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4주년을 맞아 <메종>의 친구들을 소개하는 칼럼을 마련했다. 분야는 모두 다르지만 묵묵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이 친구들은 의도치 않게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 추종자들이 많다는 것이 친구로서 으쓱하기도 하다. 앞으로 9명의 리얼 스토리와 페이보릿 아이템을 통해 지금의 라이프스타일 흐름을 읽으며 유용한 정보를 얻어가길 소망해본다.
공간과 함께 나이 드는 삶
서정경 대표는 조금 천천히 걷는다. 그래서 아주 먼 곳을 꿈꿀 수 있다. 나만의 카페는 많은 사람의 꿈이다. 하지만 유행이 광속으로 바뀌는 서울에서는 카페를 여는 것보다 지키는 일이 훨씬 귀해 보인다. 서울에서 ‘노포’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것은 정녕 국밥집 밖에 없는 것일까. 이렇게 빠른 흐름 속에서 노포를 꿈꾸는 카페가 있다. 바로 서정경 대표의 언더야드다. 이제 3년 차를 맞이한 언더야드는 나무가 드리워진 아름다운 논현동 골목에서 시작해 몇 달 전 한남동에 2호점을 오픈했다. 그리고 유행과는 상관없이 아직도 많은 사람의 발걸음은 꾸준히 언더야드로 향한다. “aA디자인뮤지엄에서 빈티지 가구 관련 일을 하고, 공간 데커레이터로 활동하다 언더야드를 오픈했어요. 공간이라는 큰 카테고리에서는 하는 일이 비슷할 수 있는데, 결국 모두 새로운 일 같아요. 새로이 배워야 할 것이 무척 많더라고요.” 수줍게 미소를 띤 서정경 대표의 시선이 언더야드의 구석구석에 머물렀다. 논현동의 오래된 담배가게를 리모델링해서 꾸민 18평 남짓의 작은 카페는 남편인 <벨보이> 매거진의 박태일 대표와 함께 1년 반의 시간 동안 직접 꾸며 오픈한 공간.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도사렸던 공사 환경보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오픈 당시만 해도 흔치 않던 컨셉트의 카페였거든요. 저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쭉 오랜 시간 고민해서 만든 공간이었는데, 사람들이 이걸 좋아해줄까, 공감해줄까 그런 확신을 갖는 게 무척 힘들었어요. 어쨌거나 카페는 저희의 만족을 넘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지속 가능하니까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메탈, 대리석 등의 화려한 소재 대신 관리하기 힘든 벽돌 바닥이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스틸 합판 등을 사용해 하나씩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직원들이 사용을 만류하는 희귀한 빈티지 컵이나 식기 등 그녀의 취향이 듬뿍 담긴 아이템을 기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언더야드를 꾸준히 사랑받게 만드는 커피, 샌드위치 등의 메뉴를 통해 신혼의 라이프스타일도 담았다. “에디터(박태일)라는게 불규칙한 직업이잖아요. 촬영하면 새벽에 끝나고 또 마감이라 늦게 들어오고. 그러니까 아침이 되게 중요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출근 전에 아침을 무척 신경 써서 잘 해먹었어요. 제가 샌드위치를 만들면 신랑은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그때 아침으로 먹었던 삭슈카, 샌드위치가 다듬어져서 지금의 메뉴가 된 거예요.” 하지만 취미와 판매를 위한 메뉴는 간극이 컸다. 어제와 오늘, 내일의 맛과 모습이 한결같아야 했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도 변함없어야 했다. 또한 아무렇지 않게 메뉴를 카피하는 몹쓸 관행도 문제였다. 음식의 경우 법적인 보호가 쉽지 않아 힘들게 개발한 메뉴가 다른 공간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럼에도 서정경 대표는 꾸준하다. 그녀는 이 과정을 ‘버티기’라고 표현했다. “저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언더야드를 운영하고 싶거든요. 카페라는 공간이 너무 좋아서요. 찻잔 부딪히는 소리, 그릇에 포크 부딪히는 소리, 그 공간 안의 사람들…. 혹여 언더야드의 스타일이 달라진다면, 제 취향도 약간 옮겨가는 과정이겠죠. 그게 다 자연스럽게 이 안에서 보여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DO NOT BUY, ADOPT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라는 말처럼 가슴 뭉클한 말이 있을까? 믹스견이고 유기견이었던 철수는 지금의 가족에게 입양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최근 이케아 광고에 나온 강아지를 단번에 알아볼 것이다. 복슬복슬한 털과 까만 귀, 독특한 무늬가 사랑스러운 철수는 8만6000명에 가까운 팔로어 수를 자랑하는 철수독 @chulsoo_dog의 주인공이다. <오! 나의 철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한 안진양 씨는 철수의 보호자이자 누나다. 그녀는 인터뷰 전, 철수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배려를 부탁했다. “무작정 다가가서 만지려는 분들이 많은데요, 철수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에요. 가까이 오지 말라고 짖을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어요. 특히 처음 가는 장소나 낯선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어서 투명 인간처럼 철수가 없는 듯 행동해달라고 부탁해요.” 너무 귀여워서 그저 걸어다니는 것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철수를 보고 무슨 종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철수는 믹스견이고 유기견이었다.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라는 캠페인을 보고 유기견을 입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한국동물구조협회에서 공고에 올라온 철수의 사진을 보고 바로 입양 신청서를 보냈죠. 공고 기간이 끝나야 데려올 수 있어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어요. 데려오는 날 내장형 칩을 삽입해야 해서 이름이 필요했는데 그때 철수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제가 성이 안이라서 안철수예요(웃음).” 부르기도 쉽고 모두에게 익숙한 이름인 철수. 철수는 그렇게 가족을 만났고 스타 강아지가 됐다. “나중에 철수를 구조한 분과 연락이 닿아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길을 잃었던 건지, 버려진 건지 샴푸 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철수가 몇 시간이고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안진양 씨를 만난 철수는 몰라보게 예뻐졌고, 이제는 때마다 스타일리시한 옷과 액세서리를 즐기는 패셔니스타 강아지다. 철수는 반려동물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안진양 씨의 입사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철수를 입양한 다음 인연이 돼서 입사 제의를 받았고, 철수와 함께 출근할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입사를 결심했다. 안진양 씨는 많은 이들이 철수를 알아봐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철수로 인해 믹스견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유기견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전했다. “철수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하지만 반려견과 함께한다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해요. 요즘은 출근을 같이 해서 괜찮지만 예전에는 철수가 분리불안이 심했거든요. 지금도 제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찾으러 다녀요. 또 실외 배변을 해서 365일 날씨에 상관없이 산책을 나가야 하고, 사료 대신 생식도 챙겨주고 있어요. 금전적인 지출도 무시할 수 없죠. 그러니 제발 신중하게 입양을 결심했으면 좋겠어요.” 안진양 씨는 철수의 동생을 입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또 한 마리의 유기견이 보호소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지 않고 다른 견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숍에서 물건을 사듯 반려동물을 사는 일을 멈춘다면 강아지 공장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태도, 버려지는 동물도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철수의 귀여움을 알아보는 이들만큼 믹스견이나 유기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 또한 많아지길 바라본다. 인터뷰를 마치며 철수가 즐겨 찾는 카페를 물었다. 도산공원의 에잇디 카페란다. 역시 강아지계의 트렌드세터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
자연에서 피어나는 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김슬기 대표의 삶은 그녀가 1304에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스타일과 닮아 있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그녀는 꽃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물론 전문적인 플로리스트 과정을 밟아 꽃을 배웠지만, 왠지 그녀의 스타일은 타고난 재능이 한몫하는 듯했다. 이제 1304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갖춰 한남동에서 꼭 들러야 하는 플라워숍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의 꽃다발은 틀에 박힌 풍성하고 화려한 색감이 아니라 위아래, 양 옆으로 길게 쭉 뻗은 나뭇가지의 독특한 셰이프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언뜻 보기에는 척척 해내는 것 같지만 학생들한테 항상 새로운 것을 전해야 한다는 고충이 따른다. “최근에는 당장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영감이 떠오르지 않은 적이 있어요. 출근길 자연의 들판에서 자라나는 식물에서 영감을 얻는 등 일상적인 것에서 영향을 받는 편이에요.” 요즘 꽃 트렌드에 대해 묻자 예전에는 영국, 프렌치 스타일로 나뉘었다면 요즘은 자연스러운 빈티지 스타일의 미국식 플라워가 유행이라고 말했다. “미국 스타일은 빈티지스러운 것이 특징이에요. 프렌치 스타일이 종류도 다양하고 색감이 화려했다면, 미국식은 종류는 다양하지 않지만 꽃을 매만질 때 높낮이를 준다든지, 셰이프를 좀 더 풍성하게 연출하는 등 예전보다 틀에 박힌 것을 덜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요.” 1304는 꽃과 식물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화병, 아트 서적, 오브제 등 리빙 제품도 아우르는 곳으로 플라워숍 그 이상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처음에는 제가 소장하고 있는 소품을 디스플레이 용도로 올려두었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카테고리를 확장하게 되었어요. 종류는 많지 않지만 제가 좋아하고 갖고 싶은 것들 위주로 셀렉트하는 편이에요.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면 일관성 없는 스타일이 될 수도 있지만 제가 봤을 때 아름다운 것, 1304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해요. 이제는 꽃과 식물뿐 아니라 리빙 소품도 1304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녀는 최근 건강에 무리가 와 일과 휴식에서 밸런스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클래스도 잠깐 쉬었어요.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것을 워라밸이라고 하잖아요. 휴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고요. 주말에는 항상 풀이 있는 자연으로 나가 좋은 것을 보고 영감도 얻으려고 해요. 지금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휴식과 병행하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는 그릇, 컵, 꽃차 등 카테고리를 다양하게 늘리고 본격적으로 숍을 활성화할 예정으로 1304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