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욕심이 많지는 않지만 허상욱 작가의 분청은 가만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TWL 핸들위드케어에서 전시 중이었던 그의 분청은 대표적인 작업 방식인 ‘박지’를 비롯한 다양한 기법이 적용돼 다채로웠다.
분청은 “20세기 도예가가 나아갈 길은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이미 다했다”는 칭송을 받을 만큼 인정 받은 방식이다. 허상욱 작가의 분청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빼앗겼던 것은 작은 사발이다. 차를 마시거나 체리 같은 작은 과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봐온 소박한 요소를 그림으로 담았다. 새나 고양이 같은 동물부터 옛날 조선시대의 책상이나 꽃 등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이 박지 기법으로 담겨 있는데 배경은 은색에 가까운 회색이고 무늬는 흰색인 것이 특징이다. 많은 그릇을 보며 함께 전시를 보러 간 후배들과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개당 15만원이라는 가격 앞에서 여러 개 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2개만 골라야 했기에 더욱 그랬다. 30분 정도의 시간 끝에 고른 것은 흰색 고양이와 꽃을 들고 기도하는 소년의 그림이었다. 개어멈으로 강아지 그림이 있었으면 했지만 전시를 시작하자마자 판매됐다는 아쉬운 이야기를 들었다.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 같다. 때로는 작은 막걸리잔처럼 활용하거나 그림이 잘 보이는 맑은 차를 마셔도 좋겠다. 큰 얼음을 띄워 아이스 커피를 담아 마셔보고 나서야 그림을 확인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손에 가만히 쥐고 있으면 평온한 일상을 꿈꾸게 되는 허상욱 작가의 분청은 2020년 여름을 기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