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크림을 두른 레드 벨벳 케이크의 단면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붉은 계단과 짙은 녹색의 복도 그리고 푸른색으로 칠한 서재가 시야에 들어온다. 새하얀 집 안 곳곳에 각양각색의 컬러를 품은 김포의 타운하우스를 찾았다.
로망과도 같은 드높은 천고와 볕이 가득 들어오는 큰 창 에 매료된 이예지 씨 가족은 김포의 200m2평 복층형 타운하우스를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어디서나 으레 볼 수 있는 네모 반듯한 이전 집과 달리 마치 모가 난듯한 모서리 공간을 품은 다각형 구조는 부부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쇼 프로그램 프로듀서로 일했던지라 매번 다른 세트를 위한 공간 레퍼런스를 모아온 이예지씨는 남편과 함께 머릿속에 그려온 집을 구현하기 위해 건축 스튜디오 3AB에 리모델링을 의뢰했다. “공연을 위한 무대를 구현하는 세트는 많은 비용을 들여서 만들지만 결국 철거되잖아요. 제 취향에 딱맞는 세트가 나왔어도 결국 해체되고 영상으로만 그 모습이 남아있는게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래서 내가 사는 공간만큼은 사라지지 않을테니 정말 취향에 딱 맞게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부부가 고안한 새로운 공간은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컬러가 집안 곳곳에 자리하는 것. “인테리어를 진행하면서 처음에 지었던 프로젝트명은 점입가경이었어요.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심플한 화이트 톤으로 꾸민 집 같았는데,고개를 돌리면 붉은색이 나오고, 커튼을 걷으면 짙은 녹색이, 붙박이장 안에는 푸른 공간이 나왔는데, 이에 딱 맞는 최적의 단어였죠.” 부부는 지하 공간을 포함해 3개 층으로 이뤄진 컨셉트는 물론, 자재와 모서리마감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시공업체와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받을만큼 집의 변신에 적극 임했다. 현관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각기 다른 비율로 색을 배합한 3개의 모듈스툴, 이집에 펼쳐질 다양한 색의 향연에 대한 작은 스포일러처럼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현관을 지나면 화이트 톤으로 말끔히 도장한 거실과 주방이 자리한다. 마치 채색화를 그리듯 집안 곳곳에 위치한 강렬한 원색과 드라마틱한 대비를 주기 위한 영리한 밑그림이다. 거실에는 과감히 소파를 두지 않는 대신, 볕이 가득 들어오는 창옆에 넓은 상판의 테이블과 비트라의 마스터 체어를 두어 다이닝과 거실의 역할을 병합하며 가족 모두 둘러앉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꾸렸다. 거실과 이어지는 주방은 요리를 즐기는 남편을 위한 공간이다. 특히 오마카세처럼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기 위해 홈 바 형태로 된 아일랜드를 주문 제작했을만큼 열의를 발휘했다. 또 상부장이 없어 시선을 가리는 요소를 제거하고 주방을 탁트인 면처럼 인식하게 되는 효과를 주었다. 부족한 수납공간은 주방 바로 옆에 팬트리를 별도로 마련해 말끔하게 해결했다.
본격적인 색의 향연은 1층에 위치한 아치형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치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입구에 들어서면 딥 그린 컬러의 짧은 복도가 나타난다. 본래 이곳의 정체는 안방처럼 작은 화장실과 파우더룸이지만, 중앙부에 가벽을 세워 공간을 반으로 분할한 다음 짧은 복도를 낸 것. 입구를 기준으로 복도 오른쪽에는 미닫이문을 달아 프라이빗한 드레스룸으로, 맞은편은 파우더룸과 화장실을 꾸려 지금과 같은 구조를 완성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1층과 2층 그리고 지하를 잇는 붉은 계단이다. “저는 이 계단을 볼때마다 레드벨벳 케이크의 단면같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이런 이미지는 세트를 제작할때도 자주 시도했었는데 우리 가족이 사는 집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기를 오랫동안 바라왔죠. 흰 벽 속에 이렇게 진한 레드톤의 공간이 드러나는 것이 극명한 시각적 대비를 주기도 하고요.” 여기에 집이라는 점을 고려해 바닥에는 부드러운 촉감을 위한 카펫을 깔았고, 천장에는 간접조명을 달아 은은하게 색이 퍼지면서 신비로운 느낌이 감돈다.
계단을 오르면 아이 방과 부부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연결된다. 가장 처음 마주하는 로비에서 1층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 왠지 흥미롭게 다가온다. 비현실적인 것을 경험하는 듯한 형형색색의 공간과 달리, 낮은 채도의 무늬목 강마루를 깔아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구현했기 때문. 이와 함께 이전 집에서 가져온 비슷한 톤의 모듈식 목제 책장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어 한층 온기를 더한다. 라운지 체어는 1층과 2층을 모두 아우르는 큰 창을 바라볼 수 있게 배치했는데, 종종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가족의 습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김없이 2층에서도 강렬한 컬러로 채운 공간을 만나 볼수있다. 로열 블루 컬러로 도장한 프라이빗한 서재 겸 작업공간이 그 주인공. 부부 침실에 마련한 이 공간은 기존의 수납장을 개조한 것으로 문을 닫으면 흰벽처럼 숨겨져 있지만, 문을 열면 아늑하지만 강렬한 색이 쏟아지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시공 당시 원하는 색을 여기저기 적용하다 보니 레드, 그린, 블루의 삼원색 톤이 집에 구현되어 있더라고요. 처음 프로젝트명으로 지었던 점입가경 대신 이 집을 RGB 하우스로 명명했어요.”
부부는 확고한 취향과 기준으로 완성된 가족의 타운하우스가 많은 이들의 방문을 환영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이 집이 지인들을 위한 스테이 겸 커뮤니티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희 부부는 당연히 즐겁지만, 아이가 더 많은 사람들을 경험했으면 하거든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석적인 어른 말고도 그림을 그리는 어른 친구, 노래하는 어른 친구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입체적인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