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티에리 르메르가 좋아하는 것은 1960~70년대 정신이다. 공간감이 주는 힘과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그의 파리 아파트를 보면 알 수 있다.

거실 겸 다이닝룸으로 쓰는 공간에 길이가 5m나 되는 큰 호두나무 테이블을 놓았다. 위엄 있는 테이블은 티에리 르메르가 디자인한 것. 바닥에도 같은 호두나무 마루를 깔았다. 1960년대 의자 시리즈는 경매로 구입했다. 천장에는 레일에 일렬로 설치된 모듈러 Modular의 스포트라이트와 앙베르 Anvers에서 구입한 빈티지 펜던트 조명을 함께 걸었다. 옆으로 움직이는 패널에 걸린 이브 푸아트뱅 Yves Poitevin의 추상화는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도시인 릴 쉬르 라 소르그 L’Isle sur la Sorgue에서 찾아냈다. 그림 뒤에는 TV를 숨겨놓았다. 벽은 거울로 마감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고 두 배로 넓어 보이게 했다. 게 모양의 조각품은 마리 알렉상드린 이베르놀 Marie Alexandrine Yvernault의 작품으로 생투앙 Saint Ouen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

뱃머리처럼 생긴 브론즈 조각은 아티스트 알렉산더 리버맨 Alexander Liberman 작품으로 RCM 갤러리에서 구입했고 하이파이 세트를 감춘 가구 위에 올려놓았다. 벽에는 러시아 아티스트의 그림 두 점을 걸었다.

작지만 길게 이어지는 기능적인 부엌. 팝한 오렌지 컬러와 흰색 라인이 결합된 보피 Boffi의 부엌 가구가 공간을 활기차게 만든다. 바닥에는 짐바브웨산 검은 돌을 깔았다. 조리대 위에 올려놓은 오브제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 뿌연 유리문은 1970년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재현한 것이다.
아파트 홀에 들어섰을 뿐인데 1970년대로 빠져든다. 티에리 르메르가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살 집으로 선택한 건물에서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 포르투갈이나 레바 논 베이루트에 있는 집의 레노베이션부터 아부다비에 있는 패션 디자이너 스테판 롤랑의 공간 디자인 그리고 펜디 카사 Fendi Casa를 위한 공간과 갤러리까지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온 이 건축가는 자신이 1970년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흔쾌히 밝힌다. “145㎡의 이 공간을 개조할 때 각 방이 서로 유연하게 이어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침실과 욕실을 제외하고 모든 문을 없애버렸죠”라고 그가 설명한다. 통유리창에 설치한 패브릭 블라인드가 거실에 아늑함과 부드러움을 가져다준다. 거실에 놓은 조각 작품 같은 가구 그리고 거친 소재와 섬세한 소재의 대비가 고요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시그니처 디자인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독특한 균형을 연출 하기 위해 그는 대리석, 시멘트, 매끈한 황동, 브론즈, 목재 등 다양한 소재를 결합한다. 거실에는 거울 소재의 낮은 테이블과 양모, 캐시미어로 짠 두꺼운 태피스트리를 놓아 대비의 미를 연출했다. 거울 테이블 위에는 피에르 지로동 Pierre Giraudon의 레진 볼 컬렉션을 올려놓았다. 1970년대를 상징하는 이 작품은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그가 공간을 연출할 때 즐겨 사용하는 아이템인 조명을 살펴보면, 천장에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설치했고 거실부터 욕실까지 공간을 나누기 위해 펜던트 조명을 달았다. “해가지고 밤이 되면 정말 볼 만해요. 기분과 순간에 따라 조명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것 역시 재미있어요.” 그림과 조각품들이 워렌 플래트너 Warren Platner가 디자인한 놀 Knoll의 아이코닉한 암체어, 퍼프 스툴과 함께 놓여 있어 갤러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파리 6구에 별도의 갤러리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도 자신이 디자인한 소파와 암체어, 테이블, 메탈을 끼운 나무 조명을 진열했다.

폭신한 양털과 단단하고 진한 나뭇결을 대비시킨 침실. 침대 헤드보드는 미국산 호두나무로 만들었고 침대보는 몽골의 어린 양털로 맞춤 제작했다. 침대 옆 테이블 ‘R12’는 티에리 르메르가 디자인한 것. 크롬 도금한 메탈 조명은 커티스 제리 Curtis Jere가 디자인했다. 카펫은 코디마 제품. 침대 위에 건 사진은 뱅상 납 Vincent Knapp의 작품. 침실에 딸린 욕실 세면대는 석회암으로 만들었으며 맞은편에 걸어놓은 그림은 해리슨 Harrison의 작품이다. 그 아래에 놓은 나무 상자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

테라스에 있는 큰 창 덕분에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 암소 가죽을 입힌 아이코닉한 암체어 ‘팝업 Pop up’과 티에리 르메르가 디자인한 1970년대 분위기의 낮은 테이블을 조화시켰다. 테이블 위에 놓은 세라믹 작품은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