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집에서는 앤티크를 주제로 한 그만의 독창적인 믹스&매치를 엿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자라난 허브와 투명한 조각상, 유럽식 분수로 장식된 정원을 거닐고 있자니 이곳이 제주인 것을 까먹고 말았다. 앤티크 가구로 가득한 거실에 앉아 있을 때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도 헷갈렸다.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이 제주 하도리에 집을 지었다. 그것도 제대로 말이다. 평창동 본가와 공주, 부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이은 네 번째 집이다.
“집의 이름은 르 샤또 드 마메르예요. 어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집이란 뜻이죠.” 집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어머니를 위한 집을 짓고자 했고 제주 하도리의 땅을 매입해 5년 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여름 마침내 그 결과물을 보게 되었다. “원래는 1층만 지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1층을 짓고 나니 2층이 짓고 싶었고, 2층을 짓고 나니 정원을 만들고 싶더라고요.” 김영석 씨가 말했다. 공사에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집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지금은 근사한 유럽식 저택으로 탈바꿈했지만 본래 이곳은 무밭이었다. 이 때문에 그와 어머니는 제주에 올 때마다 잡초를 뽑으며 밭을 정리해야 했다. 언젠가는 제주에 태풍이 와서 정원의 나무가 날아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 제가 혼자 집에 있었는데 그 비바람에 돌을 날라 나무를 지켰다니까요.”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껄껄 웃었다. 그렇게 완성된 집은 외국과 이태원 등지에서 구한 영국, 프랑스 스타일의 앤티크 소품과 소장하고 있던 각종 물건으로 하나씩 채워나갔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제주에 올 때마다 잡초를 뽑았다며 이제는 공사도 마무리되었으니 편히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집을 구경했다. 1층에 위치한 핑크 톤의 어머니 방 앞에는 블루와 블랙 컬러로 치장한 김영석 씨의 방이 있었다. 앤티크한 가구로 빼곡한 방 가운데 한국의 자개장을 놓았다던가, 꾸준히 모아놓은 드로잉으로 벽을 채우는 등 그의 취향이 확연히 드러났다. 맞은편에 위치한 게스트룸 역시 한국식 십자수로 멋을 낸 침구를 놓아두는 식으로 김영석만의 믹스&매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1층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2층 입구에는 ‘르 꺄비네 드 수브니르’라고 적혀있었는데, 그가 아끼는 물건을 모아둔 곳이라고 했다. “르 꺄비네 드 수브니르는 해석하자면 ‘기억의 방’을 뜻해요. 제가 시골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모아서 옛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을 만들었어요.” 2층은 1층과 달리 구획을 나누지 않고 물건을 놓아두어 마치 갤러리나 전시장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곳에는 바우하우스, 노르딕 스타일의 가구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 소반과 중국 청나라 시대의 도자기, 심지어 실제 호랑이 가죽까지 있었다. 다양한 시대와 다채로운 컨셉트의 물건이 있었지만, 그만의 스타일로 조화롭게 놓아 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의 집은 부분적으로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할 예정이며 또 스몰 웨딩을 위한 대관도 계획 중이라고 했다. 스몰 웨딩에 필요한 식사부터 숙박, 투어뿐 아니라 한복 디자이너라는 직업적인 특성을 살려 코스튬 대여 서비스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뿐만 아니라 기념일에도 공간을 대관할 수 있다고 하니, 이국적인 풍경의 제주에서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보다 좋은 공간은 없을 듯하다. 제주를 떠나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서 몇 시간 동안 경험했던 제주 속 유럽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꾸만 떠올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