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보냈던 하루의 기록을 적어본다. 주로 먹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AM 8:00 근래 러닝에 꽂혀 아침부터 뜀박질을 하러 나섰다. 오늘의 코스는 밀라노에서 가장 큰 공원인 샘피오네 파크다. 도시에서 숲의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러너들의 성지다. 적당히 땀을 흘리니 밀라노의 건강한 에너지를 모조리 훔쳐 마신 듯 상쾌하게 차올랐다.
AM 9:00 아침은 세련된 밀라네제처럼 커피 한 잔에 크루아상을 먹기로 했다. 오르소네로 Orsonero는 에스프레소의 종주국인 밀라노에서 흔치 않은 스페셜티 카페다. 이탈리아가 재미있는 것은 전통적인 커피 강국임에도 스페셜티 시장에서는 한창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수두룩한 커피 강자들을 떠올리며 괜히 뿌듯해졌다.
PM 12:30 점심은 톰 딕슨이 밀라노에 오픈한 레스토랑 더 만초니 The Manzoni에서 먹었다. 레몬과 연어, 소금, 올리브유의 조합이 완벽했던 애피타이저가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역시 요리의 90%는 재료다. 나오기 전,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셀카의 늪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PM 2:00 배도 꺼트릴 겸 레스토랑 근처에 있는 빌라 바가티 발세키 Villa Bagatti Valsecchi에 들렀다. 1880년대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귀족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엄청난 아트 컬렉터였는데 취향이 꽤나 독특하다. 시뻘건 벽지로 된 침실이라든지, 고대의 무기가 잔뜩 걸린 벽면이라든지. 시뻘건 침실을 지나니 창백한 침실이 하나 더 나왔는데, 당시 침실이 두 개인 것은 부의 상징이라고 했다.
PM 4:00 오후에는 이탤리언 스타일로 커피를 한잔더 마시기로 했다. 엠포리오 아르마니아에서 오픈한 카페에서 스탠딩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밀라노에서 마시는 커피는 착석 여부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바에 서서 찬찬히 커피 맛을 좀 즐겨보려는데, 다들 약을 털어 넣듯 들이켜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PM 7:30 밀라노 전통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오스테리아 델라콰벨라 Osteria dell’Acquabella에 왔는데 아무도 없다. 아페리티보를 먹느라 바쁜 밀라네제들은 진짜 밥을 늦게 먹는다. 음식 메뉴판은 한 장인데, 와인 메뉴는 한 권이었다. 밀라노 전통 음식인 오소부코에 아마로네니 바롤로 같은 것을 잔뜩 마셨다. 괜히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김치찌개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