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한 켠에는 봄에 심은 고추와 고수가 자라 꽃을 피우고, 주변으로 듬성듬성 심은 나무가 가지를 내며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신용일 셰프의 집은 푸르른 자연이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여름 집이다.
1 거실 통창을 통해 마당의 사시사철을 감상할 수 있다.
겨우내 헐벗었던 나무가 어느덧 푸른 잎을 내며 울창하게 숲을 이루었다. 겨울에서 봄, 봄에서 여름으로 시간은 흐르고 여름을 맞이한 자연은 어느 때보다 청명한 푸른빛을 발하며 사방을 싱그럽게 물들이고 있다. 한식 디저트 카페 ‘합’의 신용일 셰프는 결혼 이후 처음으로 주택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작년 말부터 조금씩 준비해 올해 2월 이곳으로 이사했고, 지어진 지 40년가량 된 이 집은 안팎으로 손볼 곳이 많았지만 처음부터 욕심부리지는 않았다. 가능한 한 이곳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고, 집 내부 또한 현대식으로 반들반들하게 고치기보다 조금은 불편해도 옛날 집 특유의 구조와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주택에서 사는 걸 오랫동안 꿈꿔왔어요. 그렇다고 꿈속의 집이 완벽한 조경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지닌 곳은 아니었죠. 마당 곳곳에 이름 모를 잡초가 가득해도 자연스럽고 예쁘지만 수수한 집, 이곳에서 해 질 녘이 되면 부인과 함께 노을을 감상하며 두런두런 애기를 나누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곤 했어요.”
2 참새와 비둘기가 종종 찾아들기 때문에 마당에 놓은 확에 물을 담아둔다. 확은 적은 양의 곡식 등을 빻는 옹기다. 3 때때로 마당에서 휴식의 시간을 갖는 신용일 셰프. 4 작은 살구나무가 심어져 있어 정겨운 입구.
아담한 마당과 그 너머로 오래된 듯 정겨운 모습을 한 2층집이 등장한다.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양 옆으로 주방과 거실로 향하는 문이 있는 게 요즘은 도통 만날 수 없는 옛날식 구조다. 그동안 모아온 고가구와 도자 소품 등으로 장식한 것이 전부인 그의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단연 거실이다. 마당을 향해 커다란 통창이 있는 이곳은 별다른 장식이 필요하지 않다.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이 장식이고 감상거리다. 그래서 신용일 셰프는 통창 바로 앞에 커다란 나무 테이블과 의자 하나를 놓아 꾸미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주방은 워낙 낡았던 터라 이사를 하기 전에 가장 많이 고쳐야 했다. 바닥을 다시 깔았고 벽면과 낡은 붙박이장을 흰색으로 깔끔하게 페인트칠했다.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면 셰프 부부의 침실과 옷 방이 나온다. 침실에는 부부 침대와 고가구 장을 놓아 단출하게 꾸몄지만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그림자를 비추며 곳곳에 무늬를 입힌다.
5 부부 침실과 옷 방으로 이루어진 2층. 6 도자 식기와 빈티지 식기 등 그동안 모아온 소품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했다. 7 최근에 햇차를 선물 받았다. 집에서 종종 지인들과 차 모임을 갖곤 한다.
신용일 셰프가 주택 생활을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마당이다. 그는 봄이 찾아오자마자 마당 한 켠의 땅부터 일궈 작은 텃밭을 조성했다. 텃밭에 고추와 상추, 고수, 바질 등을 심어 정성껏 키우고 있다. 마당은 가급적 가꾸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모토다. 잡초도 풀이고 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경을 가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두었다. 그랬더니 여름을 맞이한 지금은 각종 꽃 잔치를 펼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보라색 붓꽃이 꽃봉오리를 맺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달래꽃이 피어났다. “이곳에 살면서 처음 만나게 된 꽃들이 많아요. 또 새들이 자주 찾아들기 때문에 돌이나 바닥의 움푹 파인 홈에 일부러 물을 채워두기도 하죠. 저는 이곳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삶의 즐거움에 새롭게 눈뜨고 있어요.” 도시에서 자연을 등지고 살다가 자연을 곁에 두니 일상이 눈에 띄게 건강해졌다. 자연에 순응하는 이곳에서의 삶에 감사해한다. 여름이 되니 나무가 만들어주는 커다란 그늘이, 종종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마음마저 넉넉하게 만든다.
8 주방으로 향하는 작은 문이 난 구조가 독특하다. 9 주방은 화이트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바닥을 다시 깔았다. 주방 벽에 합에서 사용하던 나무 선반을 달았더니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