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의 김종유, 김현진 부부의 집은 그들에겐 새로운 포트폴리오이자 단독주택을 짓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부러움이 될 공간이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변의 다른 집과 달리 미색으로 마감한 깨끗하고 잘 지어진 외관을 보며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의 김종유, 김현진 부부의 집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유난히 맑고 간만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던 날이었기에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블랙 컬러의 벽이 더욱 검게 느껴졌다. 이 집은 원래 30년 동안 한 가족이 살았는데 김종유, 김현진 부부는 집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 외관 마감재와 내장재를 전부 새롭게 보강하거나 시공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유수의 기업들과 협업하거나 호텔, 오피스 등 주로 상업 공간을 설계해온 그들이 직접 살 집을 설계하는 경험은 어땠을까?
“사실 건물을 지어서 아래층은 사무실, 위층은 집으로 활용하고 싶었어요. 이 집은 2층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면적이 좁았죠. 1층은 16~17평 정도 되고, 2층은 11평이니까요. 그래서 사무실은 포기했고, 대신 1층에 거실과 부엌을, 2층에는 침실과 드레스룸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번 집의 설계는 제가 온전히 다 맡았죠.” 김현진 씨는 바로 집 앞에 위치한 전 미군기지가 공원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며 아파트 구조의 비효율적인 부분이 늘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거실과 안방이 지나치게 넓은 대신 부엌이나 다른 방들은 좁은 경우가 많고, 생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부엌의 다용도실이 작아서 대신 베란다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쌓이기 십상이라는 점도 아쉽다고 했다. “수납이 1순위였어요. 두루마리 휴지부터 청소기까지 꼭 필요하지만 보통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은 것들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요. 둘 다 물건이 밖에 나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냉장고부터 모든 가전도 다 빌트인으로 넣었죠. 2층은 넓진 않지만 침실로만 이용하고 있어요. 침대 뒤로 옷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테라스도 살려서 이제 본격적으로 꾸며볼 예정이에요.”
1층을 압도하는 블랙 대리석처럼 보이는 벽면은 안티스타코라는 소재로 마감한 것이다. 신혼 때 집들이 선물은 무조건 블랙 컬러야 한다고 요구했을 정도로 블랙을 좋아하는 부부는 처음에는 밝은 컬러도 고민했지만 강렬한 컬러로 집의 중심을 잡고 싶었다고 전했다. 약간의 구조 변경도 진행했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이 보이지 않게 벽을 세워서 방향을 살짝 틀었고 중심에 있던 계단의 위치도 옆으로 옮겨 1층 화장실도 넓어졌다. “남편이 워낙 가구나 조명을 좋아해 하나씩 사서 모으는 바람에 사무실이 창고처럼 변해가고 있어요(웃음). 집에 있는 가구는 대부분 추억이 있거나 전에 사용하던 것들이에요. 사실 거실 가구도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 TV장은 USM 할러 시스템으로 바꾸고 싶어요.”
거실 벽에 시공한 책장에는 부부의 공통 관심사인 각종 디자인 서적과 자주 놀러 간다는 일본에 관한 책으로 가득했다. 야근이 많아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부부는 시간이 날 때면 TV 대신 음악을 듣고, 베르너 팬톤의 흔들의자에 앉아 책도 보고 지인들을 초대해 식탁에 앉아 와인도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고 전했다. 절대적인 시간 측면에서 집에 머무는 시간은 적을 수 있겠지만 집에 머물 때만큼은 온전히 그들을 뒷받침할 공간을 만들었다. 김현진씨는 두 가지 꿈이 있다고 전했다. 하나는 본인이 설계한 집에서 살아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정말 편하고 효율적인 아파트 구조를 설계해보는 것이다. 한 가지 꿈은 이뤄졌다. 이제 남은 또 다른 꿈을 향해 나아갈 그녀를 기꺼이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