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키 공원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라지 미술관은 이제 막 힘차게 뻗어나가는 러시아 현대미술의 상징과도 같다.
러시아에도 미술관이 있을까? 미국이나 유럽에 좀 더 익숙한 우리에게는 러시아나 중국에 가볼 만한 미술관이 있을지,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이야 그렇다 쳐도 러시아는 왠지 가볼 만한 미술관이 없지 않나 섣불리 짐작할 수도 있겟다. 하지만 러시아는 사회주의국가가 되어 외부와 단절되기 이전, 유럽의 미술 작품을 수집해온 ‘빅 컬렉터’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수준급의 러시아 정부 미술관이 있다. 소위 세계 몇 대 미술관에 꼽히는 생 페테스부르그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일례로 모스크바에도 트레차코프 미술관, 푸시킨 미술관 등 마티스, 고갱, 피카소 등 뉴욕의 모마 MoMA나 파리의 오르세에 못지않은 수준급 컬렉션을 보유한 미술관이 있다. 반면, 20세기 후반 냉전 시대를 겪으며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활동이 뒤처지고 제대로 된 미술관도 부족한 실정이었는데, 이 점을 반성하며 세워진 미술관이 2008년 건립된 가라지 현대미술관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이다. 특별한 이름은 오래된 버스 창고를 개조해서 출발했기에 붙여진 것. 그러나 2012년 이곳마저도 헐리게 되면서 시게루 반의 임시 건축물 시대를 거쳐, 2015년 고리키 공원의 렘 쿨하스 건축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 옮긴 미술관은 반짝거리는 폴리카보네이트로 외관을 마감한 건축이 백미다. 공원 입구는 차량 출입이 금지되어 누구라도 공원 입구에서부터는 걸어서 미술관까지 가야 하는데, 울창한 숲과 호수를 지나 왜 미술관이 안 나오지 궁금해할 즈음 미술관이 턱 하고 나타난다. 미술관 외벽에 하늘이 반사돼 건축물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바라보면 아무것도 없는 투명한 하늘처럼 보인다. 미술관 앞에 서서 건축물의 아우트라인을 인식하고 바라봐야만 비로소 건물의 형태가 드러난다. 모던한 사각형의 미술관은 새로 지은 빌딩 같지만, 실은 1920년대 파빌리온의 식당 건물이었던 것을 증축, 개축한 것이다. 미술관 카페는 그 당시 레스토랑의 붉은 벽돌을 그대로 활용했고, 로비 한편에는 소비에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사실주의적 모자이크로 벽면을 장식했다. 미술관의 설립자는 러시아 출신의 사업가 다샤 주코바 Dasha Zhukova와 첼시 구단주로도 유명한 로만 아브라모비치 Roman Avramovich 부부로 2017년 이들의 이혼으로 미술관의 미래에 대해서도 온갖 추측이 있었지만, 여전히 후원자로 남아 있다. 후원자의 뜻을 담아 가라지 현대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소개하되, 시민들과 함께하는 열린 공간 내지는 도서관, 출판, 리서치 프로그램과 장학금을 제공하는 연구기관을 지향하고 있다. 우르스 피셔(2016년), 타카시 무라카미의 대규모 개인전 (2017~2018년) 등이 열린 것을 비롯해 올해만 해도 다미안 오르테가, 앙리 살라, 마르셀 브로테어스, 일리야 앤 에밀리아 카바코브 부부 등의 전시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