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겁고 힘겨운 한 해를 보낸 우리 모두에게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작은 빛을 발견할 수 있듯 소소하지만 삶에 위안이 되는 것은 늘 있기 마련이다. 지난 한 해 각 분야에서 고군분투한 21인이 보내온 리스트를 보며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끼는 새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부모님의 비밀 정원
슬로우파마씨 대표 이구름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에게 주말마다 마스크 없이 뛰어놀 수 있는 부모님의 비밀 정원이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고 가장 큰 위안이 되어준다. 정원은 늘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매 순간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도시에서의 복잡했던 생각이나 시끄러웠던 머릿속을 비워나간다. 자연에서는 시계를 볼 필요도 없이 하루가 흘러가며 억지로 재미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무리없이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다. 땅을 가꾸고 사랑하는만큼 보람찬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인한 자연을 볼 때마다 한없이 감탄하기도 한다.
울프강 틸만의 루이지애나 사진
메종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권아름
다이닝 테이블 앞 휑한 흰 벽을 보며 포스터를 걸면 좋겠다는 생각에 쿠나장롱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발견한 울프강 틸만의 루이지애나 사진 포스터는 단번에 마음과 눈을 사로잡았다. 5년전 혼자 떠난 덴마크 여행에서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매료되어 꽤 오랜 시간 머물렀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연에 둘러싸인 미술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작품이었다. 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연이 걸작인 그곳에서 몽글몽글하게 피어올랐던 감정을 지금 이 순간 테이블 앞에 앉아 다시 느껴본다. 마치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있는 것처럼. 오늘도 그의 포스터를 보며 여행에 대한 갈증을 달래본다.
강릉의 일출
프리랜스 마케터 이홍안
강릉에서 반 서울에서 반 지내는 요즘의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일출 시간에 맞춰 강릉집 앞의 바다에 나가 해 뜨는 것을 보는 일이다. 두툼한 담요와 낚시 의자, 따뜻한 커피는 필수다. 겨울철이라 아침 7시쯤 집을 나서면 무리하지 않고도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스크없이 외출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인적 드문 바닷가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요즘처럼 답답하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어두컴컴한 새벽을 뚫고 해가 방긋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해가 뜨는 것처럼 이 시기도 언젠가 지나가겠구나 하는 낙천적인 기운이 샘솟는다.
팔로산토와 스머지 스틱
레디투웰니스 대표 백은영
본격적으로 요가를 공부하기 시작한 4년 전부터 팔로산토와 스머지 스틱을 피우기 시작했다. 팔로산토는 신성한 나무로 불리는 나무 스틱이고 스머지 스틱은 허브를 말려 태우는 방식이다. 이것들은 단순히 좋은 향을 내기 위해서 피우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기운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주는 의식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팔로산토가 항균과 항염, 소독과 해독 작용을 도와준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팔로산토와 스머지 스틱을 태우며 시작하는 나의 아침 루틴은 마음을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
리사이클링 모빌 조각
트래쉬버스터즈 대표 곽재원
직장 생활을 하다 창업을 선택했고 이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불안함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단 하나, 변화의 가능성 뿐이었다. 지금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가 사회의 혁신을 만들 수 있을거라는 확신. 우리는 남들이 쓰레기라 치부했던 모든 것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그것에 새로운 역할을 심는다. 이러한 리사이클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었던 모빌이 있다. 길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병뚜껑을 모아 이것을 잘게 부수고 압력을 가해 평평하게 만든 다음, 원하는대로 모양을 내고 엮어 모빌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렇게 쓸모 없다 여긴 것들도 다시 기어코 삶을 이어나간다. 풍파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도 그렇게 꿋꿋하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