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디자인플래닝 육연희 대표가 자신의 개인 사무실을 마련했다. 은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사무실은 그녀가 지금까지 성실하게 갈고닦아온 시간이 집약되어 있었다.
청담동 주택가에 위치한 이로디자인플래닝은 중정 구조가 돋보이는 건물의 2층과 5층을 사용하고 있다. 육연희 대표의 사무실은 5층이다. 본래 직원들과 함께 2층을 사용했지만 몇 달 전 개인 사무실을 분리했다. “아무래도 직원들은 사장이 없어야 편하잖아요(웃음). 그리고 저도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좀 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고요.”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한 켠에 조용히 숨어 있는 비키니 옷장이라던가 침대로 쓰기에도 넉넉한 소파, 화장실의 샤워 시설 등 사무실 곳곳에서 워커홀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맥락만 보면 무척 삭막한 공간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솔직히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취향 좋은 사람의 서재처럼 보였다. 사무실과 매터리얼룸, 테라스로 나누어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은은함이 있었다. 일단, 하얀색의 말끔한 벽에 걸린 남춘모 작가의 드로잉 작품을 마주하고, 직접 제작했다는 티크 원목 테이블과 USM 책꽂이가 단정히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싱그러운 비파나무와 커다란 화기를 놓아 공간에 엣지를 더했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이 없었는데, 그 자연스러움을 위해 그간 그녀가 노력해온 시간이 보이는 듯 보였다.
육연희 대표를 부를 때 사람들은 으레 공간 디자이너라는 말을 떠올린다. 작은 소품 제작부터 인테리어까지 공간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공간 디자이너로서 초석을 다진 것은 코디네이터 일을 통해서다. 어릴 적 인테리어 잡지를 보며 공간 스타일링에 대한 꿈을 키웠던 그녀는 우연히 남도음식문화축제에 푸드 스타일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행사 전체의 코디네이션을 맡았던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문인화 선생을 뵙게 되었다. “선생님이 뭐하던 사람이냐고, 한번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정말 기뻤죠.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일이었거든요. 매일 새벽 3~4시까지 야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훌륭한 선생님과 사수 밑에서 열심히 배웠거든요.” 공간 코디네이터로 일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는 아이처럼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문인화 리빙 디자인에서 공간 코디네이터로 수년간 근무한 뒤, 인테리어 관련 학위를 따고자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남들은 한창 일할 시기에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보석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이에드 IED와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인테리어와 비즈니스 디자인을 전공하고 트리엔날레와 카르텔 뮤지엄에서 인턴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라꼴렉뜨의 전신인 제인 인터내셔널에서 일했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독립해 이로디자인플래닝을 설립했다. 그렇게 숨가쁘게 공간이라는 꿈을 좇아 시간을 내달렸다.
“생각해보니 한국에 돌아와서 한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네요. 은근히 쑥스러움도 많고 낯을 가리는 편이라 적극적으로 영업을 해본적은 없지만, 주위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죠.” 그간 네이버 춘천연수원, 라이엇게임즈, 롤파크, LAB.O 등 내로라하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육연희 대표는 요즘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녀의 숙제는 호흡을 고르는 것. 또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함께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다. “남들은 한창 일할 때 유학을 다녀오다 보니, 다들 끝낸 고민을 조금 늦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괜찮아요. 또 하면 되죠.” 20여 년 가까이 묵묵히 한길만 성실하게 걸어온 그녀는 인생을 단순하게 살고자 한다. 어려운 일이라 생각될지라도, 일단 해보는 것. 그러한 무던함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내공을 길러냈을 것이다. 언제나 힘을 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