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 신경옥의 스타일을 규정할 단어는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찬찬히 빚어낸 오직 신경옥만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논현동 건물을 특별하게 탈바꿈시켰다 하여 잠시 다녀왔다.
“컨셉트? 그런 건 없어.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한 거야.” 우문현답이다. 평소 취재하던 버릇처럼 제목을 찾았을 뿐인데, 그녀는 과연 ‘만드는 사람’답게 답했다. 논현동 89-20번지는 1세대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인 신경옥의 세계다. 타인의 공간을 만들어주던 사람이 마음껏 자신의 스타일을 발휘하게 되면 어떤 느낌이 탄생할까. 그 결과물이 여기에 있었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바 목련과 레스토랑 솔트, 신경옥의 작업실, 영화사 전원사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은 본래 삼겹살집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그러던 것을 14년 전,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했고 작년 초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감행했다. 추운 겨울인데도 건물은 봄날처럼 눈이 부셨다. 모든 것을 지우고 싶어하는 그녀의 욕망처럼 건물 전체를 하얗게 칠했기 때문이다. 원체 하얀색을 좋아하는 신경옥은 ‘화이트 귀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원래는 목련도 하얗게 칠하고 싶었는데, 지인들이 술 파는 곳이 하얀색이면 불안하다며 말리더라고. 그런데 언젠가 꼭 새하얗게 칠하고 싶어. 꼭 그렇게 하고 싶어.” 와인과 위스키를 파는 바 목련은 건물 앞, 뒤에 심어진 목련나무에서 힌트를 얻어 지은 이름. 아이처럼 자유분방한 글씨는 그녀의 아들이 직접 쓴 것이다. 술은 그녀가 좋아하는 와인과 위스키를 파는데, 조만간 레스토랑 솔트에서 만든 안주를 추가해 메뉴를 더욱 탄탄하게 할 예정이다.
계단을 찬찬히 올라 3층에 위치한 작업실로 향했다. 건물에서 가장 궁금했던 공간이다. 그녀의 스타일이 응집돼 있는 방. 건물의 핵. 그렇게 기대감을 갖고 들어선 하얀 작업실은 역시나 하얀 물건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지중해 어딘가쯤 서 있는 듯, 청량하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시멘트 미장에 회벽칠을 한 하얀색 아일랜드와 속살이 은은하게 비치는 리넨 옷을 입은 의자, 곡식을 손질하는 전통 도구를 커튼봉 삼아 무심하게 턱 하니 걸쳐 있는 커튼까지 특유의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빈티지 유리잔을 보며 “그릇이 많아서라도 바를 했어야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하의 목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어디를 보아도 특유의 스타일이 뚝뚝 묻어났다.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신경옥은 그 한 켠에서 조용히 커피를 내렸다. 마치 그 공간의 일부처럼. 오랜 세월, 찬찬히 무르익은 스타일은 그렇게 모든 것이 하나의 가지처럼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