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딩을 전혀 넣지 않은 마이너스 몰딩 공간은 까다로운 시공이 필요하지만 집 전체를 색다르게 만들 수 있는 플러스 요인이다. 미니멀하고 모던한 감각을 사랑하는 집주인을 꼭 닮은 아파트 역시 그랬다.
한 사람이 소유한 대부분의 것이 그렇지만 특히 집은 사는 사람의 성향과 성격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적인 공간이다. 유지은 씨의 집을 둘러보며 부부가 모던한 디자인을 좋아하고 자로 잰 듯 깔끔한 성향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압구정동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 공사할 계획이 있었던 유지은씨는 친구인 도어즈 스튜디오의 김선주 실장에게 집을 맡겼다.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지만 한동안 연락이 뜸했는데, 이번 공사는 친구와의 연을 다시 잇는 계기이자 가족처럼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김선주 실장은 모던한 공간을 좋아하는 집주인의 취향을 반영해 오래된 아파트를 마이너스 몰딩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천장의 높이가 낮아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거나 벽의 수평과 수직을 맞추는 보강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달 남짓한 공사가 끝나자 공간은 새로운 집으로 바뀌었다. 도장한 흰색 벽은 몰딩이나 걸레받이 없이 타일 바닥과 맞닿아 깔끔하고 각 방의 문도 튀어나온 부분 없이 벽이나 빌트인 가구처럼 매끈하게 맞췄다. 시공을 잘못하면 욕실 밖으로 물이 샐 수도 있기 때문에 욕실 바닥의 경사를 완벽하게 맞춰야 하고 모서리에 붙여서 마감하면 되는 몰딩에 비해 면과 면이 그대로 드러나 벽 마감과 이음새 부분도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언뜻 봐서는 심플하지만 보이지 않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마이너스 몰딩이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집에 올라오면 편히 쉴 수 있도록 아들에게 가장 큰 방을 내주었다. 옷장 문은 징크 소재의 금속 재질로 마감해 차갑고 거친 느낌을 냈고 오랫동안 함께한 피아노와 넓은 책장, 침대 등을 여유롭게 두었다. 대신 부부 침실은 현관과 맞닿아 있는 작은 방이지만 거의 잠만 자는 용도로 사용하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독특한 공간은 거실이다. TV가 없는 거실은 많지만 이 집에는 TV도 없고 소파도 없다. 대신 나무로 만든 수납장과 긴 테이블, 블랙 컬러의 팬톤 체어를 여러 개 두었다. “지인들과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거나 가끔 우리끼리 멋을 내서 저녁을 먹고 싶을 때 거실 테이블을 활용해요.
평상시에는 주방에 작게 마련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죠”라며 집주인 유지은 씨는 소파 없는 일상에 개의치 않았다. 디자인도 컬러도 같은 의자 여섯 개와 긴 테이블, 흰 벽에 걸린 작품이 어우러져 일반적인 거실과는 다른 응접실 같은 분위기다. 집에서 요리를 해 식사하는 일이 적은 부부에게 넓은 주방은 필요하지 않았다. 와인을 좋아해 마련한 와인 냉장고를 세탁실로 집어넣었고 인덕션 윗부분에 후드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천장 높이가 맞지 않아 과감하게 후드를 포기했다. 집주인 유지은 씨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요소를 최대한 반영해 자신의 성격과 꼭 닮은 집을 완성했다. 현실적인 부분과의 타협도 필요했지만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공간을 진두지휘했기 때문에 가족도, 친구이자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김선주 실장도 모두 만족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