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갤럭시’의 브랜드 철학인 장애와 한계를 두지 말라는 의미의 두 문장 ‘불가능을 가능케하라(Do What You Can’t)’와 ‘한계를 극복하라(Defy Barriers)’가 투영된 이영희 부사장의 복층 아파트. 집이 가진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목격하게 되는 공간으로 초대한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집은 세계 안의 우리들의 구석’이라고 했다. 집이 ‘한 사람의 세계이자 하나의 우주’라는 의미다. 그는 주거 공간으로써의 집을 삶의 근거지라는 기능주의적 측면에서만 보지 않는다.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그의 집과 연결지어 떠올릴 때의 ‘이미지’가 갖는 의미를 미리 꿰뚫어본 셈이다.
그렇다면 세계 1위의 전자회사, 스마트폰, 5G, AI, IoT, 디지털 디바이스, 테크놀로지 같은 용어를 집과 연관 지어보면 어떤 이미지가 그려질까. 첨단 기술에 의해 완벽하면서도 쾌적하게 제어되는 집을 떠올리기 쉽다. 누군가는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사는 집을 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이끌고 있는 최고마케팅책임자(CMO, Chief Marketing Officer)인 이영희 부사장의 새집은 이런 기대를 가볍게 배신한다. 신도시의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맨 위에 위치한 복층 아파트의 1층은 반짝이는 거실 조명과 호수를 향한 창가 쪽에 원래는 없던 메자닌 공간을 설치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장식 요소가 적다. 블랙&화이트의 모던한 색 조합은 얼핏 단조로울 정도로 심플하다. 이영희 부사장의 세계가 이런 것이라면 실제로 모든 음을 소거한 듯 차분하고 단정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가장 먼저 꺼내야 할 질문은 이렇다. 이 집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작더라도 테라스가 있는 집에 살고 싶었어요. 워낙 출장이 잦아서 공중(비행기 안)에 있는 시간도 많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지만 그럴수록 맨발로 걸어 나갈 수 있는 테라스를 갖고 싶어지더군요. 우연히 이곳 호수공원 주위를 걷다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얘기를 듣고는 모델하우스를 보지도 않고 결정했어요. 전망이 좋고 테라스가 있는 집을 찾았으니까요.”
지금까지는 도곡동의 주상복합아파트에서 15년을 살았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런 그에게 테라스는 단순히 맨발을 내딛고 설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 이상의 어떤 것을 의미했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다른 세계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인생의 시기에 따라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인가. “젊어서는 크고 좋은 집, 좋은 동네 같은 기준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얼마나 좋은 서비스와 시설을 갖췄는지도 보았고요. 그런데 너무 안정적이다 보니 스스로가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한 것 같아서 변화를 주고 싶었죠. 여기 올 때는 얼마나 자연과 가까이 있고 편안한지, 전망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기분 좋은 집인가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해외 출장이 많아 집에 머무르는 물리적 시간은 적지만, 잠시 있더라도 나한테 딱 맞는 필요한 공간으로 실용적으로 설계되어있는지, 단순히 예쁘고 보기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 패턴을 잘 반영하고 도와주는 구조인지를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이영희 부사장은 2007년부터 삼성전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다국적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에서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로 업계에 이름을 날렸다. 당연히 전자회사로의 이직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2010년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갤럭시S’를 출시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글로벌 1위로 자리 잡는 신화를 일궈내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3년 경제지 <포브스>는 이영희 부사장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MO 2위로 꼽기도 했다. 2017년 5월부터는 무선 사업부 마케팅 팀장에 이어 글로벌 마케팅 센터장을 맡게 되면서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냉장고, 세탁기, 공기청정기 등 가전 전반에 이르기까지 삼성전자의 글로벌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다국적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해외 여러 문화권을 넘나들며 일을 한 그다. 다양한 주거 환경에서의 체험은 집에 대한 지금의 취향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30년 전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미국 디자인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파리에서 근무할 때는 작지만 의미 있는 디테일을 잘 구현해내는 프랑스의 디자인에, 런던에서 근무할 때는 다양한 컨셉트를 과감하게 받아들이며 믹스&매치를 하는 영국적 스타일에서 취향의 상당 부분을 배웠고요. 이전에 살던 집은 상하이나 홍콩의 집처럼 화려한 편이었어요. 공간 안에도 보라나 빨강, 블루 같은 색을 사용하고 중국 비단에서 볼 수 있는 금색도 많이 들어갔어요. 거기에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의 빈티지 가구를 많이 모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공간 크기를 줄이면서 미니멀하게 살아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공간을 줄이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지만, 마침 새집은 ‘높이’를 이용할 수 있는 복층 아파트라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혼자서 ‘전망대’라고 이름 붙인 메자닌을 만들고 2층도 더 넓게 트는 대신 공간을 내 물건으로 다 채우기보다는 볕이 잘 들고 공기 순환이 잘되는 집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큰 방을 침실로 사용하는데, 오히려 그 방을 드레스룸으로 꾸몄어요. 옷을 수납하고 정리한 방이니 드레스룸이지만 전 그 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요.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집이 일종의 베이스캠프나 다름없지만 자거나 쉬기보다 옷을 바꾸는 등 주변을 정리하고 다음 할 일들을 챙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다이어리도 정리하고 아이디어도 구상하는 나만의 워킹룸이자 크리에이티브룸인 거죠”
보통의 아파트 구조가 갖는 평면의 단조로운 공간은 복층 구조와 메자닌을 통해 리듬감을 갖는다. 큰 방은 널찍하게 침실로 쓰고 작은 방에 충실하게 수납한다는 일반적인 룰을 바꿔서 큰 방을 자신을 위한 라운지 겸 드레스룸으로 꾸미고 작은 방은 온전한 수면을 위한 침실로 바꿨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집에 재미를 더했다. 생활하는 데 최적화도 중요하지만 ‘내 색깔’도 묻어나야 했다. “미니멀한 공간을 지향했지만 너무 지루해져서 내 성격을 다시 드러내보고자 생각했어요. 그래서 2층 계단실에 오렌지 컬러를, 해외에 있어서 가끔 집에 오는 아들이 지내는 방에는 옐로와 블루를 포인트로 사용했어요.”
‘라면 바(Bar)’는 집에 대한 그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이 집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보자는 시도는 서로 기능을 바꾼 작은 침실과 넓은 드레스룸에서 한 번, 라면 바와 밥을 먹지 않는 식탁에서 다시 한 번 구현된다. “식구가 둘인데 주방에 굳이 정형화된 식탁을 놓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먹으면 휠씬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거실에 놓인 식탁은 식탁 본연의 기능 대신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신문과 태블릿을 보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다. 기능을 축소하고 효율을 택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은 주방에 위치한다. 바로 ‘패밀리허브’ 냉장고다. 거실에서 직접 보이지 않는 위치지만 실제로는 1층과 2층 양쪽에서 가장 접근이 용이한 자리에 놓았다. 이 ‘패밀리허브’를 중심으로 이영희 부사장의 집은 100%의 스마트 홈이 구현되는 과정에 있다. “패밀리허브, 스마트 TV,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 등 전부를 스마트폰과 음성으로 컨트롤하고 원격으로 보안 단속을 하는 등 소비자 입장이 돼서 스마트 홈을 구현해보려고 해요. 음악을 듣거나 책이나 TV를 보면서도 청소기와 세탁기, 건조기 등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은 제가 더 많은 시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사람이 가장 편안하고 사람답게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테크놀로지, 기술이니까요.”
과거에 사람들이 꿈꿨던 가전은 이제 5G라는 속도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그리고 이를 구현해낼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됐다. 이영희 부사장은 이것들을 직접 매일 체험하면서 이 기술이 일반 소비자에게 얼마나 쉽게 다가서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저희 회사가 세계 1위의 전자회사라지만 그게 소비자에게 의미를 가지려면 소비자 입장에서 얻는 게 있어야 하고 더 쉽고 직관적이어야 할 텐데 저부터도 어려워서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엔지니어들에게 평소에도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혁신(Meaning Innovation)’을 해야 한다고 많이 강조합니다. 기술에 대해서 들으면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요?’라고 질문하는 게 저의 역할인 거죠. 결국 소비자가 편리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적어도 쉬워지거나 연결된다는 이득이 있도록 하는 것이 모든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니까요.”
전화는 통화만 잘되면 되고 냉장고는 음식 보관만 잘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기술을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편리한 제품을 만들어서 누구나 생활 속에서 쉽게 쓸 수 있도록 더 잘 만들고 잘 알려야 한다고 임직원 모두에게 ‘사람 중심’ 브랜드 지향점을 제시하는 이유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상상도 못했잖아요. 이제는 말로 모든 걸 컨트롤하고 ‘프레임 TV’처럼 TV가 벽에 걸린 아트 갤러리도 되고, ‘패밀리허브’로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마트에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예요. 심지어 ‘에어드레서’처럼 옷 안팎의 미세먼지까지 케어하고 세심하게 관리해주는 스마트한 옷장도 나왔고요. 결국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의식주 속으로 더욱 밀착돼 다가오는 시대예요. 우리가 기술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최적화해주고 나를 이해해서 나에게 맞춰주는 스마트 홈으로 구현되는 추세고요.”
결국 TV와 냉장고, 스마트폰을 넘어서 소파나 스탠드, 커피컵 같은 사물들(Things)이 연결되면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은 기기가 알아서 해주고, ‘홈’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정서적 경험, 혼자 누리는 여유나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감, 웰빙으로 인한 삶에 대한 충만감을 누릴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삼성전자의 일이고 ‘스마트 홈’에서 역점을 두는 바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을 단순히 골치 아픈 얘기로 흘려 넘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영희 부사장은 그런 소비자에게도 충분히 공감한다. 항상 스마트폰으로 연결돼 있어야 하는 스스로의 처지에 ‘피곤한 인생’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론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어떤 특정 세대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저 역시 테라스에 앉아서 햇빛을 쬐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처럼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만의 영역이 반드시 남아 있을 테고 또 그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더욱 저 같은 사람도 편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지요.”
이영희 부사장이 삼성전자에서 일한 지 올해로 12년째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훨씬 넘겼고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은 놀라울 만큼 기술적 진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여성 임원으로 그가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다. “삼성전자도, 그전에 일했던 다국적기업에서도 힘든 점은 있지만, 그건 내가 성취하기 위해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지 여자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여자이기 이전에 마케팅을 이끄는 CMO이고 프로답게 짊어져야 할 부담이기도 하고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도 여자라서가 아니라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란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제는 외국인 기자들에게도 충분히 브리핑할 수 있을 정도가 됐고요.”
앞선 길을 가는 선배로서 그가 하는 조언이란 것이 특별히 유리 천장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자신이 삼성전자에 온 이후 여자 임원과 주요 보직에 자리한 여직원들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복장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영희 부사장 자신의 인생 모토이자 ‘갤럭시’의 브랜드 철학으로 주창하고 있는 두 문장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Do What You Can’t)’와 ‘한계를 극복하라(Defy Barriers)’가 구현된 소소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처음 삼성에 입사했을 때, 세계 최고, 최초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불철주야 일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치열한 노력을 하는구나’ 하고 감탄했었고, 그런 브랜드 정신을 소비자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서 ‘Do What You Can’t’라는 모토로 꾸준히 커뮤니케이션해왔어요.”
그렇다면 이 브랜드 철학은 과연 새집에는 어떻게 적용된 것일까?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였어요. 구석구석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제가 한땀 한땀 직접 구상한 것을 인테리어 실장님과 함께 고민하면서 하나씩 도전했으니까요. 거실 창가에 메자닌을 설치하는 것도 어렵다고 했지만 결국 만들었고, 수전은 꼭 반짝거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서 매트한 질감으로 바꿨고,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긴 폭의 라면 바도 극복해보자며 독려했지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실장님이 타일을 재활용해서 근사한 티 테이블을 직접 만들어주시더라고요. 안 해봤던 걸 시도해본다면서요(웃음).”
삼성전자의 CMO로서 당연히 삼성이라는 브랜드와 제품 그리고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영감을 주고 삶을 이해하고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휴먼 브랜드’로 자리 잡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담백하면서도 소박하다. “삼성전자의 모든 구성원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차가운 기술 중심 대기업이 아니라 그 안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매일매일 작은 한계를 극복하며 새로운 성취를 이뤄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요. 우리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사명감으로 의미 있는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 있다는 걸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