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그리던 바람과 이를 현실적으로 정리하고 구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과감한 시도와 절충을 거쳐 조화롭게 완성된 판교의 한 주택을 찾았다.
아들, 딸과 함께 사는 부부는 판교에 위치한 297m²의 단독주택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집을 고르는 데만 1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여러 곳을 둘러봤는데, 처음 봤던 이 집이 계속 마음에 남았죠. 산을 바라보는 데다 시원한 개방감이 느껴졌어요.” 고심 끝에 선택한 주택의 시공은 비하우스의 김지영 대표가 담당했다. “구조가 획일적인 아파트보다 자유로운 주택의 장점을 살리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대책 없이 변하는 건 지양해야 했죠. 제가 생각하는 지점과 클라이언트가 바라는 것이 코드가 맞았던 터라 빠르게 계획을 세울 수 있었어요.” 부부와 김지영 대표의 생각이 일치했던 지점은 바로 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시각적으로 강조할 부분은 키우되, 사람이 사는 주거 공간이라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래서 벽면은 과감한 색감이 아닌 베이지와 가벼운 회색톤을 선택하고, 곳곳에 나무 소재의 장과 가구, 세라믹 등 물성이 돋보이는 요소를 배치해 내추럴한 분위기가 감돈다. 전체적인 톤은 자연스럽지만 곳곳에서 과감한 구조 변경을 시도한 흔적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부부와 김지영 대표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은 바로 1층. 거실과 다이닝, 주방을 구태여 구분 짓지 않고 유기적인 구조를 선택하는 대신 재밌는 시도를 해보기로 결정한 것. “집주인이 소파가 큰 축을 차지하는 일반적인 거실을 꺼려했어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식탁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거실에서 밥을 먹는 경우도 자주 있다는 말씀을 해서 다이닝룸과 거실의 기능을 합한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두 공간을 합치기 위해 소파 대신 거실로 쓰려던 공간 중앙부에 다이닝 테이블을 두고 이를 중심으로 1층의 설계를 시작했다는 김지영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족들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모여 앉아 서로 마주보며 대화를 나눈다. 대신 애초에 다이닝룸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던 곳이자, 주방으로 통하는 길목에는 아치형 바를 설치해 소형 주방 가전이나 커피 머신을 비치했다. 하단에 있는 수납장도 흥미로운 요소다. 주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통일감을 주기 위해 약 6m길이의 싱크대 하부장과 같은 착색 과정을 거친 무늬목으로 수납장을 제작하는 위트를 발휘한 것.
1층이 가족 전체를 위한 공간이라면, 2층은 아들과 딸 그리고 부부를 위한 공간이다. 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마스터룸은 본래 침실과 함께 드레스룸, 작은 욕실과 연결되는 구조였지만, 과감히 드레스룸을 철거하고 욕실을 확장했다. 이어 물결처럼 이어지는 패턴의 대리석을 시공하고 부부가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세면대를 둔 다음 오른쪽에는 키 큰 장을 두어 수납 기능을 높였다. 침실은 프레임이나 헤드보드 대신 파운데이션만 제작해 호텔같은 침실을 바랐던 남편의 바람을 구현했다. 다만 호텔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빌트인 형식의 수납장 대신 우드 톤의 하부장과 카키브라운 컬러의 상부장을 설치해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색감이 느껴진다.
아이들 방에도 재미있는 요소가 숨어있다. 일반적인 문 대신 슬라이딩 도어나 커튼을 활용해 언제든 열려있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가끔 같이 자고 싶다는 아이들의 볼멘소리에 부부는 “우리는 지금 큰 방에서 함께 머물고 있는 거야. 거기에 엄마, 아빠를 위한 부분과 너희를 위한 부분이 나누어져 있을 뿐이란다”라고 아이들을 달랜다며 웃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마주하는 지하 공간은 둘로 나뉜다. 피규어 수집이 취미인 남편을 위해 마련한 피규어 룸과 마스터 룸에서 철거한 드레스룸 대신 부부의 옷가지를 수납할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비록 내부가 반듯한 직사각 형태는 아니지만 공간 중앙부에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수납과 디스플레이라는 두 요소를 영민하게 풀어낸 것이다. 특히 피규어 룸에서는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두어 가족이 함께 모이면 다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사는 이가 자신의 집에 바라던 것을 하나 둘 풀어내면 디자이너는 이를 기반으로 하나 둘 토대를 쌓아 집이라는 거대한 취향의 형태로 치환한다. 이처럼 매력적인 합을 통해 완성한 판교 주택은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