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고 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자리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 집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둘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변형이 가능한 모듈형 빈티지 소파와 턴테이블, 빈티지 조명으로 꾸민 거실.
20~30대 젊은 부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리빙 공간을 꾸미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수많은 콘텐츠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갈피를 못 잡고 중구난방 스타일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확고한 취향이 정립되지 않았기에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적정선 안에서 타협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구리시에 살고 있는 최유리 씨의 집은 채울 곳은 채우되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부분은 앞으로 살면서 더욱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남겨두는 방법을 택했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쪽. 천장에 맞닿은 벽에 만든 독특한 패턴이 시선을 끈다.
아내 최유리 씨가 가장 애정하는 주방에 앉아 있다. 이민우 실장은 주방과 다이닝이 분리되길 바라는 집주인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아내 최유리 씨와 남편 성현재 씨 그리고 5살 남자아이가 살고 있는 128㎡의 집은 세 식구가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구리를 택한 이유는 친정이 가까울뿐더러 제가 이 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어요. 아무래도 심적으로 편한 곳이라 세 번째 집으로 낙점되었죠.” 그녀가 이 동네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새롭게 집을 꾸밀 인테리어 업체를 찾던 중 남편과 친분이 있는 EDND의 이민우 실장에게 의뢰를 했다. “여기는 20년 정도 된 아파트인데 손을 한번도 댄 적이 없는 만큼 낡아 있었어요. 거실과 방을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주방과 거실에 신경을 썼어요. 나머지는 살면서 채워 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 크게 손대지 않았죠.” 이민우 실장이 말했다.
글을 즐겨 쓰는 아내를 위해 창가 쪽에 작은 서재를 마련했다.
중문 컬러와 통일한 안방 화장실 벽.
그녀의 말대로 이 집의 꽃은 주방이다. 평소 미국의 1980년대 레트로 감성을 좋아하는 안주인은 오랫동안 주방 살림을 모아왔다. “여행을 가도 항상 레트로 식기를 구입했어요. 남편이나 저나 워낙 새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살던 집같이’ 만들어줄 것을 당부했죠. 사람 냄새 나는 자연스러운 집을 원했어요. 그래서 주방을 디자인할 때에도 새하얀 주방이 아닌 레트로 식기와도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빈티지한 노란색을 선택했어요.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어요. 혹여 지나치게 과하면 어쩌나 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에요.” 최유리 씨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거실과 안방을 분리하는 중문은 집이 좁아 보일까 고민되었지만 현재는 남편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공간이다.
유니크한 레트로 식기를 모으는 아내의 취향이 듬뿍 담긴 주방. 은은한 노란색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주방에서 옆을 바라보니 TV 없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에는 빈티지 모듈형 소파를 놓고 TV 대신 브라운의 턴테이블을 뒀다. “사실 우리 부부는 테순이, 테돌이라서 TV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거실에 TV를 두니 대화가 줄어들고 TV만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래서 남은 방 하나를 TV 방으로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식구들이 거실에 모여 음악을 듣거나 아이는 퍼즐 놀이를 하는 등 함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더라고요. 아직도 남편은 TV 방을 좋아해서 아예 보일러를 꺼버렸어요. 추워서라도 이 방에서 나오게 하려고요(웃음).” 아직 TV 방의 인테리어는 완성하지 못했다. 마땅한 라운지 체어를 발견하지 못해 기존에 있던 의자와 캠핑용 의자를 쓰고 있는데, 지금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의자를 찾았을 때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사하는 순간 모든 것이 완벽히 세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살면서 채워 넣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최유리 씨는 첫 번째, 두 번째 집을 지나 세 번째 집을 꾸미면서 각 공간마다 특색을 주는 것보다는 전반적인 톤&매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예쁘게만 보이는 것에 치중하기보다 사는 이의 생활 패턴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일깨워준 집이었다.
오래전부터 아내가 모아온 식기들로 가득 찬 수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