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C GUIDE] Step4 REVIEWS

[BASIC GUIDE] Step4 REVIEWS

[BASIC GUIDE] Step4 REVIEWS

영화를 보든 쇼핑을 하든, 미리 경험한 사람들의 리뷰를 읽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처음 다녀온 <메종> 에디터들의 생생한 리뷰를 전한다.

 

크바드랏 라프 시몬스 전시

버려진 창고에서 진행한 크바드랏/라프 시몬스의 전시.

 

오를란디 갤러리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었던 로사나 오를란디 갤러리.

 

프라이탁

재미있는 체험형 전시를 선보인 프라이탁.

 

안톤 알바레즈 전시

안톤 알바레즈의 전시.

 

아르마니 까사

타다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아르마니 까사.

전시의 인상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났다.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몇 가지 전시를 꼽아본다. 일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지막 만찬’을 오마주하여 오래된 교회에서 전시했던 안톤 알바레즈 Anton Alvarez의 <The Last Wax>. 컨셉트에 어울리는 역사적 공간뿐 아니라 조도, 음악, 향기까지 완벽했다. 두 번째는 프라이탁의 <Unfluencer>. 귀여우면서도 음산하게 디스플레이된 공간에서 환경에 해를 끼쳤던 죄를 고백하는 체험형 전시가 브랜드의 방향성과 잘 맞아떨어졌다. 이 전시들이 유달리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이번 시즌 유달리 멋진 신제품을 출시해서? 사실 예쁜 것은 당연하다. 밀라노는 세계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브랜드들이 신제품을 들고 나오는 곳이니 말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마치 하나의 극과 같아서 주연이 되는 제품뿐 아니라 무대가 되는 전시장 등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져야 한다. 특히 장소가 주는 인상은 생각보다 무척 강렬한데, 시내 곳곳에서 진행된 ‘푸오리살로네’가 더욱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전시장 위주로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페어를 떠올려보았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처럼 역사적 유물에서 펼쳐지는 공예전이라든지, 을지로의 허름한 건물 한 채를 빌린 가구 전시도 멋질 텐데 말이다. 얼마 전 운경고택에서 진행했던 <차경-운경고택을 즐기다>는 그 모범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물론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모두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단순히 제품만 늘어놓은 디스플레이형 전시장이나 수많은 컨셉트를 무리하게 끼워 맞춰 기획한 브랜드 혹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자신만의 해석으로 읽어내야 하는 난해한 전시 등 희미하게 기억되는 전시도 많았다. 한정된 기간에 많은 전시를 보다 보면 좋고 나쁨의 기준이 또렷해진다. 어찌 보면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획자들이 꼭 찾아야 할 페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밀라노라는 도시 전체를 감각적인 축제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밀라노 디자인 위크처럼 서울도 그렇게 멋진 전시를 선보일 날을 상상해 보았다. 분명 머지않았다고 확신한다. editor 문은정

 

 

 

구찌 데코

휘황찬란한 컬러와 패턴으로 무장한 구찌 데코의 인테리어 컬렉션.

 

까시나

까시나 쇼룸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의 총괄 아래 완성된 까시나의 쇼룸. 시대를 아우르는 거장 디자이너의 제품으로 가득 메웠다.

 

마르니

콜롬비아 장인의 손길로 완성된 형형색색의 가구 및 소품을 선보인 마르니.

 

오래 남을 기억

에디터는 영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공부하는 4년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파리 포토, 밀라노 엑스포,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은 가보았지만,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그 존재조차 몰랐다. 처음 가본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예술학과 공부를 한 내가 4년간 무얼 하고 지냈나 하는 의문이 들 만큼 놀라웠다. 5박6일간 수많은 전시를 챙겨 보느라 발에 불이 날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아무리 멋진 전시라지만 지치는 순간은 찾아왔다. 하지만 또 어느새 무궁무진한 디자인 세계에 감탄하며 핸드폰 셔터를 정신없이 눌러대고 있었다. 허리와 다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고통도 잊어버렸다. 매년 4월에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브랜드는 물론 신진 작가와 학생, 글로벌 기업까지 몰려든다. 한 해를 선도할 디자인 트렌드가 예고되며 각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컬렉션을 누구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기 때문. 파올라 나보네, 로사나 오를란디, 하이메 아욘, 마르셀 반더스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전시장에서 마주할 수 있었는데, 디자인 축제를 함께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전시 중에서도 가장 취향 저격했던 전시는 듀리니 스트리트의 까시나 쇼룸에서 진행된 <Cassina The Perspective>와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구찌 데코의 전시 그리고 마르니의 <Moon Walk>였다.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Pierre Jeanneret, 로돌포 도르도니 Rodolfo Dordoni, 부훌렉 형제 등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으로 공간을 가득 메운 까시나의 전시는 지금까지도 핸드폰 배경화면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구찌에서 선보인 데코 전은 패션 브랜드의 홈 컬렉션 중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는데, 역시 구찌만의 화려한 패턴과 색감, 소재에 거듭 감탄했다. 마치 우주 세계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의 마르니 <Moon Walk>전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상상 속 또 다른 차원이라는 올해의 트렌드와도 부합하는 듯했다. editor 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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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를 빛낸 스타 디자이너] 아틀리에 비아게티+디자인 너머의 철학

[밀라노를 빛낸 스타 디자이너] 아틀리에 비아게티+디자인 너머의 철학

[밀라노를 빛낸 스타 디자이너] 아틀리에 비아게티+디자인 너머의 철학

올해도 수많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다채로운 전시를 선보였다. <메종>의 시선을 끌었던 스타 디자이너 6명을 만났다. 세 번째 이야기는 미술, 건축, 디자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아틀리에 비아게티 Atelier Biagetti다.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전시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곤 한다. 올해는 몇몇 디자이너가 새롭게 참여했는데, 아틀리에 비아게티 역시 새로운 멤버다. 정답처럼 여겨온 관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들의 활약은 이번 전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아틀리에 비아게티

부부인 알베르토 비아게티와 라우라 발다사리가 운영하는 아틀리에 비아게티.

 

한국 독자들에게 아틀리에 비아게티를 소개해달라. 아틀리에 비아게티 Atelier Biagetti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베르토 비아게티 Alberto Biagetti와 아티스트 겸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라우라 발다사리 Laura Baldassari가 듀오로 활동하는 스튜디오다.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미술, 건축, 디자인을 넘나들며 작업한다.

둘이서 함께 일하게 된 계기가 있나?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는 부부이지만 2013년까지 따로 일해왔다. 큐레이터 가비 스카르디 Gabi Scardi가 우리한테 함께 작업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녀는 우리가 분야도, 방향도, 결과물마저도 달랐지만 유사한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함께 일해보기로 했고 첫 번째 공동 전시로 알베르토가 만든 디자인 작품과 라우라가 그린 그림으로 우리의 방향성을 반영한 설치물을 2013년에 선보였다. 그 후 2015년에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데로 Maria Cristina Didero가 큐레이션한 3부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네모나 테이블

푸른 조명빛과 어우러져 바닷속의 신비로운 생명체를 떠올리게 한 아네모나 테이블. ⓒTommaso Satori

아네모나 테이블

심해의 생명체를 닮은 아네모나 테이블.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나? 주변의 세계, 인간의 행동, 현대사회의 가장 큰 강박관념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우리는 사물의 기능을 해부하고 분해해서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고착화된 것처럼 보이는 코드를 재구성한다. 우리는 사물이 주인공이 된 듯한 장면을 만들고, 그것을 둘러싼 공간과 관습에 의문을 품기를 바란다. 이때 사물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장치가 될 수 있으며,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는 집단 기억이 손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오브제 노마드를 디자인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 우리에게는 정말 큰 영광이었다. 루이 비통은 루이 비통이다. 연락을 받았을 때 매우 기뻤고,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다는 것에 흥분했다.

다양한 아이템 중에서도 테이블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둘러앉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는 큰 테이블을 상상했다. 우리의 목적은 테이블 주위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여행을 시작하기 전과 돌아온 후에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네모나 테이블은 ‘바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다. 우리가 라벤나 Ravenna라는 해안 도시 출신이어서 그런지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 물가를 떠올리곤 한다. 이 도시는 내륙과 바다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있다. 때문에 굉장히 신비한 매력이 있는데, 이런 느낌을 아네모나 Anemona 테이블의 컨셉트와 디자인에 반영했다. 아네모나 테이블은 우리의 인식이 왜곡되고 달라지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온 신비로운 생명체다.

 

아틀리에 비아게티

아틀리에 비아게티

 

아틀리에 비아게티

애착을 갖고 있는 전시로 꼽은 <Money, Sex and Body Building>. 현대사회의 돈과 성, 미학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수수께끼 같은 공간으로 풀어냈다.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나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 ‘돈, 섹스 앤 보디 빌딩 Money, Sex and Body Building’이라는 3부작 프로젝트에 가장 애착이 간다. 3년 동안 계속된 대형 프로젝트였을 뿐만 아니라 이 전시를 통해 우리의 창의적인 방향을 통합할 수 있었고, ‘행위 디자인 Performing Design’이라는 컨셉트를 제대로 결합시킬 수 있었다.

아네모나 테이블의 디자인 과정은 어떠했나? 우리는 하나의 단어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후 영화처럼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요소를 묶어서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그 장면에서 주인공은 단연 오브제들이다. 기능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또 루이 비통이라는 어마어마한 브랜드 이면에는 서로 교감하며 열정이 넘치는 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이 비통 제작팀과 함께 한계는 없다는 생각으로 임했고, 결과물은 환상적이었다.

여행은 얼마나 자주 하나? 좋았던 여행지가 있다면? 운이 좋게도 일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니는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좋은 계기가 된다. 최근 중국과 일본으로 멋진 여행을 다녀왔고 굉장한 장소들을 보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고향과 가까운 시칠리아를 매우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간다. 시칠리아는 역사와 전통이 풍부해서 상상력을 자극할뿐더러 집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에 재충전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나온 오브제 노마드 작품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캄파나 형제 Campana Brothers의 벌보 Bulbo 체어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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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GUIDE] Step3 TRENDS

[BASIC GUIDE] Step3 TRENDS

[BASIC GUIDE] Step3 TRENDS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구성하는 지역부터 꼭 알아야 할 스타 디자이너, 알고 가면 좋은 디자인 사조까지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기본 가이드를 소개한다. Step3는 바로 ‘트랜드 TRENDS‘. 시대마다 유행하는 디자인 사조, 즉 트렌드가 있다. 바우하우스부터 지금까지 디자인 업계 전반을 지배하는 20세기의 사조는 어떠한 경향으로 흘러왔을까.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의 윤여경 교수가 지금까지의 사조 흐름을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었다.

 

19세기, 수정궁과 아르누보

1850’ Industrial Revolution

에펠탑

파리의 에펠탑.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 기이한 건축물이 하나 들어섰다. 반짝거리는 이 건물은 수정궁 Crystal Palace이라 불렸다. 당시 건축가이자 조경 및 온실 설계자였던 조셉 팩스턴 경 Sir Joseph Paxton은 전통적인 건축 재료인 돌과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철과 유리만으로 수정궁을 세웠다.

18세기부터 산업혁명을 주도한 대영제국은 19세기 지구의 3분의 1을 지배했다. 산업혁명은 제2의 철강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인들은 철을 제련할 때 목탄 대신 코크스를 활용해 공정의 효율을 높였다. 철의 강도도 1000배 이상 올렸다. 덕분에 주로 칼이나 대포에 사용되던 철이 건축 소재로 거듭났다. 철은 건물만이 아니라 기차역, 다리, 배 등 강도가 필요한 건축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프랑스의 건축가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 Alexandre Gustave Eiffel도 철에서 영감을 얻어 철골 구조로 된 에펠탑을 세웠다. 프랑스의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에펠탑은 현재의 파리, 아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19세기의 파리 시민들은 에펠탑을 흉물로 여겼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한 예술 양식은 아르누보 Art Nouveau였기 때문이다. 아르누보를 직역하면 ‘새로운 예술’이다. 아르누보는 영국의 미술 공예 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영향을 받은 양식이다.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을 주장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꽃이나 나무 등 식물의 형태를 추상화시킨 장식을 선호했다. 귀족들의 상징이 주로 동물이었기에 유기적인 곡선을 강조한 식물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아르누보는 이런 흐름을 이어받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술 양식이다.

 

1880’ Art Nouveau

아르누보

(왼)벨기에 건축가 앙리 반 데 벨레의 작품, (오)윌리엄 모리스의 벽지

아르누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 전반에도 영향을 주었다. 앙리 반 데 벨데 Henry van de Velde는 아르누보 양식을 잘 활용했던 벨기에 출신의 건축가다. 그는 건축뿐 아니라 의자와 시계 등 인테리어 소품도 아르누보 양식으로 디자인했다. 독일의 미술 공예 운동을 주도한 ‘독일공작연맹’에서도 활동하며 그랜드 듀칼 예술공예학교의 설립을 주도했다. 후일 이 학교는 바이마르 아카데미와 합쳐서 바우하우스로 거듭난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의 암 호른 주택

1910’ Bauhaus

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 건물.

1919년 바이마르에 설립된 바우하우스 Bauhaus는 가장 유명한 디자인 학교였다. 현대의 디자인 개념과 교육 내용이 대부분 바우하우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의 혁신을 주장한 유명 예술가들이 바우하우스의 교사로 참여하면서 새 시대의 예술가를 꿈꾸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바우하우스로 몰려들었다. 초기의 바우하우스는 수공예 중심의 건축공예학교를 지향했지만 엄청난 기계의 발달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었던 그로피우스는 교육 방향을 수정하고 교수진을 교체해 신기술과 신소재를 적극 수용했다. 새로운 교수진은 소묘나 주관적 표현보다는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와 객관성을 강조했다. 기계를 활용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예품을 만들도록 독려해 미술과 공예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 1923년 바우하우스는 자신들의 교육 이상을 알리기 위해 전시를 열었다. 건축학교를 표방한 만큼 새로운 주택도 선보였는데 이를 ‘암 호른 주택 Haus Am Horn’이라 부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우하우스의 교사들은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가 그랬듯 ‘건축은 거주를 위한 편리한 기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철과 콘크리트 등 기계적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주방 인테리어가 혁신적이었다. 이 주방은 현대 주방의 모태가 된 ‘프랑크푸르트 주방(1926년)’에 영감을 주었다. 암 호른 주택은 현대인의 생활양식과 인테리어의 전범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바우하우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1933년 나치가 득세하면서 문을 닫았고 교사와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20세기 중반, 미국과 소련의 아르데코

1920’ Art Deco

아르데코

아르데코풍의 프랑스식 인테리어.

리나 퍼니처

슬로베니아 가구 브랜드 리나 퍼니처의 문 라지 체어.

1925년 파리에서 ‘현대 장식미술 국제전’이 개최되었는데, 이 전시의 주제인 장식미술은 프랑스어로 ‘Art Deco’였다. 아르데코의 장식은 아르누보와 달리 자연적인 곡선이 아니라 반복되는 기하학적 직선이다. 재료 또한 목재보다 철과 유리가 주로 사용되었다. 직선적인 기하학 그리고 철과 판유리로 장식된 공간을 사람들은 아르데코 양식이라 불렀다. 아르데코는 소련에서 시작되었다. 구성주의 혹은 구축주의라 불린 혁명적인 예술가 그룹은 예술과 공예의 기계적 평등을 추구했으며,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예품을 디자인했고 철과 콘크리트, 유리로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장식했다. 이 흐름은 앞서 언급한 바우하우스의 교육 방향에도 영향을 주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상당수의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활약하고 있었다. 역사의 굴레에서 다소 자유로웠기에 건축양식은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기능성을 추구한 건축은 이미 유럽보다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루스 Adolf Loos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새로운 양식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후일 그는 ‘장식과 범죄’라는 에세이로 유럽에서 스타가 되었다. 당시 미국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했던 유일한 국가로 공장은 종일 가동되었고 노동자들한테는 기회가 넘쳐났다. 활기가 넘치는 미국이라는 도시에서는 전통의 굴레에 갇힌 유럽과 달리 실험적인 미술 양식도 적용 가능했다. 특히 미국 자본가들은 전통적인 귀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효율성과 재생산이라는 소명의식을 가졌던 그들은 절제된 기하학적 장식을 선호해 건축의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에 아르데코 양식을 적극 적용했다. 덕분에 아르데코는 자본 귀족들의 양식이 되었으며, 지금도 미국의 고급 호텔과 백화점은 아르데코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20세기 후반, 미니멀리즘과 멤피스 운동

1960’ Minimalism

미니멀리즘 건축

아키텍츠 601 심근영 소장의 판교 주택.

미국과 소련이 대립했던 냉전시대는 양극단의 시대로 디자인 양식도 단순과 유희, 양극단이 대립되었다. 평등을 추구하는 동유럽과 소련은 단순함을 강조했으며 자유를 추구하는 서유럽과 미국은 유희 문화가 도입되었다. 전통적인 문명, 문화적 경계는 무시되었고, 소련과 미국의 대기업은 자신들의 양식을 주변 국가에 강요했다. 그 강요는 미국과 소련의 국경을 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에는 단순함이 강조된 미니멀니즘 양식이 유행했다. 어린이에게 국경이나 문명의 경계가 없듯, 미니멀리즘의 공간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재료의 순수성이 강조되며, 주로 무채색이 사용되었다.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진 공간과 가구는 각각의 기능이 완벽하고 조화롭게 배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공간은 때로는 인간조차 거슬려 보이게 한다.

 

1970’ Memphis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의 메인 전시장.

많은 사람들은 이런 순수함에 숨이 막혔고, 이내 억압을 거부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멤피스 Memphis 운동이라 한다. 이탈리아의 멤피스 운동은 미니멀리즘에 대한 거부이자 기하학의 유희라 할 수 있다. 아르데코처럼 형태를 장식적 요소로 사용하고 무채색이 아니라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또한 목재나 천 등 다소 보수적인 소재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운동에 동조한 디자이너들은 의자와 책상, 조명 등 다양한 가구를 재치 있는 형태로 풀어내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미니멀리즘으로 죽은 공간을 회생시켰다고 할까. 멤피스 운동을 보고 자신감을 얻은 각국의 디자이너들은 억압된 문명을 되살리고 자신들의 문화를 반영한 디자인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21세기, 기능주의

2019’ Contemporary

이케아

이케아.

무지

무지

무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루이스 설리번 Louis Sullivan의 유명한 명제다. 기능이 형태의 기준이며, 기능이 변화하면 형태도 변한다는 의미다. 설리번에게 영향을 받은 아돌프 루스가 장식을 범죄로 규정하자 형태도 위축되었다. 극도로 절제된 미니멀리즘은 형태를 기능에 가두었다. 억압된 만큼 반감도 컸고 멤피스 운동은 탈옥을 기도했다. 탈옥에 성공한 디자이너들에게 기능은 그저 재미와 즐거움이었다. 21세기 들어와 형태와 기능의 중용에 성공한 디자인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애플과 무지 그리고 이케아다. 이들의 디자인은 깔끔하게 마감되어 기능성을 강조했지만 내용은 다채로웠다. 애플의 다양한 앱은 디지털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고, 무지의 절제된 소품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공간을 연출했다. 이케아는 자신들의 가구를 조합해 고객들에게 다양한 생활양식을 제안했다. 각각의 기업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을 대표하지만 한 공간에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건축과 인테리어에 있어 문명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디자인을 ‘기능주의 Functionalism’라고 말한다. 루이스 설리반의 이상이 한 세기를 건너 실현된 것이다. 2019년은 바우하우스 100주년이다. 대영박람회에서 철과 유리 소재로 촉발된 기능주의 건축은 100년 전 바우하우스에서 수용되어 교육되었다. 기능주의는 유년기의 아르데코와 청소년기의 미니멀리즘, 청년기의 멤피스를 거쳐 성숙되었고 이제 현실에 반영되고 있다. 이제 기능주의를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으로 인정해도 될 법하다. 한 세기의 철학은 다음 세기에는 상식이 된다. 앞으로 기능주의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공유하는 미적 관점으로 성숙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디자이너들은 바우하우스에 진 빚을 갚은 셈이다. 빚을 갚으면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질 것이다. 21세기는 어떤 공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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