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클래식한 감성의 집을 만났다.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 아이템은 없었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편안했다.
SNS의 대중화로 직접 가보지 않아도 많은 이들의 집을 쉽게 볼 수 있는 요즘, 정혜림 씨의 집은 사진 몇 장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아이템이 많아 서는 아니었다. 고요하고 클래식한 분위기가 시선을 끌었다. 분당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평범한 30평대 아파트로 부부와 딸이 살기에 적당한 크기다. “뭐든 쉽게 버리고 새로 사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래서 소파를 비롯한 가구도 오랫동안 사용했던 것들이고 TV도 바꿀 때가 됐을 정도로 낡았어요. 하지만 사는 데 별 지장이 없고 오래 사용하기 때문에 구입할 때 더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정혜림 씨의 집에는 베르사유 궁전을 떠올리게 하는 과한 장식의 클래식 가구가 아닌 디테일이 클래식한 가구가 많은데 신혼 때부터 사용해온 가구도 있다. 클래식 가구 일색이면 집 안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지고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지만 집주인은 이를 중화시킬 수 있는 소품과 컬러를 더했다.
아이 방에는 북유럽 스트링 가구를 책상 겸 선반으로 사용하면서 클래식한 수납장과 침대 그리고 카르텔의 투명한 의자인 루이 고스트를 두어 단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거실 TV장 역시 클래식한 디자인이지만 소파를 비롯한 의자는 모던한 디자인으로 선택했다. “아파트는 TV와 소파를 두는 곳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요. 거실이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응접실 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원했어요. 소파를 베란다 방향으로 두고 의자들을 반대편에 두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분위기가 되더군요. 그 덕분에 생긴 벽에 크기가 큰 작품도 걸 수 있었고요.” 거실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드는 데 한몫한 커다란 전신 거울에도 비밀이 숨어 있다. 뒤쪽의 스탠딩 에어컨을 가리는 용도인 것. 아주 예전에 구입한 에어컨이라 당시 유행하던 짙은 자주색 제품인데 집 안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 그 앞에 전신 거울을 세웠다. 다행히 에어컨 바람이 양 옆에서 나오는 제품이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집 안 전체를 온통 클래식한 스타일로 도배한 것은 아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현대적인 조각품들이 의외의 장소에서 포인트 역할을 하고 가족 모두가 사용하는 서재는 피아노와 큰 책상으로 꽉 찼지만 투명하고 무채색인 의자를 두어 시각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반면에 서재와 마주 보고 있는 다이닝 공간은 집 안에서 가장 클래식한 분위기다. 집주인의 클래식한 감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공간으로 의자와 조명, 식탁이 마치 세트로 구입한 것처럼 잘 어울린다. 봄 분위기를 내기 위해 구입한 설유화를 화관처럼 조명에 둘둘 감아 연출해 로맨틱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정혜림 씨의 집은 둘러 볼수록 집에 사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집 안을 매만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느 집이나 감추고 싶은 흠이나 아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오히려 그 부분을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관의 중문이나 수건을 걸어두는 훅, 거실의 커튼 등 작은 부분에서도 일관된 취향을 엿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엇 하나 튀는 것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집주인의 내공이 느껴진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 같은 집을 위해 눈에 익은 디자이너의 제품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집은 유명한 제품 하나 없이도 집이 아름다울 수 있고, 편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