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에겐 집과 작업실이 하나라는 점이 여러 면에서 효율적이다. 여기에 좋아하는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의 공간이 될 것이다. 집과 작업실이라는 두 가지 쓰임새를 감각적으로 담은 윤이서 디자이너의 공간을 찾았다.
오랜 시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했지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서 스타일’을 선보여온 윤이서 디자이너. 많은 이들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라이프스타일숍 이서와 주에디션을 거쳐 최근에는 독자적인 공예 브랜드 이서라이브 yyiseo live를 운영하고 있다. 4년 전 작업실이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윤이서는 뭐든 조금씩 앞서가는 사람이다. 그녀는 무더웠던 작년 여름 오야동에 있던 작업실 을 경기도 오포 지역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집과 작업실을 합쳤다. “원래는 강북의 아주 끝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파주 같은 곳이요. 이곳 집 주인과 잘 알아서 보관 이사를 위해 짐을 두려고 왔다가 한눈에 ‘여기다!’ 싶었죠. 100평 가까운 공간이 콘크리트 벽과 천장 외에는 벽 하나 없이 완전히 뚫려 있었으니까요.”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운 하늘색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과연 넓은 공간이 주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도 하고 작업도 하기 위해 윤이서 디자이너는 4m 이상 되는 높은 천장을 조금 내려서 마감하고, 주방과 화장실, 방도 전부 새로 만들어야 했다. 무엇이 이토록 번거로운 수고까지 감수하며 그녀를 이곳에 자리 잡게 만들었을까. “계단 하나 없이 평편하고 넓은 공간을 마음대로 구획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저는 자연과 가까이 있고 싶은데 마당도 있고, 뒤로는 맨발로 산책을 할 수 있는 산도 있죠. 집에서 좀 더 내려가면 동네 주민이 함께 일구는 밭도 있어요. 토마토, 블루베리, 오이 등을 길러요. 매일 밭일을 해야할 만큼 일이 많지만 그 과정이 너무 행복해요.” 윤이서 디자이너가 직접 재배한 자줏빛 차조기로 만든 차가운 음료를 내밀며 말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를 어떻게 다 채우지?’라며 막막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온 가구를 모으고 흐트러트리며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연출했다. 큼직한 테이블도 군데군데 여러 개 두었고,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과 파티션을 비롯해 벽 선반 시스템도 제자리를 찾았다. 편한 곳에 앉으라는 그녀의 말에 어디에 앉아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넓었고, 가구도 많았다.
“저는 디자이너잖아요. 그런데 내 공간을 위해 다른 데서 가구를 산다는 것이 편하지 않아요. 여기 있는 가구는 대부분 프로젝트를 하며 제작했던 것들로 B품, 잘못 주문한 것 등 현장에 있던 것들이에요. 지금 앉아 있는 주방 벤치도 원래 프로젝트에 사용하려고 했던 사무용 가구였어요.”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이 느껴지는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윤이서 디자이너는 이 넓은 공간에서 삶을 가꾸고 있다. 클래스가 있을 때는 여럿이 모여 구슬을 꿰기도 하고, 때로는 식사도 거르고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한다. 여닫이문이 있는 안쪽은 사적인 공간으로 작은 거실과 침실로 이뤄져 있는데 아들과 영화 한 편을 보며 쉬기도 하는 휴식처다. 침대와 채도가 낮은 분홍색 벽, 마주 보고 있는 편안해 보이는 소파까지 작은 쉼터를 만들었다. 이 공간은 문을 열고 닫으며 언제든 작업을 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금세 변신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작업실의 덕목이 궁금했다.
“무조건 제 기준에 맞는 공간이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는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일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더라고요. 주변이 내가 편안한 환경인지, 내 마음에 맞게 정돈되어있는지, 그런 점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예요. 다양한 작업실의 형태가 있겠지만 제게는 삶과 작업실이 완전히 분리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녀가 집과 작업실을 합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는 8월 말 한남동에서 친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은 마켓을 계획 중인데, 직접 디자인한 아이템도 갖고 나갈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새로운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이서 스타일이 사뭇 궁금해졌다.
“집에서 좀 더 내려가면 동네 주민이 함께 일구는 밭도 있어요.
토마토, 블루베리, 오이 등을 길러요.
매일 밭일을 해야 할 만큼 일이 많지만 그 과정이 너무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