿음은 사계절 내내 다른 리듬을 부여한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악숨의 행렬, 그중에서도 특히 성지주일의 호산나 행렬은 역설적이게도 묵상하는 사람들과 피정 중인 카르멜회 수녀들 앞에서 펼쳐진다. 이 땅의 신앙심은 순수하고 뿌리 깊다. 농경 민족인 암하라족 Amharas은 물질적으로 빈약하지만 자신들이 숭배하는 물건과는 관능적이고 거의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다. 독실한 신자들은 여러 곳의 예배 장소에서 거행되는 강렬한 의식에 빠져든다.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장소는 사제들이 그린 벽화로 끊임없이 뒤덮인다. 그들은 순진한 만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도취된 눈빛으로 수없이 많은 성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랄타 Gheralta 산괴의 황토 절벽을 파서 만든 동굴 교회들은 위태로운 길 위에 자리한다. 아부나 예마타 Abuna Yemata 같은 동굴 교회는 등산가들에게 황홀한 성배와 같다. 교회에서 홀로 지내는 부사제들은 교회의 굴곡을 어루만지고 벽화에 입 맞추며 희미한 빛 속에서 피어나는 향의 냄새를 맡는다. 관대한 그들은 때때로 믿음직한 팔로 기진맥진할 만큼 지쳤지만 놀라움으로 가득한 여행객들을 감싸준다.
랄리벨라 Lalibela에서는 기도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화산 폭발로 생성된 응회암 속에 만들어진 11개의 교회는 모두 긴 구덩이와 터널로 연결돼 있는데, 성 금요일 기도문이 낭독되면 신들린 신자들로 가득 찬다. 13세기에 한 왕이 건설한 이 ‘블랙 예루살렘’은 또 하나의 성지로서 해마다 5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시끄러운 북소리와 시스트럼(고대 이집트의 타악기) 소리의 대소동 속에서 그들은 몸을 떤다. 더 아래쪽에 자리한 타나 Tana 호숫가와 섬에는 둥근 교회 수도원들이 떠 있다. 이 섬은 중세 시대부터 파피루스로 만든 배를 타고 갈 수 있었다. 호수는 블루 나일 Blue Nile 강으로 흐르는데 우기에는 ‘신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멋진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곤다르 Gondar에는 17세기 초, 독실한 정교회 신자인 파실리데스 왕에게 쫓겨난 예수회 선교사들이 버리고 간 중세 교회가 남아 있다. 이 교회는 포르투갈 수도원 형태로 지어져 기묘하다.
오늘날 신앙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어디에나 퍼져 있는 티그레에는 평화의 분위기가 감돈다. 혼란스러운 이웃 나라 에리트레아 Eritrea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 독실한 땅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매혹적인 나라로 남길 기원할 따름이다.
타나 호숫가에 있는 둥근 교회 아스와 마리암 Aswa Maryam. 환기가 잘되는 울타리 ‘케네 마흘렛 Kenne Mahlet’으로 둘러싸여 있다. 진흙과 대나무를 엮어 만든 이 울타리는 신자들의 열기를 식혀준다.
형제인 아브레하 Abreha 왕과 아츠베하 Atsbeha 왕의 교회에서 수녀들이 올리는 성상 경배는 신앙심을 표현하는 강렬한 의식이다. 거친 돌을 깎아 만든 아치 천장이 있는 이 교회는 동굴 건축의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