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을 고치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레노베이션한 신혼집을 만났다. 손님으로 머물고 싶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집이다.
1 주문 제작을 한 식탁과 빈티지 의자를 둔 다이닝 공간. 빛이 잘 드는 집이라 더욱 화사해 보인다. 2 현관에서 바라온 모습. 거실을 다이닝 공간으로 꾸몄다. 3 거실처럼 꾸민 큰 방. 소파 뒤로 수납장을 둬 책과 소품을 수납했다.
1침대와 화장대 겸 책장이 꽉 차게 들어가는 침실. 2 침실로 들어가는 입구. 이 아늑한 공간이 마음에 들어서 작은 방을 침실로 사용하게 됐다. 3 좁은 현관에서 발견한 디테일. 우산을 걸어두기에도 편리하다. 4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 안주인의 취미 도구들.
외국의 에어비앤비에서 영감을 받아 꾸민 고예림 씨의 신혼집은 시작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재건축에 들어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30년 된 빌라였고 양가 부모님은 굳이 그런 낡은 빌라를 고쳐서 살아야 하냐며 걱정을 하셨다. 심지어 부동산에서 신혼부부에게 이 빌라를 보여주면 도망간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을 대야 하는 집이었다. 하지만 고예림 씨와 남편에겐 이 집이 다르게 보였다. 친한 친구이자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인 이민우 실장에게 결혼하면 집을 맡기기로 예정돼 있었고 18평의 공간이 좁긴 했지만 알차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축 빌라도 가봤는데 뭐 하나 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어요. 가구가 꼭 놓여야 할 자리가 대부분 정해져 있더군요. 마음에 들지 않는 집에서 살 바에야 오래됐지만 제 마음에 들게 고칠 수 있는 집이 더 낫겠다 싶었죠.”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거실로 사용하는 공간을 과감하게 다이닝 공간으로 꾸몄고 대신 넓은 방 하나를 거실처럼 연출했다는 것. 현관에 들어서면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고친 부엌과 그 너머로 다이닝 공간이 보인다. “지금은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데 요리를 워낙 좋아해서 조만간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에 전념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그래서 주방에 유난히 신경을 많이 썼죠. 수납공간이 필요해 서랍이 정말 많은 주방 시스템을 제작했어요. 애주가인 남편은 집에 술을 마실 수 있는 바를 원했는데, 공간이 협소해서 대신 술을 모아두는 작은 트롤리만 두었죠.”(웃음) 가장 애정을 쏟아부은 부엌은 다른 공간과 구분되는 느낌을 주기 위해 바닥에 타일을 깔았고 다이닝 공간까지 이어지는 상부장과 선반을 제작해 그릇 등을 수납하고 소품을 연출할 수 있다. 냉장고는 부엌 옆에 달린 작은 창고 방에 넣었다. 부족한 옷 수납을 해결하기 위해 냉장고 옆에 옷장을 설치해 수납을 해결했는데 옷장과 냉장고가 같이 있다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옷장을 설치할 마땅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창고 방을 두 가지 용도로 활용한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5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고예림 씨. 6 냉장고를 넣은 창고 방에 옷장을 두어서 부족한 수납을 해결했다. 7 침실 다락을 터서 천고를 높이고 수납공간을 마련한 화장실.
거실처럼 사용하는 방은 꽤 넓어서 소파와 그 뒤에 책장 그리고 창가 쪽에 수납장을 짜 넣고도 넉넉한 공간이다. 게임을 즐기는 남편이 애용하는 공간으로 거실의 미관을 해치는 요소로 꼽히는 벽걸이 TV를 방에 설치했다. 큰 방을 거실처럼 사용하다 보니 작은 방은 침대와 작은 책장 겸 화장대를 두면 꽉 차는 침실이 됐다. “침실이 너무 넓지 않았으면 했어요. 잠만 자면 되는 공간이어서 침대와 화장대 정도만 두면 불편한 점이 전혀 없더라고요. 대신 오래된 빌라여서 벽 위쪽에 미닫이 달린 다락이 있었는데 화장실의 천고를 높이느라 다락은 사용하지 않도록 막아버렸어요.” 다락을 터서 맞닿아 있는 화장실의 천장을 높였고 화장실에도 간이 벽을 세워 필요한 생활용품을 수납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정해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여기에 집주인이 모아온 소품과 이야기가 담긴 오브제가 어우러져 마치 여행을 하다 잠시 머무는 집 같은 착각이 든다.
1 가장 많이 신경 쓴 부엌. 수납을 해결하기 위해 서랍이 많은 주방 가구를 제작했다. 주방 가구 크기에 꼭 맞는 가스오븐 레인지는 이태원에서 구입한 것. 2 벽에 올록볼록한 입체적인 타일을 붙여 재미를 더했다.
언젠가 이 집을 에어비앤비로 활용해보고 싶다는 부부의 바람처럼 이곳에 머물며 식탁에 둘러앉아 안주인이 내주는 아침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경험일 것 같다. 좁은 집이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집. 좁아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매력적인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