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색으로 벽에 온통 페인트를 칠했다. 그리고 컬러풀한 바탕 안에 디자이너인 남편의 작품과 우리가 아끼는 물건들을 툭툭 놓았다. 컬러가 지배하는 우리의 신혼집은 마치 그림 같았다.
남편은 우리 집을 보고 ‘그리스 산토리니’ 같다고 했다. 나는 푸른색을 배경으로 한 정물화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짙은 프루시안 블루, 청보라에 가까운 하늘색, 아주 밝은 회색 세 가지 색 페인트를 실내에 적극 사용해서도 그렇지만 의도치 않게 예산 문제로 목공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시멘트로만 벽을 마감해 울퉁불퉁한 질감이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조금 불편한 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우리 부부는 3층 규모의 빌라 전체를 신혼집으로 얻은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각 층을 오갈 때마다 외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핸디캡마저도 재미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한 층당 9평 정도의 면적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원래 각 층에 한 가구씩 살았던 오래된 빌라였기에 개조가 필수였다. 지인인 집주인은 세입자인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집을 고치도록 허락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지하는 남편의 작업실, 1층은 주방과 거실, 2층은 드레스룸과 침실로 구조를 변경하고 공사를 진행했다. 예산은 4천만원. 빌라 전체를 수리하기에는 빠듯한 금액으로 철거, 섀시 교체, 페인트 도장, 전기 공사, 각 층마다 있는 욕실을 수리하고 주방을 새로 시공했다. 또 1, 2층의 바닥에는 데코 타일을 깔았다. 꽤 많은 부분을 수정했지만 최소한의 금액으로 진행된 탓에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챙겨야 하는 디테일한 부분은 우리 몫이었다. 집을 고치면 누구나 겪는 마음고생을 처음으로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좁은 집에 일반적으로 권하는 흰색을 추천했지만 여느 집과 달라 보이고 싶었던 우리는 컬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모노톤의 인테리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이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색이 대략 천만 가지라는데, 자연이 준 이런 특혜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디자인 전공자인 나와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남편은 이런 점에서 의견이 잘 맞았다. 컬러를 한껏 머금은 벽면은 채광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달라 보인다. 어느 때에는 더없이 화사해졌다가 어떤 때에는 한껏 차분해지는데 그 작은 공간이 아주 변화무쌍하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컬러를 어려워하지 말 것!
1 색과 소재의 대비
하늘색 벽과 갈색 유리 조명, 시어 커튼. 우리는 색과 소재에서 오는 대비감을 좋아한다. 대리석 오브제는 남편의 작품, 현무암 문진과 북엔드는 서정화 작가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2 밖이면서 안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엄밀히 말하면 야외이지만 실내처럼 벽시계를 걸고 선인장 화분을 두었더니 온실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3 블루 그리고 블루
침실로 이어지는 공간은 두 가지의 블루 컬러가 극명하게 만나는 곳이다. 색이 점차 어두워지도록 배색한 것인데, 덕분에 공간감이 한층 깊게 느껴진다.
4 문 없이도 다른 공간
반지하에 마련된 서재. 바깥은 짙은 파랑으로 방 안은 밝은 회색으로 칠했더니 문이 없어도 공간이 나뉘어 보이는 효과가 생겼다.
5 파란 대문 앞에서
남편인 김진식 작가와 나. 푸른색의 공간은 검은색 대문을 열면서부터 시작된다.
6 물건의 재구성
다이닝 공간 겸 거실. 하늘색 배경을 중심으로 흰색 커튼과 이케아에서 산 원형 테이블, 카르텔의 루이 고스트 체어를 두었다. 커튼을 제외한 모든 물건들은 서로가 결혼 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이 공간에 재조합해놓았다.
7 에메랄드색 주방
주방에는 파랑과 초록의 중간색인 에메랄드 컬러를 메인으로 사용했다. 단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는
이유로 골랐는데, 덕분에 주방에 자주 오고 싶어지는 효과가 생겼다.
8 바닷속 침실
침실에는 어두운 색을 사용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짙은 파란색 벽으로 칠한 침실에는 붉은색 산호가 그려진 침구를 선택해 대비를 주면서도 ‘바다’라는 테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연출했다. 침구는 모두 자라홈, 벽에 걸어놓은 오로라 그림은 강연지 작가의 작품, 플로어 조명은 아르떼미데 제품으로 두오모에서 구입했다.
9 어둠에서 밝음으로
서재 맞은편에 있는 작업 공간. 짙은 파랑으로 칠한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시선이 열리도록 했다.
10 좁고 긴 욕실
2층 욕실은 폭이 좁아서 일자로 길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확장했다. 긴 타원형의 욕실 거울은 남편이 디자인한 것. 벽에 걸어놓은 오래된 그림은 신혼여행에 갔을 때 취리히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