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있는 미술관 연재의 마지막 주인공은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감동을 선사하는 안토니 곰리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을 방문하고 싶어졌다.
리버풀은 영국의 유명한 항구도시다. 미국으로 떠나는 타이타닉 호도 이곳에서 출항했다. 차, 담배, 비단, 새로운 모든 것을 싣고 온 항구는 대체 운송 수단이 발전하고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뀜에 따라 점점 쇠퇴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틀즈가 탄생한 고향이기도 한 이곳을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리버풀의 재건 사업과 함께 대대적인 항구의 개편이 이루어졌고,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 역시 이때 문을 열었다.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준비 사업은 1988년에 완성되었다. 항만의 창고를 정비한 앨버트 독의 한쪽에 드디어 테이트 미술관의 북쪽 지점, 테이트 리버풀이 완성된 것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도리어 적당한 규모라 다리 아프지 않게 작품을 둘러볼 수 있고, 미술관에서는 창문을 통해 바닷가를 바라볼 수도 있다. 지층의 카페에는 데이비드 호크니 등과 함께 영국 팝아트를 이끌었던 피터 블레이크의 만국기 작품이 걸려 있어 국제적인 도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미술관 주변으로는 인파가 끊이지 않는 비틀즈 박물관, 신식 건축물의 위용을 자랑하는 해양 박물관 그리고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와 기념품숍이 즐비하다. 여흥이 감도는 분위기 덕분에 세계의 그 어느 미술관보다 가볍고 신나는 마음으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지금은 연간 60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 중의 명소가 되었다.
한편 이곳에서 얼마 머지 않은 곳에, 그 어느 곳보다 숙연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리버풀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리버풀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2004년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곰리는 인적이 드문 근처의 바닷가를 작품의 전시 장소로 선택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수영은 불가능하고, 항상 끈적거리는 진흙으로 뒤덮인 모래사장을 말이다. 이 해변의 약 50m 반경에 띄엄띄엄 100여 점의 조각 작품을 세웠는데, 모두 작가의 신체를 캐스팅한 실물 크기의 인물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인물들은 전혀 미동도 없지만 바닷물이 차오르고 빠질 때마다 물에 푹 잠기기도 하고 때로는 반만 모습을 드러내는 등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가 된다.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외롭지 않은 동반자가 됐다. 본래 리버풀 비엔날레를 위한 임시 프로젝트로 1년간만 전시할 계획이었으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공공 조각으로 영구 설치되었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닷물과 접촉한 주철 조각의 피부에는 이끼가 잔뜩 껴 초록빛으로 변한 작품도 있고, 파도에 휩쓸리면서 휘어져 넘어진 것도 있다. 특히 해 질 무렵이면 외로운 인생길의 동반자를 만난 듯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는 작품이다. 미술에 대한 대단한 관심이나 열정 혹은 지식을 갖추고 방문하는 게 아니라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언제든 쉽게 들를 수 있는 예술이 있는 쉼터, 바로 바다가 있는 미술관의 매력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