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아파트라고 믿기 힘든 아늑한 박공 천장이 있는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집을 찾았다. 실험적인 시도와 개성으로 채운 마감 좋은 아파트를 소개한다.
거실의 벽과 천장에는 3가지 색상의 페인트로 그러데이션을 주어 공간이 입체적으로 보이며, 시각적으로 확장되어 보이는 효과를 냈다.
일상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두고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 집의 주인은 혼자 사는 미니멀리스트로 약 1년 전 이사할 계획을 세운 후 이사할 때까지 짐 버리기를 감행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버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제 삶을 들여다보고 필요한 것들만 오롯이 남겼기 때문에 지금처럼 심플한 집을 만들 수 있었어요”라고 집주인은 설명한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모습. 보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앵글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집의 매력이다. TV를 가운데 두고 양쪽 벽에 드비 알레 스피커를 매치한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와 암체어는 폴트로나 프라우, 새 모양 조명은 모오이에서 구입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JTK Lab의 강정태 소장은 간결한 선이 살아 있는 디테일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주특기로, 집주인이 원했던 스타일에 플러스 알파를 만들 수 있는 적임자였다. “제가 병적으로 집안에 나와 있는 선을 싫어하는데, 클라이언트도 그런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어요. 무엇보다 한국의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성냥갑 모양의 구조를 없애는 것에 동의했고, 새로운 물성을 집 안에 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죠.“
선과 면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은 거울의 리플렉션 효과로 확장되어 보인다.
입체적으로 만든 박공 천장의 레이어 사이에는 간접조명을 달았다. 자칫 차갑고 날카로워 보일 수 있는 마감재 끝을 따뜻한 색감의 오크로 마감한 세심함이 돋보인다.
청담동에 위치한 30평형대의 평범한 아파트는 집 전체를 뜯어 고치자 전혀 색다른 공간으로 바뀌었다. 강 소장이 레노베이션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원주택에서 볼 수 있는 입체적인 박공 천장을 만들 것, 둘째 평면적이지 않은 입체적인 주방, 셋째 호텔 같은 침실 공간 만들기였다. 그가 만든 주거 공간에는 언제나 박공 천장이 있었는데 이를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한국의 아파트는 평당 단위로 분양하기 때문에 층 고 역시 최소한으로 설계합니다. 아파트 거실이 대부분 우물 천장인 이 유도 개발자들의 편의에 의해 탄생했어요. 아파트에서 이 우물 천장만 해체해도 공간이 전혀 새로워질 수 있어요. 제가 만든 천장은 레이어만으로 공간이 확장되어 보일 수 있게 착시효과를 줍니다. 사람들이 높이를 인식할 때 낮은 부분보다는 가장 높은 부분을 보고 판단하거든요. 시선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흐르면서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줍니다.” 예사롭지 않은 레이어를 가진 천장에는 페인팅으로 그러데이션을 주었는데 설명을 들고 나서야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웠는데 마치 햇빛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그림자 효과를 내고 있다.
자쿠지를 설치한 욕실.
디머 작동이 가능한 벽 조명을 단 심플한 침실.
거실과 이웃하는 주방 역시 강 소장의 공간 철학이 녹아 있다.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즐기고 와인 파티를 자주 하는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을 배려한 공간으로 “주방은 수많은 행동이 일어남에도 대부분 평면이에요. 와인냉장고와 냉장고를 주방 한가운데 벽을 만들어 ‘ㄴ’자형으로 배치함으로써 주방이 한결 입체적인 공간으로 바뀌었고 기능적이면서도 세련미를 갖출 수 있게 되었죠.”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주방 벽을 마감한 진주홍이라는 이름의 돌이다. 핑크빛 칩이 박혀 있는 오묘한 색감을 내는 이 돌은 가정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마감재로, 공사 관계자들도 의아해했을 만큼 실험적인 시도였다.
침대 앞에 있는 책상은 거울의 리플렉션 효과로 마치 종이비행기처럼 보인다.
침실 문을 열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침실과 세면공간으로 나뉜다.
침실 공간은 두 개의 방과 복도를 막아 만들어 기다란 직사각형이다. 침실과 세면 공간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뉘며 세면 공간 앞에는 자쿠지가 있는 욕실이 있는 호텔 스타일의 레이아웃이 특징이다. 문 없이 하나로 연결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취향이 남다른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집주인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 집을 보면서 한국의 획일화된 아파트 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TV가 놓일 자리가 정해져 있는 뻔한 구조의 아파트 대신 레노베이션을 하지 않아도 집주인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레이아웃의 아파트를 기대해본다.
집에 잘 사용하지 않는 진주홍 석재로 마감한 주방. 주방 가운데에 냉장고와 와인냉장고가 있는 흔치 않은 레이아웃이 눈여겨볼 부분이다. 식탁은 기성품 대신 직접 짜맞춘 식탁을 선택했는데 비스듬한 식탁 하나로 거실과 주방의 경계가 나눠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강 소장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