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인지 실제인지 초현실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아름다운 영국의 정원은 실은 이탈리아의 정원을 본뜬 것이 많다. 이런 정원을 갤러리로 흡수한 하우저 앤 워스는 아트&가든의 성지가 됐다.

하우저 앤 워스 서머셋 전경. Ⓒ Hauser&Wirth Somerset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싶은 계절, 영국의 픽처레스크 Picturesque 정원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18세기 영국의 귀족들은 16세기 이탈리아의 풍경화를 동경하며 그곳으로 떠나 고대 로마부터 르네상스로 연결되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고자 했고(그것이 바로 ‘그랜드 투어’의 시작이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오마주한 정원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풍경화는 정원 설계의 기본 도면이 되었고, 정원 곳곳에 고대 로마 판테온과 같은 건축물을 짓고 다리를 만들었다.
영국 윌트셔 지방에 있는 스토워헤드 Stourhead 가든은 영국식 정원 양식의 정수로 손꼽히는 곳이다. 대부호였던 헨리 호어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 푹 빠지게 된 클로드 로랭 Claude Lorrain의 작품을 본떠 만든 정원이기도 하다. 지난해 직접 방문했던 스토워헤드 가든은 기대 이상이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배경이었고, 동경심을 가지고 항상 사진을 들여다봤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곳이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어서인지(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늘 보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영국인데 이탈리아 같고, 실제인데 그림 같은 초현실적인 체험이었다. 커다란 호수를 따라 한 바퀴 돌며 바라보는 정원은 하나의 풍경화가 아니라 여러 폭의 풍경이 겹쳐진 모습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자주 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런 바람을 실제로 이룬 이가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해 런던, 뉴욕 그리고 최근에는 홍콩에까지 지점을 낸 하우저 앤 워스 Hauser&Wirth 갤러리다. 이완과 엠마뉴엘 부부는 가족 여행으로 들른 마을 풍경에 반해 아예 서머셋 지점을 차렸다. 시골 부호를 만나기 위한 전략도 아니었고, 이 지역은 젯셋족을 위한 헬기장도 없다. 그저 “당신이 일하는 곳에서 살며, 당신이 기른 것을 먹고, 친구들과 나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요”라는 말이 그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낡은 농가를 개조한 갤러리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 알렉산더 칼더와 같은 대가의 전시가 열리고, 가든에는 뉴욕 하이라인의 옥상 생태 공원으로 이름을 날린 피에트 우돌프의 파빌리온이 설치되어 있다. 관객은 단연 주변 시민들이다. 학생, 노인, 일반인들이 입장료도 내지 않고 갤러리를 찾는다. 갤러리는 그들을 배척하기는커녕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으로 환영하고, 지역민을 고용하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상생의 길을 찾고 있다. 세계 최고급 호텔에서만 머무는 슈퍼 컬렉터도 이곳의 레지던시에 초청 받는 것이 꿈일 정도다. 이제는 필자와 같은 예술 애호가들이 꼭 들러야 할 아트&가든 투어의 성지가 된 영국으로 아트 투어를 떠날 날을 기다려본다.

하우저 앤 워스 서머셋에 있는 피에트 우돌프의 파빌리온. Ⓒ김영애

스토워헤드 가든. Ⓒ김영애

‘앉지마세요’라는 문구 대신 예쁜 책을 올려둔 센스가 돋보이는 스토워헤드 캐슬 내부 인테리어. Ⓒ김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