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이란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집을 만났다. 하얗고 깔끔하지만 안주인의 감각과 심미안으로 고른 가구와 작품으로 채운 네 식구의 집에서 경쾌한 반전을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 가구와 라나 베굼의 작품이 어우러진 거실. 메인 가구는 무채색으로 고르고 빨간색 암체어로 포인트를 주었다.
요즘 인테리어를 보면 흰색을 주로 사용한 깔끔한 스타일이 단연 인기인 듯하다. 늦가을에 찾은 잠원동의 빌라 역시 그런 트렌드를 반영한 네 식구의 집이었다. 부부와 아들, 딸이 함께 사는 집은 건축적인 구조가 돋보였다. 독특한 점은 움푹 파인 천장 구조인데 공사를 하면서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구조라는 사실이 이채롭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위해 천장을 뜯어내고 나니 이런 특이한 구조를 보게 됐죠. 이 건물의 모든 천장 구조가 다 이런 것은 아니었어요. 어떤 연유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집의 층만 이렇게 독특한 천장 구조를 갖고 있더라고요.” 인테리어 스타일링과 공사를 진행한 트루베 스튜디오의 조규진 실장은 이 집은 천장만으로도 특별해졌다며 꽤 재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바닥과 벽, 천장이 모두 흰색이라 그냥 하얀 공간이 될 수도 있었지만 리듬감 있는 천장 구조 때문에 집의 분위기가 예술적으로 변했다. 집주인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위해 많은 업체에 연락을 했고 그중에서도 서로 취향이 잘 맞고 미니멀한 스타일에 강점을 갖고 있는 조규진 실장을 만나 공사를 맡기게 됐다고 한다. 디자이너와 고객의 관계를 넘어서 서로의 취향과 안목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이번 공사를 통해 얻은 기쁨 중 하나였다고. 마음이 잘 통했던 디자이너와 집주인의 합은 공간에 여실히 드러난다.
아티스틱한 작품으로 꾸민 클래식한 분위기의 딸 아이 방. 여성적이면서도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김희원 작가의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가 방문객을 반기는 현관을 지나면 넓은 거실을 마주할 수 있다. 흰색 공간에 포인트처럼 놓인 가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차갑지 않고 산뜻했다. 거실과 다이닝 공간은 가족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라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움푹하게 들어간 구조의 거실 천장에는 가족들의 별자리 모양대로 간접조명을 설치해 의미를 담았고 벽에는 작가 라나 베굼 Rana Begum의 작품을 걸었다. “라나 베굼의 작품은 농담으로 우리 집에 와보라고 할 만큼 마음에 들어요. 조규진 실장님이 추천했는데 보자마자 집에 너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색감도 마음에 들고 거실 벽을 너무 크게 차지하지도 않는 작품이라 마음에 꼭 들었어요.” 넓은 거실과 다이닝 공간은 B&B 이탈리아의 가구를 위주로 선택해 간결하면서 세련된 스타일이다. 블랙과 화이트 소파와 암체어가 놓인 거실에는 레드 컬러 암체어로 포인트를 주었고 거실과 맞닿아 있는 다이닝 공간에는 나무 식탁과 블랙 의자를 매치해 아늑함을 더했다. “다이닝 공간도 구조가 크게 달라진 곳 중 하나지요. 저희 식구에게 아주 넓은 주방은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주방 공간을 작게 줄이는 대신 반대편에 드레스룸을 만들었어요. 각 방에 붙박이장이 있기는 하지만 계절 옷이라든지 액세서리류를 보관할 드레스룸도 필요했어요. 또 손님들이 왔을 때 소파나 의자에 옷이나 가방을 두는 것이 불편해 보여서 따로 손님용 옷을 보관할 수 있는 간이 옷장도 다이닝 공간 옆에 마련했습니다. 대부분의 수납공간은 빌트인 형식으로 만들어 깔끔하죠.” 주방과 드레스룸의 문은 모두 흰색 슬라이딩 도어 형식이라 문을 닫아두면 벽처럼 깔끔하게 연출할 수 있다. 집주인은 평소에 눈여겨봤던 생활 속의 소소한 불편함을 이번 공사를 통해 현실적으로 해결했다.
1 벽에 비치는 빛의 느낌이 몽환적인 cmyk의 조명을 둔 딸아이의 방. 2 데드 스페이스를 활용해 수납과 디스플레이를 해결한 복도.
집 안을 가득 채우는 색깔은 흰색이지만 두 아이의 방에는 유독 컬러가 눈에 띈다. 프로골퍼인 아들 방은 블루와 그린 계열로,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딸아이의 방은 클래식한 디자인과 함께 붉은 기운을 더했다. 뱅앤올룹슨의 A9 스탠드 스피커와 바닥에 깐 럭스툴의 ‘로겐지’ 러그, 침대 위에 블랭킷 등 블루 그러데이션으로 맞춘 아들 방 역시 독특한 천장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평범한 방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TV를 보면서 쉴 수 있는 데이베드와 침대, 책상만을 둔 단출한 방이지만 색깔로 포인트를 주어 밋밋하지 않다.
6인용 식탁으로 구성한 다이닝 공간은 드레스룸과 주방 사이에 위치한다. 드레스룸과 주방은 슬라이딩 문을 닫아두면 벽처럼 보인다.
반면 딸아이의 방은 샹들리에와 곡선의 흰색 이케아 소파 등을 두어 여성스럽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딸은 엄마처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작가의 작품도 방 안에 과감하게 적용했다. 젊은 작가들이 초석을 다지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의 사텔리테관과 오를란디에서 주목받았던 스튜디오 드니스 패런 Studio Dennis Parren의 CMYK 조명을 비롯해 YOY의 캔버스 암체어 등 작가의 작품이 어우러진 딸아이의 방은 아들의 방보다는 확실히 따뜻하고 에너지가 느껴진다.
푸른빛이 감도는 아들의 방. 바닥에 깐 러그부터 대부분의 색깔을 파란색 계열로 맞췄다.
데스 스페이스를 활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딸아이의 방과 부부 침실 쪽 사이의 복도 공간에는 수납장을 짜 넣고 디자인 책을 쌓아서 디스플레이했다. 벽 마감 역시 여러 겹으로 벽을 칠한 듯한 질감이 멋스러운 스타코 소재로 마감해 가까이에서 보면 진주처럼 은은한 빛을 반사해 오묘한 느낌이다. 깔끔한 안주인의 성격에 맞게 기본 구조와 컬러는 흰색으로 마감하고 여기에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해서 고른 디자인 가구와 작가의 아트워크가 어우러진 집. 집 안 어디에서든 눈길을 돌리면 가족들이 오랜 시간 애정을 갖고 지켜볼 작품과 미니멀한 스타일의 실내 분위기를 한껏 돋워줄 이탈리아 가구들을 볼 수 있다. 유행을 좇지 않고 소신과 자신의 안목을 믿고 도전해 완성한 개성 있는 집의 사례다.
독특한 천장 구조를 활용해 네 식구의 별자리 모양대로 간접조명을 설치한 거실 천장.
김희원 작가의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가 놓인 현관. 복도 쪽 벽에는 줄리언 오피의 그림을 걸어 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