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라, 몬테나폴레오네, 람브라테, 토르토나 등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디자인 축제 ‘푸오리살로네’. 그곳에서 마주한 28개의 인상적인 전시와 제품을 소개한다.
미래를 위한 디자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갤러리스트 니나 야사르 Nina Yashar는 그녀의 아카이브 공간인 닐루파 데포 Nilufar Depot에서 전시 <FAR>를 선보였다. 이전에는 수집한 가구를 활용한 전시였다면 올해는 신진 작가들과 함께 우주의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듯한 공간을 연출했다.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 거대하고 투명한 볼이 넓은 닐루파 데포의 공간 곳곳에 설치됐고 현대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3D 프린팅 작품부터 이전에는 시도되지 않은 재료와 기법을 활용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1층에 전시했다. 관람객은 투명한 볼 안으로 들어가 전시장을 내려다보는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니나 야사르는 “실험적이고 자유로우며 기존의 틀을 깨는 작품들이 미래의 디자인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급진적이고 대담한 ‘젊은’ 작품을 둘러보며 미래를 논하길 바란 그녀의 전시 연출은 영민했다. 이외에도 닐루파 데포에서는 3개의 전시를 더 볼 수 있었다. 스튜디오 우르키올라 Studio Urquiola가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 <New Sculptural Presence>는 이곳에서 진행한 첫 번째 독립적인 조각 전시로 아티스트 세 명의 추상적인 조각을 소개했다. 계단을 통해 오르내릴 수 있는 각 층에서는 로카텔리 파트너스 Locatelli Partners와 오사나 비스콘티 디 모드로네 Osanna Visconti di Modrone가 가브리엘라 크레스피 Gabriela Crespi의 가구로 미학적인 공간을 보여준 <Caveau> 전시와 스칼라 극장에서 영감을 받아 닐루파에서 엄선한 현대적인 가구들로 연출한 <Boxes> 전시까지 펼쳐져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볼거리를 제시했다.
새롭게 비추는 역사
거울에 비친 세상은 실제와는 또 다른 인상을 준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인 팔라초 리타 Palazzo Litta 앞마당에 설치된 에코 파빌리온 Eco Pavillion은 정확히 그런 ‘에코’ 효과를 노린 작품이다. 4개의 출입구가 있는 5m 높이의 정사각형 큐브 위에 10m 높이의 거꾸로 된 피라미드를 얹은 건축물은 표면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덮어 팔라초 리타를 색다른 형태로 반사시켰다. 에코 파빌리온을 작업한 예술&건축 스튜디오인 페소 본 에릭사우센 Pezo Von Ellrichshausen은 “이탈리아의 역사적인 유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65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한 팔라초 리타의 25개 전시 중 단연코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WALLPAPER* HANDMADE 10th
월페이퍼 핸드메이드 전시가 10주년을 맞아 ‘사랑 Love’이라는 주제로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다. 외부 입구에는 함께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원형의 콤파소 벤치 Compaso Bench가 놓였고, 내부의 중앙에는 ‘블러싱 바 Blushing Bar’와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블러싱 바는 간단한 홈 바부터 조리대, 개수대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10개의 모듈로 구성된 원형 바로, 나뭇결을 분홍색으로 물들여 전시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한국 디자이너로는 태오양 스튜디오 Teo Yang Studio의 양태오 디자이너가 타일 브랜드 우게트 Huguet와 함께 3가지 세면대를 디자인해 한국 디자이너의 위상을 드높였다.
공간을 점령한 대리석
이탈리아 대리석 브랜드 살바토리 Salvotori는 브레라 지역에 위치한 브랜드의 아파트에서 <Hidden Rooms> 전시를 공개했다. 엘리사 오시노 Elisa Ossino의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구 그리고 존 파우슨 John Pawson, 피에로 리소니 Piero Lissoni가 디자인한 액세서리를 비롯한 2019년 신제품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낡았지만 운치 있는 아파트에 놓인 욕실과 수납 가구, 테이블 등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아파트를 둘러보는 동안 관람객들은 대리석의 무궁무진한 활용도와 다양한 무늬, 색감에 빠져들 수 있었다.
I THINK!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라 할 수 있는 마르텐 바스 Maarten Baas의 전시가 벤투라 센트랄레에서 진행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처럼 무수히 쌓인 수십 개의 TV 스크린을 마주하게 되는데, “I think!”를 외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짧게 편집된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집중해서 봐야 할 영상이나 소리는 없고, 모든 영상이 동시다발적으로 “I think!”를 외칠 뿐이다. 영국 <트윈 매거진 Twin Magazine>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은 곧 존재에 대한 주장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그런 이유로 개개인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 전시는 밀라노 벤투라 프로젝트와의 10주년 협업을 기념해 기획됐다.
우리의 연결고리
네덜란드 아티스트 부부인 키키 판 에이크 Kiki Van Eijk와 요스트 판 블레이스베이크 Joost Van Bleiswijk가 5비에에서 <Connect> 전시를 선보였다. 이들 부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과 사람, 무의식의 창의력과 신체의 표현 등 다양한 분야의 ‘연결’을 탐구해왔다. 키키 판 에이크는 인류 공존을 주제로 세라믹 LED 조명인 프리 폼 Free Form을 선보였으며, 요스트 판 블레이스베이크는 조형적인 형태의 커브드 앤 테이프트 Curved and Taped를 선보였다. 3명의 젊은 아티스트와도 협업을 진행했는데, 각각의 작품이 건축과 예술,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공유하고 연결되어 있을 때 놀라운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미
밀라노 디자인 위크 곳곳에서 한국 작가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팔라초 리타에서 진행된 <Art Mining> 전시는 동시대의 순수미술, 현대 공예, 디자인, 사진 분야에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순수와 환희, 열정의 3가지 컨셉트로 나뉘어 꾸며졌으며, 동양인 최초로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달항아리 등의 도자를 전시한 신경균 작가, 숯을 공간에 매달아 색다른 의미를 부여한 박선기 작가, 적토를 옹기 기법으로 쌓아 형태를 다진 뒤 백토 물을 부어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원로 작가 이강효 등 다채로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한국의 미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