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비롯된 색과 사물, 사유를 예술이라는 형태로 재현하는 미카엘 카이유는 낭만으로 가득 찬 작품 세계를 끊임없이 구현해 나가고 있다.
예술가가 짊어져야 할 운명을 굳이 정의해본다면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올리는 것이 아닐까. 마치 하늘에 닿고 싶었던 욕망을 드높은 탑으로 표현했던 그 옛날의 의지처럼 제 손으로 만든 창조에 대한 갈망을 끊임없이 표출해야 하는 것이다.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스케치하고 낙서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아이. 자신의 상상력을 머릿속에만 가둬둘 수 없었던 미카엘 카이유 Michaël Cailloux라는 소년은 그렇게 자연스레 예술가로의 궤도에 올랐다. 1998년 그는 파리의 응용예술학교 에콜 뒤페레 École Duperré School of Design에 진학한다. 학교에 다닐 당시 그는 사람들에게 해충으로 취급 받던 파리 The Fly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남들에게는 질병을 전파하는 더러운 벌레로 취급되었던 곤충이었을지 몰라도 카이유에게는 삶과 죽음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두 영역의 경계를 오가는 유일한 존재였다. 작은 곤충이 지닌 자유로움이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종종 파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 또한 이에 대한 연장선일 것이다. 흉측하고 시커멓던 파리에게 으레 나비가 표현되듯 자연에서 파생된 강렬한 색과 선을 부여해 그의 작품 속을 날아다니게 만든 것이다. 사실 그가 파리에 대한 일련의 동경을 가지게 된 것은 만물을 포용하는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이 지닌 특유의 역동적인 면모를 작품으로 승화하고자 했는데, 화려한 꽃과 줄기, 온통 화려한 것의 근원이 곧 자연이라 믿었던 그는 장식주의적 화풍인 아르누보 스타일을 차용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파노라마식으로 제작된 월 커버링 사계 Les 4 Saisons와 라 템스 데 아무르 Le Temps des Amours, 히말라야 등 그가 자연을 표현한 것을 본 이들이 작품을 두고 클래식과 장식주의의 결합이라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9년 학교를 졸업한 그는 회사 아틀리에 LZC를 설립한다. 또한 이 시기부터 그는 브랜드와의 협업에도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베르나르도와 함께 선보인 페에리 Feerie 컬렉션이나 디올과 콜라보레이션한 카넷 디올 Carnet Dior처럼 파인아트를 넘어 도자나 북커버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며 경계를 넓혔다. 도전은 계속됐다. 2009년 세공과 가공법에 관심을 보인 카이유는 화학적인 부식 작용을 통한 가공법인 에칭 Etching에 특히 매료됐다. 풍요의 여신을 형상화한 오리진 Origin이나 루어 리브레 등은 구리 같은 금속을 의도적으로 부식시킴으로써 나오는 드라마틱한 변색이 특징인 작품이다. 이처럼 스스로의 삶을 변주시켜 나가는 그는 자연의 법칙을 자유로이 오가는 파리처럼 예술가로서 주어지는 무한한 자유에 대한 낭만을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