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된 빌라를 새 단장한 네 가족의 집

20년된 빌라를 새 단장한 네 가족의 집

20년된 빌라를 새 단장한 네 가족의 집

갤러리처럼 벽에 많은 작품이 걸려 있는 이 집은 아직 집 안을 콩콩거리며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네 가족의 보금자리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모두를 배려한 집은 엄마의 현명한 선택으로 완성됐다.

1 줄리언 오피의 작품이 걸려 있는 다이닝 공간과 침실 사이. 날개처럼 양쪽으로 유리 파티션을 설치해 공간을 자연스럽게 구분했다. 다이닝 공간에 건 작품은 박서보 작가의 작품.

 

감각적인 집에는 공통점이 있다. 방금 전 대청소라도 한 듯 말끔하고 완벽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대부분의 집은 촬영 전 정리를 하기 마련이지만 디자인투톤 design2tone의 소개로 만난 이 집은 달랐다. 정갈한 안주인의 성향을 반영하듯 집도 차분하고 단정했다. 하얗게 칠한 벽에는 크고 작은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때문에 흰 벽이 주는 차가움과 긴장감을 덜 수 있었다. 미대 출신의 안주인은 그림을 좋아하는 아버지로부터 유명 작가들의 그림을 물려받거나 직접 구입해왔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 가장 소중하게 옮긴 아이템 또한 그림이었다. 디자인투톤의 최현경 실장을 만나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도 그림을 위한 벽을 가장 고민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림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벽은 갤러리 같은 흰색 벽이겠죠. 그렇다고 집 전체를 흰색으로 칠하기엔 아이들도 있어서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거실과 다이닝 공간은 흰색으로 도장했고 아이들 방과 침실은 벽지를 발랐죠.” 이우환 작가의 큰 작품을 걸기 위해 거실 한쪽 벽을 비웠기에 TV도 안방에 둘 수밖에 없었다. 안주인은 “모던한 타일을 바닥재로 깔고 싶었어요. 흰 벽과 잘 어울리게요. 그런데 아이들이 뛰어다니기에도 그렇고 보행감도 타일보다는 나무가 부드럽고 발에도 무리가 없겠다 싶더군요. 모던한 느낌은 줄었지만 대신 나무 바닥재 덕분에 따뜻한 분위기가 나요.”라며 나무 바닥재를 시공하게 된 사연을 전했다.

 

 


2 컬러가 아름다운 최욱경 작가의 작품을 건 거실. 3 현관에서 다이닝 공간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위치한 게스트 화장실. 문을 닫아두면 벽처럼 보이는 구조다.

 

 


4 거실 벽에 걸린 이우환 작가의 그림. TV를 두지 않고 대신 작품에 벽을 할애했다. 5 다이닝 공간과 맞닿아 있는 아들의 방. 6 스트링 시스템을 벽 전체에 시공해 장난감과 책을 수납하기에 편리한 딸아이의 방.

 

다이닝 공간은 양쪽에 날개처럼 약간의 파티션 같은 유리 벽을 세웠다. 따로 문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거실과 어느 정도 분리될 수 있게 한 요소다. 자세히 보면 원래 베란다였던 거실 앞쪽도 그렇고 딸아이의 방도 벽의 일부에 유리를 끼워 파티션처럼 활용했다. 최현경 실장은 “확장한 공간의 경계선 부분들이에요. 벽을 다 부술 수 없었던 이유도 있고, 그렇다고 중문을 달기에는 답답해 보였죠. 대신 벽의 일부분을 살려 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하고 개방감도 줄 수 있었어요”라며 소소한 요소가 주는 자연스러운 힘에 대해 설명했다. 다이닝 공간 안쪽은 진한 그레이 컬러를 사용해 다른 공간에 비해 어둡다. “집안이 대체로 밝고 환한 분위기라 주방은 어두운 색 타일로 시공했어요. 그레이 컬러는 오래 봐도 질리지 않거든요. 주방 가구는 맞춤으로 제작했는데 상판 두께가 얇으면서도 내구성이 강해 둔탁해 보이지 않아요.” 주방 안쪽에는 원래 방이 하나 더 있었지만 주방과 이어지게 터서 냉장고와 가전을 넣었다. 덕분에 넓어진 주방 공간을 어두운 그레이 컬러로 시공해 다른 공간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그레이 컬러는 부부 침실에도 적용했는데, 도장을 한 것 같은 질감의 회색 벽지를 발랐다. 거실에 TV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정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TV를 올려둘 수 있는 AV장 겸 수납장을 짜서 넣었고 시리즈 세븐 체어를 둔 간이 책상도 만들었다. 넉넉한 서랍 덕분에 대부분의 물건을 수납해 침실 또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갖고 있기보다는 필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편이에요. 그래서 집이 깔끔해 보이는 것 같아요. 곳곳에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서 쉽게 정리할 수 있고요. 아직 어린 아이들 방은 예외지만요.” 깔끔한 성격의 안주인이지만 아들과 딸 아이의 방은 마음껏 놀 수 있도록 꾸몄다.입구에는 특히 핑크를 좋아하는 딸아이의 방 한쪽 벽에는 스트링 시스템을 설치했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과 장난감을 올려두기만 해도 아기자기하게 귀여운 아이 방을 연출할 수 있다. 

 

 


7 침실에는 수납장을 짜서 TV를 올려두는 AV장과 간이 책상 용도로 활용했다. 8 주방 안쪽의 방 하나를 터서 부엌 가전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9 대리석 테이블과 시리즈 세븐 체어로 꾸민 다이닝 공간. 10 거실에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타일 대신 나무 바닥재를 시공했다. 

 

네 가족이 사는 70평대의 집은 지은 지 20년이 넘은 오래된 빌라다. 기본 설비도 낡아서 바닥의 난방 배관도 다시 설치하는 등 큰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간의 고생과 고민이 헛되지 않은 듯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딸아이와 초등학생인 아들을 둔 엄마는 자신의 취향과 아이들을 위한 편안한 인테리어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았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작품이 벽마다 걸려있지만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라는 점도 신선했다.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것은 단순히 작가의 작품만은 아닐 것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집 안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예술적인 감성을 키우며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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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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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

칠레의 파타고니아에 도착했다면 더 이상 갈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다음은 세상의 끝이다. 숲이 아름다운 칠로에 군도의 섬들을 여행하며 자연 속에 숨은 놀라운 호텔에서 잠들 수 있는 곳, 안데스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마젤란 해협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 파타고니아다.


태평양 바람이 불어오는 푼타 피루린 Punta Pirulin, ‘무엘레 데 라스 알마스 Muelle de las Almas’라 불리는 이 부두는 영혼이 머무는 곳이다. 이 지역 에코 아티스트 추모노 Chumono는 마푸체 Mapuche 인디언들의 전설에 헌정하는 작품을 이곳에 설치했다. 마푸체 인디언들이 저승을 향한 승선장을 만들어놓았다는 곳이다. 너무 가난한 사람들은 아래쪽 바위를 떠나지 못했고 그들의 울음소리가 바다사자의 울음소리와 뒤섞였다고 전해진다. 

 

 


릴란 Lilan 반도의 초원과 만 위에 고독한 모습으로 떠 있는 호텔 티에라 칠로에 Tierra Chiloe. 칠레 건축가 파트리치오 브로우네 살라스 Patricio Browne Salas의 작품으로 시멘트 말뚝 위에 세워졌다. 외관은 세쿼이어 나무와 친척 뻘인 칠레 삼나무 패널로 덮여 있다. 

 

 


호텔 티에라 칠로에의 배 조종실 같은 거실. 온통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거실은 사이프러스 패널로 마감한 천장 아래 온갖 종류의 나무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주변 작은 섬들의 골짜기와 파도를 볼 수 있다.

 

 


멋진 장관을 이루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산봉우리들(종종 안개 속에 파묻히는) 아래. 고독한 목장이 리오 파이네 Rio Paine 강과 아마르가 Amarga 호수 사이에 자리한다.

 

남위 42도 선과 파도가 높이 치는 혼 곶 Cape Horn 사이에 자리한 칠레 파타고니아에서는 끝도 경계선도 희미하다. 놀라운 풍경 속에서 최남단 땅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떠나는 모험의 마지막 출발지인 이 땅은 칠로에 Chiloe 군도의 수많은 섬과 떨어진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푸른 대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초원을 관통하는 도로가 산과 빙하들 사이로 사라진다. 섬에 드문드문 자리한 농장 주변에는 칠레의 카우보이인 후아소 Huaso들이 폼폰이 달린 일종의 베레모 ‘보이나 Boina’를 쓰고 말을 탄다. 베레모에 달린 폼폰은 후아소의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아내는 데 사용된다. 마을의 집들은 널빤지로 덮여 있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지역의 독특한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목공에 정통한 인디언들이 못 하나 없이 지은 이곳 교회들은 16세기에 이 지역을 침략한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지금의 교회로 바뀌었다. 소와 양, 말들이 푸크시아가 핀 목초지를 사이 좋게 나눠 쓰고, 만에는 홍합, 굴, 연어를 키우는 양식장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외진 항구에 닿기 위해서는 페리에서 페리로 갈아 타야 한다. 항구에서는 어부들이 ‘쿠란토 Curanto’를 요리한다. 해산물과 생선으로 만드는 이 라구(스튜의 일종)는 땅속에 구멍을 파서 넣고 대황의 일종인 날카 Nalca 잎으로 덮은 다음 약한 불을 피워 익힌다. 어디서든지 무지개 사이에서 떨리는 생기 넘치는 공기를 맡을 수 있다. 더 아래 남쪽으로 내려가면 푼타 아레나스 Punta Arenas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 Puerto Natales까지 이어지는 ‘알 핀 델 문도 Al Fin del Mundo’ 도로와 만난다. 웅웅거리는 트럭과 외딴 목장들을 오가는 말 탄 사람들과 사륜구동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탐험가들이 마주하는 것도 이 도로다. 저 멀리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 공원의 산봉우리들이 뾰족이 솟아 있고 돌과 얼음이 만들어내는 이 웅장한 오페라는 아우성치는 바람 소리로 가득하다. 여기에서 들쭉날쭉 솟은 산들과 푸르스름한 라군이 만들어내는 파타고니아의 ‘지질학적인 환영’이 완성된다. 라군 주변에서는 거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라마, 구아나코와 만화 속 동물처럼 생긴 아메리카 타조 등의 동물 무리와 함께 행군을 할 수 있다. 눈앞에 마젤란 협곡의 호수가 보인다. 그리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배들이 남극의 거대한 얼음 조각들 사이에 갇혀 꼼짝 못하는 광경과 마주하게 된다. 이 진정한 세상 끝에서는 사람 대신 펭귄의 실루엣이 보인다.

 

 


라마의 형제인 구아나코가 파타고니아 남쪽에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의 덤불을 평온하게 산책하고 있다. 아래 반투명한 호수 라고 펠로에 Lago Pelhoe 위로 인상적인 지질층, 쿠에르노스 Cuernos가 솟아 있다. 마그마로 인해 화강암이 거대한 조각품으로 변했다.

 

 


몇몇 기계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기계실 안에 만든 호텔 신굴라르 파타고니아의 웅장한 바. 칠레 데커레이터 엔리케 콘차는 이 바를 영국 빅토리안 스타일의 클럽처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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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갈랑 Jerome Gal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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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포러리 아트 디자인 뮤지엄 ‘구 하우스’

컨템포러리 아트 디자인 뮤지엄 ‘구 하우스’

컨템포러리 아트 디자인 뮤지엄 ‘구 하우스’

화이트 큐브의 틀에서 벗어나 ‘집’ 형태를 갖춘 컨템포러리 아트 디자인 뮤지엄 ‘구 하우스’가 양평 문호리에 오픈했다. 디자인 포커스 구정순 대표가 만든 커다란 집, 그곳에서 받은 감동은 거대했다.


1 집을 컨셉트로 한 뮤지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리빙룸. 르 코르뷔지에를 오마주한 자비에 베이앙의 설치 작품 ‘Mobile’ 아래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빈티지 가구로 공간을 꾸몄다. 2 제프 쿤스의 작품 아래 구정순 대표의 반려견 ‘융’이 작품을 감상하듯 귀여운 모습으로 앉아 있다. 3,4 조민석이 건축한 ‘구 하우스’의 외관. 회색 벽돌로 마감한 외관은 빛과 각도에 따라 무수한 픽실레이션을 선보이는 커다란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갤러리스트이자 가구 수집가인 니나 야사르 Nina Yasaher는 수년에 걸쳐 전 세계를 다니며 발견한 제품과 미술 작품 그리고 가구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닐루파 데포를 오픈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디자인 포커스 구정순 대표는 아티스트적인 오라와 끊임없는 도전정신, 아름다움을 보는 남다른 혜안을 가진 인물로 한국의 여성 디자인 파워를 가졌다는 점에서 그녀와 닮았다. 1983년 설립된 디자인 포커스는 CI 전문 회사로 국내에서는 그 개념조차도 모호하던 시절 이 시장을 개척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KB국민은행, KBS, 한국일보, SK 브로드밴드 옥수수 등 국내 굴지의 기업 CI는 모두 그녀의 손길을 거쳐 탄생됐다. 인생의 절반을 그래픽디자이너로 살아왔던 그녀가 뮤지엄을 오픈한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이 뮤지엄은 지난 3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인생 2막을 위해 준비해온 결과물이다. “오래전부터 나이가 들면 미술관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컬렉션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청소년을 위한 미술관도 생각했어요. 그러다 창의성이 돋보이는 아이디어가 있는 뮤지엄이 좋겠다 싶어 방향키를 돌렸죠.”

 

 

 


5 설치 미술가 최정화의 ‘The present of century’ 시리즈 작품 뒤로 세로로 길게 뻗어 있는 구 하우스의 구조가 보인다.  

 

구 하우스는 예술과 디자인이 주는 즐거움을 일상에서 느낄 수 있도록 ‘집’을 컨셉트로 디자인한 뮤지엄이다. 집을 닮은 구 하우스는 문을 여는 순간부터 남다른 의도가 포착된다. 화이트 큐브 대신 낯익은 누군가의 집에 들러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감상하듯 편하게 각각의 룸을 오가다 보면 나의 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이는 기획 단계부터 소장품 각각의 배치를 염두에 두어 모든 전시실에 효율적인 동선을 부여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끌어들인 결과인 셈이다. 전시실의 이름도 리빙룸, 라이브러리, 다이닝룸, 패밀리룸 등으로 집과 같다. 총 10개의 전시실에는 구정순 대표의 개인 컬렉션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는데 장 프루베, 피에르 폴랑, 샬롯 페리앙, 에토레 소트사스, 조지 나카시마 등의 가구부터 조한나 바스콘셀로스, 자비에 베이앙의 설치 작품, 로버트 인디애나, 제프 쿤스, 스타스키 브리네스의 페인팅, 데미안 허스트, 토비아스 레베르거, 프란츠 웨스트의 조각 작품, 국내 작가 서도호, 최정화, 김인배의 작품 등 회화에서부터 설치 미술, 조각, 영상과 사진, 빈티지 가구까지 20세기 현대미술 작품 4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를 오마주한 자비에 베이앙의 모빌 작품이 있는 리빙룸은 현실에서의 객관적 태도를 잠시 내려두고 환상의 세계로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하고, 2층 전시실에 있는 필리핀 작가 레슬리 드 차베스의 작품을 베르나르 브네의 의자에 앉아서 감상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만든다.

 

 


6 1층 윌리엄 켄트리지의 ‘Anti-Mercator’ 영상 작품과 작가 서도호의 ‘Gate-Small’ 설치 작품을 일본 건축가 사나의 ‘Flower’ 의자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다. 7,8 톤 체어, 플렉스 체어, 비너스 체어, 네트 체어 등 검은색 의자들만 모아 복도에 길게 줄지어 전시했다. 공중에 떠 있는 설치 작품은 다카시 쿠리바야시의 ‘펭귄’이다. 9 필리핀의 역사적 상황을 현대미술로 풀어내는 작가 레슬리 드 차베스의 페인팅 작품 앞에 놓인 베르나르 브네의 의자가 마치 심판의 의자처럼 놓여 있다. 

 

구정순 대표는 “미술은 의식주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은 관람객이기보다는 손님이죠. 제가 만든 커다란 집에서 다양한 창조적인 영감을 얻기를 소망합니다”라고 전했다. 문턱이 높은 어려운 갤러리가 아니라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자 한 의도는 건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건축가로는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석이 건축한 구 하우스는 흔히 볼 수 있는 재료인 벽돌로 마감했지만 보는 각도와 빛에 따라 무수한 픽실레이션이 보이는 변화하는 조형물로 완성됐다. 뮤지엄은 3205㎡의 큼직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만큼 이 뮤지엄은 본래 자리에 있었던 듯 자연스럽고 튀지 않는다. 주변으로는 초록 잎들이 울창해 인공적으로는 만들 수 없는 멋진 배경을 미술관 안팎에서 감상할 수 있다. “디자인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에요. 구 하우스는 제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 보다 친근한 공간에서 디자인을 이해하고 자신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지요. 삶의 예술, 그것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예술과 생활의 경계에서 새로운 해답을 ‘집’에서 찾은 구정순 대표는 자신의 추억과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해 우리에게 새로운 감상의 기회를 열어줬다. 예술과 삶의 접점은 생각만큼 멀지 않다는 것. 그 친절한 대답을 ‘구 하우스’에서 만난 것 같다. 

add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tel 031-774-7460  web www.koohouse.org

 

 


10 다락방 컨셉트인 애틱에서는 레슬리 드 차베스의 그로테스크한 설치 작품 ‘The Specter’을, 포트레이트룸에서는 네덜란드 사진작가 에르빈 울라프의 사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11 마르크 베르티에의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는 패밀리룸. 12 외부로 빛이 들어와 실내를 아늑하게 만드는 커다란 프론트룸에는 조지 나카시마의 소파를 비롯해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의 설치 작품, 톰 딕슨의 파이론 체어, 프랭크 게리의 레드 비버 체어,토마스 헤더윅 디자인의 스펀 체어 프로토타입 등이 어우러져 있다.

 

 


13,14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작품처럼 보이는 공간. 장 프루베의 가구 컬렉션으로만 배치해 ‘장 프루베룸’이라 이름 지었다. 15 흔히 볼 수 없는 진귀한 거울 작품 20여 점과 다채로운 장식 소품을 전시해놓은 공간에서는 구정순 대표의 소소한 취향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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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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