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the World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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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절하기 일보 직전의 팬덤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 그룹 ‘빅뱅’을, 그리고 탑을 잠시 잊자. 싱가포르 아트 위크 중 3박4일간 <메종>은 현대미술과 디자인 가구, 나아가 예술을 사랑하는 탑 그리고 최승현과 함께했다.

지난 1월 17일부터 25일까지 싱가포르에서는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국제적인 아트 페어 ‘싱가포르 아트 위크’가 열렸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컨벤션 센터를 중심으로 싱가포르 전역에 포진한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국내 갤러리들도 참여할 만큼 아시아의 현대미술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행사로 급부상했다. 탑이 이곳을 방문한 것도 영국의 사치 Saatchi 갤러리와 푸르덴셜 생명, 패러럴 미디어 그룹이 주관하고 아시아의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하는 시상식인 ‘제2회 푸르덴셜 아이 어워즈’에서 비주얼 컬처 어워드 부문을 수상하기 위해서였다.

↑ 싱가포르에서의 일정 중 하나였던 아트 스테이지 참관. 부스를 꼼꼼히 돌아보며 마음에 드는 작품을 체크하고 감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부스에서 만난 그림 속 여인이 반대편으로 걸어가고 있는 탑과 오버랩된다.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에서 만난 ‘빅뱅’ 같은 작품. 태국 작가 아린 렁장의 ‘골드 티어 드롭’ 앞에 선 탑. 아래 수잔 빅터의 임프린트 전시가 진행 중인 STPI 갤러리. 탑은 디렉터 에미 이우로부터 앨범 작업에 필요한 다양한 프린트 기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디자인과 인테리어 관계자들의 입소문 속에서 탑은 80여 점의 의자를 수집한 컬렉터였고 디자인 가구로 무장한 집의 세대주였다. 전문가의 식견이 감지되는 디자인 가구를 뮤직비디오에 등장시키기도 할 만큼 깊은 이해와 애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스무 살 초반부터 디자인 가구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초창기에는 마크 뉴슨이나 론 아라드의 디자인처럼 유기적인 옷을 입은 모던한 디자인을 좋아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샬롯 페리앙이나 장 푸르베, 이코 파라시, 지오 폰티처럼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빈티지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빠르게 바뀌는 유행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작품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탑에게 미술과 디자인 가구는 영감을 주는 대상이자 유일한 스트레스 탈출구였다. 예술은 인간의 감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해준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 같다. 탑에게 미술과 디자인은 삶과 음악을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대화를 나누다가도 가구와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강렬하게 빛나는 눈빛에서 그 열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만약 1백원을 벌면 90원은 가구와 미술 작품을 구입해요. 어느 순간 일과 생활에 설렘이 없어진 후 시작된 습관인데 저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들어가 있을 만큼 삶을 이끌어가는 절실한 수단이기 때문이에요.”

1 신비로운 영상 작품 앞에서 사뭇 진지해진 모습. 2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와 프리랜스 큐레이터 이영주 씨가 동행한 싱가포르 여정. 3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신중히 고민하고 있다. 4 STPI 갤러리의 소장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5 최우람 작가의 키네틱 아트 작품 ‘쿠스토스 카붐’. 6 아트앤사이언스 뮤지엄에 전시된 코헤이 나와의 사슴 시리즈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탑은 좋아하는 가구나 작품은 상전처럼 모시기보다는 생활하며 직접 써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집을 훑고 싶다는 욕망이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로 멋진 집이라는 소문의 실체가 궁금했던 건 나 역시 마찬가지. 집 인테리어에 관해 묻자, “아끼는 의자 중 하나는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1970년대 빈티지 프로스트 체어예요. 색색의 원단을 입힌 의자가 아니라 직접 채색한 의자를 가지고 있는데 하얀색으로 비워져 있는 벽 앞에 두니 하나가 작품 같은 공간이 만들어졌어요. 주방에는 장 프루베 테이블 위에 무라노 샹들리에를 달았어요. 주변에는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가 만들어준 조각 작품과 직접 와서 벽에 그려준 그림 작품들도 있고요.” 그는 집을 꾸미는 자신만의 노하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가죽 소파 주변에는 철, 돌, 나무, 패브릭 소재가 섞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재에는 저마다의 기운이 있는데 이런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공간이 좋은 기운으로 채워지는 것 같거든요.” 그동안 모아온 가구와 미술품들은 탑의 디렉팅 아래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며 새로운 공간 레이아웃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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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of the World Part.2`에서 그와의 두번째 만남을 확인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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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김보성(플레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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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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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와 야콥은 프리츠 한센의 가구로 집 안을 채워 덴마크 디자인 애호가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곤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 가구는 전설적인 디자인 아이콘이 아닌 가족의 생활을 안락하게 해주는 일상적인 물건이다.

↑ 부엌에 둔 어린이 테이블은 나나 디첼 Nanna Ditzel이 디자인한 것으로 바바라의 딸들이 성장한 이후에도 계속 쓰고 있다.

현관과 거실, 식당 어디에나 프리츠 한센의 의자들이 놓여 있다. 이곳은 평범한 수집가의 집일까, 아니면 덴마크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의 자택일까? “두 가지 모두 맞습니다.” 15년 전, 코펜하겐에서 R7B 디자인 스튜디오를 창립하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바바라 벤딕스-벡커 Babara Bendix-Becker와 그녀의 남편 야콥 홀름 Jacob Holm이 웃으며 말했다. “야콥은 청소년 때부터 어디를 가든 자기 의자를 가지고 다녔어요. 말하자면 의자는 그가 일했던 파리와 뉴욕을 함께 여행한 셈이죠.” 현재 11살과 13살인 두 딸 셀마, 릴리-살로메와 함께 덴마크로 돌아온 부부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코펜하겐 근교 주택가에 정착했다.
“우리 집은 1906년에 영국인이 지은 집입니다. 그래서 바닷가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음에도 런던 근교에 사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죠. 지하의 부엌이 정원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더욱 싱그러워요.” 바바라가 설명한다. 바바라는 프리츠 한센 제품을 유독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실내 공간을 꾸미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실내를 장식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각의 물건이 그 기능을 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저는 일하는 공간, 오후 한나절을 편안하게 보내는 공간, 간식을 먹는 공간을 구분합니다. 우리 집은 갤러리가 아니니까요.” 그들이 기본으로 삼았던 또 하나의 원칙은 계단과 난간을 거쳐 벽에서 바닥까지 이르는 모든 공간을 흰색으로 칠하는 것이었다. “이 집에 있는 아름답고 커다란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기를 원했어요. 집 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흰색의 장점은 백지에 무언가를 기록하듯 매일 우리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죠.”

현관에 있는 펜던트 조명 ‘아티초크 Artichoke’는 폴 헤닝센 Poul Henningsen이 디자인한 것으로 루이스 폴센 제품. 소파는 폴 키에르홀름 Poul Kjaerholm이 디자인한 것으로 프리츠 한센 제품이며, 러그는 모로코산. ‘중국 의자’는 한스 베그너가 디자인한 것으로 프리츠 한센 제품. 의자 위에 있는 작은 그림은 빌헬름 프레디 Wilhelm Freddie의 작품.

집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에 각각의 공간에 벽난로나 난로를 설치했다. 거실에는 흰색 세라믹으로 만든 벽난로가 눈길을 끈다. 안쪽에 자리한 에그 의자는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것으로 프리츠 한센 제품이며 탁자는 데 파도바 De Padova 제품이다. 스탠드 조명 델 Dell은 프리츠 한센 제품이다.

소파는 비코 마지스트레티 Vico Magistretti가 디자인한 것으로 데 파도바 제품. 탁자용으로 사용하는 넓고 긴 의자는 프리츠 한센 제품이다. 분홍색 ‘스완 Swan’ 의자는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것으로 프리츠 한센 제품. 러그는 모로코산이며 사이드 테이블과 스웨덴식 탁자는 빈티지 제품. 램프는 세르주 무이유 Serge Mouille가 제작한 것이며, 그림은 다니엘 레르곤 Daniel Lergon의 작품이다.

서재에 있는 책상은 토드 브래처 Todd Bracher가 디자인한 것으로 프리츠 한센 제품이며 책상 옆에 있는 의자들은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프리츠 한센 제품이다. 사다리 ‘오라주 Orage’는 세실리에 만즈 Cecilie Manz가 디자인했다.

에디터 수잔나 오카나 Susana Ocana│ 아델린느 쉬아르 Adeline Suard│포토그래퍼 롤 칸달레스 Raul Cand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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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방, 여자의 방

남자의 방, 여자의 방

남자의 방, 여자의 방

서로 다른 두 남녀는 각자의 영역을 이해하고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될 때 건강한 사이를 지속할 수 있다. 부부가 서로를 배려하도록 공간을 설계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리의 전통적인 주거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향에 따라 동쪽에는 상 上의 의미로 남자의 공간인 사랑채, 서쪽에는 하 下의 의미로 여자의 공간인 안채를 배치하는 등 남녀의 위계가 명확했으며 각자만의 사적인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과거 우리의 전통에서는 존재했던 남자의 방과 여자의 방은 사라지고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침실 하나로 끝나고 만다. 굳이 찾아본다면 남자를 위한 대표적인 방으로는 서재가 해당된다. 서재는 큰 서고에 많은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공간으로 떠올리기 쉽지만, 책만 보는 공간이 아닌 남자에게 많은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은밀하고 사적인 최소한의 장소일 수 있기에 그 크기와 무관하겠다. 중국의 거대한 자금성에는 왕이 일상생활을 하는 양심전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안에 삼희당이라는 작은 서재가 있다. 이 서재의 본래 이름은 ‘온실’이며 청나라 건륭 황제의 독서방이었다. 희대의 진품 보물 세 가지인 ‘왕희지’, ‘왕헌지’, ‘왕순’이 쓴 붓글씨 서적 3권을 보관하고 있어 삼희당이 되었다 한다. 이곳은 4㎡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건륭 황제는 이 극도로 작은 방 안에 들어가 호중천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여자의 방을 살펴보자면, 18세기 프랑스에는 여성을 위한 작은 사랑방이 있었다. 이 방을 ‘부두아르 Boudoir’라고 부르는데, 로코코 시대의 상류층 여성이 지내던 침실보다 더 깊은 장소에 위치해 정부와 사랑을 나누는 밀실이자 애욕의 장소이기도 했고 화장을 하거나 명상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귀족들의 풍속과 애정 장면을 즐겨 그렸던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가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을 그린 ‘마담 드 퐁파두르 Madame de Pompadour’ 그림을 보면 부두아르가 얼마나 작은 공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2012년에 ‘거리의 집’이란 작은 주택을 설계할 때 남자와 여자, 다시 말해 부부 사이에 늘 변화가 가능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 주택에서는 각각 남자의 방과 여자의 방을 분리했지만 이 두 방 사이의 적당한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인식의 거리를 스스로가 새롭게 정의할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내부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통로로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주칠 수밖에 없게 한다든지, 외부에서는 수목을 심어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 계절에 따라 변하는 심리적 거리감을 통해 서로에게 일상에서의 배려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남자의 방은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계단을 통해 2층 높이에 두었고 여자의 방은 현관에서 거실과 주방, 욕실, 아이 방을 지나도록 계획했다. 대지 높이 차에 맞게 배치하니 그 모습이 우리의 전통과 같이 남자는 하늘과 마주하게 되었고 여자는 땅과 가깝게 되었다. 건축적으로 접근한 상하의 구조가 그 옛날처럼 위계 질서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남녀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존중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부부는 이 집에 입주한 뒤 각자의 사적 영역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마주하는 동시에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늘 긴장하며 배려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공간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데에 늘 동의하는 나로서는 그들이 새로운 공간을 통해 거리감의 긍정적인 면을 늘 마주하고 살았으면 한다.

2013년에는 40대 중반에 헤어진 후 20년 만에 재결합한 부부의 의뢰로 ‘5×5 주택’을 설계했다. 두 개의 동 중 주택 하나의 바닥 면적이 25㎡, 즉 8평으로 가로와 세로가 각각 5m로 구성된 두 동이 연결되어 있다. 이는 위에 소개한 거리의 집보다 더 짧은 길이인데, 20년 만에 재회함으로써 서먹했던 부부에게 각자의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남자와 여자를 위한 최소의 집을 각각 지은 후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한 동의 1층에는 여성의 공간인 주방을, 2층에는 남자의 방을 배치했고 다른 동에는 1층에 남성 공간인 거실, 2층에는 여자의 방을 놓아 상대의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공간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설계안을 보여주니 여자는 만족스러워했고 남자는 떨어져 있는 각 방에 난색을 표명했다. 부부가 서로 각방을 쓰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한 방을 사용하고 다른 방은 손님방이나 취미를 위한 작업실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나서야 남자 역시 흐뭇해했다. 하지만 이는 아쉽게 계획안으로 남은 상태다.

남자의 방과 여자의 방은 우리 모두가 내면에 숨겨놓은 꿈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부부라 하더라도 각자의 사적 영역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태생부터가 다른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는 이 두 개의 분리된 공간은 ‘화성’ 같은 방, ‘금성’ 같은 방이라는 이름이 훨씬 더 어울릴 수도 있다.

*집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생각을 최고은 기자(deneb@mckorea.com) 앞으로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최소의 집`에 대한 개념을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정영한(스튜디오 아키홀릭) | 에디터 최고은 | 사진 스튜디오 아키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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