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고향 말라가의 미술관에서부터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을 이으며 예술의 성지를 둘러봤다. 돈키호테처럼 무대포의 기질을 지닌 나라 스페인의 미술에는 순수한 마음과 열정이 이글거린다.
과대망상적 믿음과 순진무구한 용맹함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스스로를 희화화한 기사 돈키호테의 모습은 스페인의 역사 그 자체다. 아름답고 거대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가 하면,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찾아 세계인이 방문하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있다. 양극단이 공존하며 기이하고 색다른 역사가 섞여 있는 땅. 좋게 말하면 열정의 나라, 다르게 말하자면 돈키호테의 나라인 스페인의 미술 역시 그들의 그런 성향을 꼭 닮았다.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인 자신의 모습을 왕족보다 더 크고 멋지게 그려낸 화가 벨라스케스. 그의 작품 ‘시녀들’을 보기 위해 오늘도 프라도 미술관 입구에는 관광객들이 빼곡히 줄을 서 있을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고 4년 후, 산티아고 기사단 훈장을 받게 되자 그는 이 작품을 다시 꺼내 가슴팍에 빨간 십자 훈장을 그렸다. 그야말로 돈키호테가 훈장을 받고 기사가 된 영예로운 순간이다. 또 프라도 미술관에서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여러 층에 나뉘어 전시된 고야의 그림을 시대 순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궁중 화가로 뽑히기 위해 귀족 취향의 그림을 그렸던 젊은 시절부터 정부를 고발하는 그림을 그렸던 중년의 시기 그리고 속세를 떠나 병마와 싸우며 악마가 등장하는 무서운 그림을 그린 귀머거리 노년의 시기까지, 과연 같은 작가의 그림인가 싶을 만큼 시기별로 다른 그의 작품은 인생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비록 왕족에게 매여 있지만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정신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살바도르 달리에게 전해졌다. 평생을 자신이 천재라는 나르시시즘 속에 빠져 살았던 달리의 멋진 수염이 벨라스케스를 모방했다는 사실은 ‘시녀들’에 그려진 벨라스케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한평생 제멋대로 살아온 피카소야말로 돈키호테의 모습을 꼭 닮았다. 글로벌 경제의 긴박한 경쟁 속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나선 또 다른 돈키호테는 바로 빌바오다. 패망한 조선업과 광산업으로 힘을 잃은 도시에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어보자는 허황된 아이디어를 극적으로 추진했다. 빌바오의 성공을 지켜본 근처의 포도밭 주인은 사업을 살릴 극단의 결정타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초청해 이색적인 호텔을 짓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리오하 와이너리의 호텔 레스토랑이다. 정말 스페인은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한번에 둘러보기엔 너무 커서, 정작 가장 돈키호테다운 스페인의 예술가 가우디를 볼 수 있는 바르셀로나는 들러보지도 못했다. 다음에 다시 스페인을 둘러볼 기회를 남겨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을 곳, 스페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