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0도씨의 도예가 심진태는 작업실에서 늘 음악과 함께한다. 음악을 들으며 빚은 흙은 단단하되 고운 그릇으로 재탄생한다.
채광이 좋은1250도씨의 작업실 겸 쇼룸. 소박한 가구와 도자 그릇이 어우러져 포근한 느낌을 준다.
1 도예가 심진태가 가장 좋아하는 브라운 사의 오디오. 2 조각을 하듯 흙을 깎아내 굽는 것이 1250도씨의 시그니처 디자인이다. 3 창문 한쪽에 좋아하는 오디오를 진열해두고 음악을 듣는 공간으로 꾸몄다. 4 자신만의 작업실과 쇼룸을 갖게 된 도예가 심진태. 5 파란색을 좋아하는 그는 바다처럼 파랗고 큰 그릇과 하얀 그릇을 세팅해두었다.
도예가 심진태가 운영하는 1250도씨의 작업실은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있다. 주변은 조용했고 풀과 나무가 우거진 이면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헤이리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처럼 모던한 무채색 건물이 나왔다. 이곳 2층에서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그는 오랜 시간 장인어른과 함께 일을 했고, 지금은 독립해서 어엿하게 브랜드를 가꾸고 있는 중이다. “대학에서 가구를 전공했고 졸업해서는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했죠. 일하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게 맞는 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장인어른이신 도예가 박종식 선생님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됐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정말 다른 일이었지만 재미있고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장인어른과 긴 시간을 같은 작업장에서 보내고 나니 그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도자 벽화처럼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하는 장인어른과 달리 생활 도자에 초점을 맞춘 작업 방향 때문이기도 했다. 헤이리 주변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나온 지금 공간을 보고 계약했다. “원래 카페로 사용할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기본 마감 등이나 설비가 잘돼 있더라고요. 쇼룸처럼 그릇을 직접 만져보고 들어볼 수 있도록 한쪽 창문 쪽으로 전시를 했고 흙을 빚고 물레질할 수 있는 작업 공간도 마련했죠.” 1250도씨의 그릇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개성이 있다. 하고 싶은 것도,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은 도예가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나듯 컬러도 모양도 독특하다. 깨질 것처럼 얇고 조심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다. 특히 흙을 조각하듯 깎아내 구운 그릇은 1250도씨의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오브제처럼 테이블에 두기에도 존재감이 확실했다. 그의 작업실에서는 그릇만큼이나 음악과 관련한 아이템이 눈길을 끈다. 브라운 사의 빈티지 오디오를 비롯해 CD와 LP가 가득하고 오디오가 놓인 주변에는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오디오와 음악을 좋아해서 그동안 모은 것들을 작업실로 가져올 수 있었어요. 집에 두느라 혼났어요. 작업실에 오면 오디오부터 켜요. 해외 옥션 등을 통해 구입한 거라 하나하나 애착이 가요. 좋은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면 집중도 잘되고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음악을 켜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커피 한잔을 마실 때면 일도 무엇도 잊을 만큼 너무 편안하고 좋다며 도예가는 고백했다. 1250도씨는 도자기가 구워질 때 필요한 가마의 온도다. 가장 중요한 온도이자 꼭 도달해야 하는 온도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딱 맞는 길을 찾은 심진태 도예가가 느끼는 지금 인생의 온도이기도 할 것이다. 유난히 무더웠던 이번 여름, 작업실에는 에어컨을 두지 않았다. 그에겐 일을 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과 좋아하는 음악뿐이면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