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잡지사 사람들처럼 나의 시간도 5배속쯤 정신없이 흘렀다.
일에 취하고 술에 취하니 삶도 점점 어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차를 마셨다. 보이차로 시작해 육보차, 용정차, 랍상소우총…. 신기했다. 적어도 차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삶의 속도를 현저히 떨어트릴 수 있었다. 돌돌 말린 차의 엽저를 보고, 찻잎이 머금은 시간의 냄새를 킁킁대고, 따뜻한 물에 찬찬히 퍼져나가는 수색을 관찰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몇 번의 경험 끝에 깊게 빠져든 것은 보이차다. 마시는 법은 간단하다. 다기를 뜨거운 물에 데운 뒤 찻잎을 넣고 재빨리 씻는다. 와인처럼 찻물의 고운 색을 감상하며, 알맞은 시간에 차를 우려내고 잔에 따르기를 반복한다. 마실수록 몸이 따듯해지고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더부룩한 날에 마시면 소화에도 특효다. 중국 운남성에서 시작된 보이차는 일종의 발효차다. 가공 방식에 따라 크게 생차와 숙차로 나뉘는데, 생차는 자연적으로, 숙차는 인공적으로 발효한 것을 뜻한다. 특유의 향은 찻잎이 아닌 발효 과정에서 작용하는 미생물의 힘이다. 오래 묵힐수록 맛이 점점 좋아지고, 덩달아 가격도 점점 올라간다. 덕택에 세상에는 억대의 가격을 넘나드는 보이차도 존재한다. 중국, 대만의 차를 맛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 꽤 있다. 한남동의 산수화 티하우스(02-749-3138)나 연남동의 오렌지리프(010-9425-9242), 공부차 청담점(010-3348-8482), 보이차 브랜드인 대익에서 운영하는 타이티(02-6261-7542)까지. 최근에 키즈니 홈에서 론칭한 아미티는 아름다운 티캔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차야 그냥 편안하게 마시면 되지만 준비할 것이 하나 있다. 오롯이 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여느 티룸에서 만난 팽주는 이렇게 말했다. “차는 여유가 있어야만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분주한 마음으로 마시면 신기하게도 맛이 없어요.” 바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인이 되었다는 그녀는 나비 같은 몸동작으로 차를 따르며, 마치 내 마음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읊조렸다. 이 밤, 차 한잔이 간절해지는 이유다. 아등바등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