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크래프트맨십을 대표하는 일본의 가구 브랜드 히다가 한국에 진출했다.
우리나라의 스튜디오 가구 제작자의 대부분이 일본 가구를 교본으로 삼고 있는 상황이 보여주듯 일본은 ‘가구 선진국’이다. 목재와 디자인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기술적 완성도 역시 유럽 가구와 어깨를 견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일본의 가구 브랜드는 찾기 어렵다. 디앤드디파트먼트 D&Department의 나가오카 켄메이가 ‘60비젼 프로젝트(일본 디자인의 원점인 1960년대 디자인을 돌아보는 프로젝트)’를 통해 재조명한 카리모쿠 60 시리즈가 일본의 대표적인 가구로 기억되는 정도다. 카리모쿠 60 시리즈를 만든 텐도목공 Tendo이나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와의 협업 등으로 변신에 성공한 마루니 Maruni 같은 일본의 대표적 가구 브랜드가 한때 청담동의 쇼룸을 차지했지만 결국 기억조차 희미하게 퇴장하고 만 것이 여러 해 전이다. 일본 가구 부진의 원인을 우리 정서와 미묘하게 맞지 않는 ‘와모던(일본풍의 모던 양식)’의 디자인에서 찾거나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상회하는 가격 책정이 패착이었다고 분석하지만 단정짓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원목 가구 제조와 수입 판매회사인 인아트 In Art에서 일본의 가구 회사인 히다산업 Hida의 가구를 선보였다. 히다는 공장이 위치한 지역명이기도 한데 이곳은 ‘히다의 장인’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과거부터 기술이 뛰어난 목수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히다의 목수들이 교토와 나라 지방의 유명 사찰을 지었다. 히다산업은 1920년 설립 이후 나무를 쪄서 압력을 가해 원하는 모양대로 휘는 ‘곡목 기술’을 바탕으로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본의 대표 가구 브랜드로 성장했다. 한국 진출을 맞아 방문한 오카다 아키코 히다산업 경영기획실장에게 히다 가구에 대해 물었다. 참고로, 아키코 씨는 히다산업 오카다 산조 회장의 딸로 실질적인 경영을 맡고 있다.
곡목 기술을 바탕으로 한 히다산업의 가구 기술은 일본에서도 독보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과거 히다 지역은 활엽수인 너도밤나무 같은 삼림자원이 풍부했는데, 이 너도밤나무가 외력에 잘 반응해서 곡목하기에 알맞았던 점이 도움이 됐다. 또 히다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다른 예로는 삼나무 가구를 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삼나무를 심었는데 이 삼나무가 수십 년이 흐르면서 울창한 숲을 이뤘지만 무른 성질 탓에 쓸모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숲을 망치는 골칫덩이가 됐다. 히다에서는 곡목 기술을 응용해 삼나무를 고온으로 찐 다음 압축해서 가구 제작에 알맞은 단단한 목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재 생산하는 가구의 5% 정도를 이 삼나무 같은 국산 목재로 만들고 있다.
회사 규모는 어떻게 되는가? 전체 직원은 450명 정도로 그 가운데 제작에 참여하는 기술자가 250명 정도고 사내 디자이너가 18명이다.
쇼와 시대를 연상시키는 선과 플라워 패턴의 패브릭 사용 등 보수적인 히다산업이 2000년대 이후 디자인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며 젊고 모던해졌다. 계기가 있는가? 15년 전 지금의 오카다 산조 회장이 사장에 취임했을 당시 히다산업은 경영 악화로 도산 위기에 처해 있었다. 회장은 그때까지는 가구업계에서 금기로 여겼던 나무의 옹이나 마디를 오히려 장점으로 내세운 디자인을 제안했는데 젊은 세대에게 크게 히트하면서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었다. 그것이 ‘모리노코토바’ 시리즈다. 이후 기후현 차원에서 해외 디자이너와 제조사의 협업을 연계해주면서 이탈리아의 가구 디자이너인 엔조 마리와 협업하게 되었는데 그와 협업했다는 사실만으로 히다의 가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우리의 디자인 레벨도 올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디자이너 가와카미 모토미, 건축집단 토라후, 스위스의 건축집단 아틀리에 오이 같은 국내외 디자이너와 꾸준히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다.
가구의 라인업이 6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세분화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원칙으로 한다. 1년에 다섯 가지 시리즈를 새로 만들어내는데 신제품 개발이 상당히 빠른 편이다. 장인을 키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동안 기술자들의 기술과 실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사실 라인업을 줄이고 싶어도 고객들의 주문이 있기 때문에 줄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각 시리즈마다 생산을 위해 따로 만드는 지그(보조용 기구) 역시 많아서 이를 다 보유하기에도 벅차다(웃음).
특별히 인아트와 손잡게 된 계기가 있나? 인아트로부터 처음 제안 받은 것이 3년 전이지만 당시에는 수출에 대응할 만한 여력이 없어서 사양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대만과 홍콩 등지로 조금씩 수출하는 가운데 다시 제안을 받았다. 특히 엄태헌 대표가 우리 가구 가운데 ‘모리노코토바’ 시리즈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고 그런 그의 나무와 가구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맞아서 인아트를 파트너사로 정했다.
과거 한국에 진출했던 일본의 가구 브랜드들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본다고 생각한다. 도전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 않은가. 다행인 것은 인아트가 지금까지 한국 가구 시장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좋은 조력자를 만났다는 생각으로 함께 노력하고자 한다.
모던한 디자인도 많지만 여전히 히다가구에 남아 있는 일본적 색채가 걸림돌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아무래도 그동안 일본 고객만을 대상으로 디자인해왔기 때문에 납득할 만한 지적이다. 이제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했으니 다양한 고객에게 디자인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적극 디자인에 반영해 나갈 생각이다. 다만, 현재의 디자인으로 수차례 밀라노 가구 박람회 등에서 해외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충분히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주거 환경, 특히 바닥 난방은 원목 가구와 상극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가구를 바닥 난방을 하는 환경에 10년 이상 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본과 기후가 닮아 있고 가구를 제작할 때도 함수율(목재 내의 수분도)을 고려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엄태헌 대표 인아트 역시 지난 15년간 원목 가구를 다루며 함수율을 12%에 맞춰 제작했다. 하지만 올해처럼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테이블 중앙의 함수율이 5%까지 떨어진다. 그만큼 많이 수축됐다는 뜻인데, 별 도리가 없는 것 같다. 최근 인아트에서는 거래명세표에 원목 가구 관리 요령을 덧붙여서 제공하는데 결국 고객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 현지에서의 판매가와 비교해 우리나라에서의 판매가 책정은 어떻게 되나? 엄태헌 대표 가격대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가령, 식탁이 일본에서 30만엔에 팔린다면 우리나라에서는 1.5배에 해당하는 4백50만원으로 책정한다. 수입 과정에서 관세, 부가세, 소비세 그리고 물류비까지 더하면 현지 가격의 1.1배 정도가 되는데 여기에 다시 인아트가 입점해 있는 백화점 등의 수수료 등을 더하면 마진이 많지 않다. 그래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와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를 혼합한 B2BC 시장을 개척하려고 한다. 고급 인테리어와 건축을 하는 기업에, 히다가구의 이미지를 설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돕는 가상 3D 홈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설계 단계에서 히다가구를 결정하면 일본으로 개별 주문을 넣고 최장 40일 안에 한국에서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히다는 기술력을 살려 주문 생산하고 인아트는 홈 스타일링에 집중하려고 한다.
3월에는 히다가 도쿄의 미드타운에 새로운 형태의 숍을 오픈한다. 히다가구의 변화를 의미하나? 미드타운은 일본에서도 특별한 취향을 지닌 고객을 상대로 하는 곳이다. 이곳에 여는 숍은 지금까지와 달리 가구 외에도 잡화나 소품류를 함께 판매하며 히다가구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