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컬러가 많으면 정신이 없고 쉽게 질린다는 편견을 깨준 지혜킴 씨의 집은 하얀 집이 대세인 요즘 가뭄에 단비처럼 반갑고 신선했다.
자신을 ‘지혜킴’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회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색채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의 신혼집은 온갖 색채가 넘실거린다. 녹색, 파란색, 노란색, 오렌지색 등 그녀가 좋아하는 컬러로 집 안을 꽉 채웠지만 전혀 산만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지혜킴 씨는 “집을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라고 생각했어요. 분명히 많은 색깔을 사용했는데 산만해 보이지 않는 건 채도를 맞췄기 때문이에요. 톤 다운된 채도로 통일했더니 안정적으로 보이는 거죠”라며 집을 소개했다.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로 이사한 그녀는 작년 11월부터 한 달 반 정도 공사를 진행했다. 남편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집을 꾸미라며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화장실 두 개는 그대로 두고, 바닥과 벽은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후회없이 원하는 것으로 바꿨다. 타일과 벽지 하나도 직접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며 고른 것들이다. “방이 세 개인데 하나는 동생이 임시로 사용하고 있어요. 다른 방은 서재 겸 TV를 볼 수 있도록 준비 중이고요. 침실은 채도가 낮은 오렌지색 벽지를 찾다가 드디어 발견해서 기쁜 마음으로 선택했어요. 주방은 녹색이 중심이고요, 거실에는 TV를 없앤 대신 3미터짜리 긴 테이블을 두었죠.” 이 집이 유난히 독특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거실의 배치 때문이다. 보통 대리석 타일로 마감된 TV 아트 월을 모두 뜯어내고 회벽칠 느낌의 청록색으로 마감했다. TV가 없는 거실은 보통 서재처럼 꾸미거나 장식장을 두기 마련인데, 긴 테이블과 등받이가 탈착 가능한 노란색 소파(반려묘 ‘장수’가 긁어도 문제없는 아쿠아클린 패브릭으로 제작한것), 벽난로 덕분에 라운지같이 근사한 공간이 완성됐다.
곳곳에 놓인 컬러풀한 소품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작품, 그녀가 직접 그린 작품과 디자인 아이템이 어우러져 어디에도 없는 ‘지혜킴’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집 안에 컬러를 사용하고 싶지만 쉽게 질릴 것 같아 걱정인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저 역시 언제든 집 안의 컬러를 바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한번 결정한 것은 계속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흰색, 회색 등 안전한 색상을 선호하게 되고요. 저는 이 청록색 벽이 지겨워지면 바꿀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답니다. 과감하게 도전해보시길 바라요.” 지혜킴 씨는 3월부터 창성동 자인제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집에 거의 들어오지 못할 만큼 근처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열정적인 그녀와 과감함을 지닌 이 집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